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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화 "첼로 40년, 내인생 3가지 행운은..."

MTN 감성인터뷰 '더리더'... 어머니, 남편, 정트리오
대담= 최남수 보도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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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동안 첼리스트로서 한국을 대표해 온 정명화. 사람 목소리를 가장 닮은 첼로를 인생의 친구로 선택한 정명화는 여동생인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남동생인 지휘자 겸 피아니스트 정명훈과 함께 ‘트리오 가족’ 연주자로서 한국을 빛내왔다. 한 가족에서 걸출한 세계적 연주자를 3명씩이나 배출해 낸 힘은 무엇일까? 아름다운 리더를 만나는 머니투데이방송 MTN의 ‘더 리더’가 첼리스트 정명화를 만나 모성애가 만들어 낸 천재음악가의 삶을 들여다 봤다.



Q 세계적인 첼리스트의 집에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테리어에 조예가 깊으셔서 집도 직접 꾸미신다고 들었습니다.

A 해외에서 오래 살고 여행 다니면서 인테리어를 많이 눈여겨 봐왔어요. 내 삶의 공간이니까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꾸미게 됐습니다. 특히 인테리어 도면 그리는 걸 좋아합니다. 제한된 박자 안에서 음악을 표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제한된 공간에서 도면을 그리는 것이라 좋아합니다.

Q 올해로 데뷔 40주년이신데 감회는...

A 이렇게 오랫동안 연주할 수 있다고 생각을 못했는데 40년 동안 할 수 있게 돼 감개무량합니다. 직업연주가로서 좋아하는 일을 해오다보니 오래됐네요.


Q 한국인 첼리스트로서는 처음으로 세계무대에 서셨는데 그걸 가능하게 한 게 본인이 재능이라고 보시는지 노력이라고 보시는지...

A 일단 음악은 타고 나야 합니다. 어머님이 어렸을 때부터 7남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면서 재능이 있는 걸 아셨죠. 저는 네, 다섯 살 때부터 노래와 무용을 무척 좋아했어요. 그러다가 음악세계에서 살게 된 것이죠.

Q 바이올린, 첼로도 배우시고 성악도 하셨지요

A 어렸을 때 제일 좋아했던 것은 노래였어요. 바이올린은 제 목소리가 아닌 것같았구요. 첼로는 잡아보니 바로 좋더라구요. 특히 소리가 제 목소리와 닮았다고 느껴졌습니다.

Q 음악을 하시는 과정에서 좌절을 느끼신 경험이 계신지요.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A 그 시절에는 여자가 직업 갖는 게 힘들었지요. 특히 아이 키우면서 음악 한다는 것이 힘들었어요. 제 경우는 형제들이 같이 음악을 한 게 큰 힘이 됐어요. 남편과 아이들도 지원을 잘 해줬습니다. 어려움이 있을 때도 가족 때문에 잘 버틴 것 같아요. 저희 가족이 1978년에 로마로 이사를 갔는데요. 첼로를 열심히 해서 더욱 더 깊이 들어갔는데 어디로 가는 지를 모르겠더라구요. 그래서 첼로를 안하기로 결정하고 일주일도 아무 것도 안 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엄마 왜 첼로 안 해?’ 그래서 못 이기는 척하고 다시 첼로를 시작했습니다.

Q 남편이신 AP 통신 구삼열 선생님하고 유명한 러브스토리가 있으시던데요?

A 저는 줄리아드 졸업했고 남편은 콜롬비아대학 신문방송학과 졸업해 AP 통신에 들어가 서로 직업에만 몰두할 때였죠. 1970년에 뉴욕에서 친구 댄스파티에 갔는데 귀걸이를 잃어 버렸어요. 그런데 그걸 남편이 찾았어요. 데이트할 때 주겠다고 하더니 일년 동안 서로 바빠 못 만났어요. 일년 후 다시 만날 때 귀걸이를 줬고 그때부터 데이트를 하게 됐지요.

Q 다시 음악 얘기로 돌아가면 하루에 연습하시는 양은 얼마나 되는지요.

A 공부할 때는 하루 대, 여섯 시간 씩 연습을 했지요. 결혼 전에는 학교 다녀와서 저녁 시간에 주로 연습했는데 아이를 낳고는 머리가 맑은 아침시간에 12시까지 연습했습니다. 3O년 동안 이 습관을 유지했지요. 그래서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점심 약속도 안 해요. 신체를 쓰는 직업이기 때문에 계속 유지를 해줘야 해요. 휴가 다닐 때도 첼로를 가지고 다니는 데요. 그건 다른 사람들은 손끝에 굳은살이 박히는데 저는 살이 부드러워요. 그래서 며칠 안 잡으면 손끝이 아프거든요. 그래서 휴가 때도 첼로 연습을 합니다.

Q 연주자이시다 보니까 손 관리가 정말 중요할 것 같은데요.

A 그릇을 씻을 때 왼손은 안 쓰고 오른 손으로만 했어요. 그런데 우리 딸이 그게 정상적인 방법인 줄 알고 똑같이 해서 웃은 적이 있지요. 칼 쓸 때도 잘 드는 칼은 안 씁니다.

Q 가장 기억에 남는 연주는?

A 직업 연주가가 되기 전인 1967년에 LA 필하모니오케스트라와 주빈메타랑 연주했지요. 외국 오케스트라와 첫 연주여서 기억에 남습니다. 제일 흥분됐을 때는 런던에서 지휘자 루돌프 캠프와 연주했을 때입니다. 그게 BBC를 통해 영국 전역에 방영됐어요.

Q 가족인 지휘자 겸 피아니스트인 정명훈씨와 바이올리니스트인 정경화씨의 음악세계를 평가하신다면.

A 형제들 보면 같은 점이 있으면서도 틀립니다. 음악에 재주가 있다고 해도 타고난 게 달라요. 저희는 모두 악기에 맞게 타고난 것 같아요. 정경화는 바이올린의 높은 소리를 표현하는 게 정말 맞고요. 정명훈은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로 화음 만드는 걸 좋아했고 그런 쪽으로 자질이 있었어요.

Q 형제끼리 경쟁의식을 느끼신 적은 없으셨는지.

A 어머니가 어렸을 때부터 비교를 안하고 키우셨어요. ‘너는 이러니까 좋고’ ‘너는 이러니까 좋고’ 이런 식으로 키우셨어요. 저는 동생들을 존경하지요. 각자 자부심은 가지고 있구요. 그게 우리를 가깝게 하고 지켜준 것 같습니다.

Q 한 집안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가가 3명이나 배출됐는데요.

A 저희 집은 어머니가 피아노를 좋아하셨고 아버지가 끼가 있으셨어요. 노래하시고 춤추시는 걸 보면 듬뿍 들어 있으셨어요. 그래서 영향을 받지 않았나 싶어요.

Q 6.25 당시 피난가실 때에도 피아노를 가지고 가셨다고 들었는데요.

A 형제들이 피아노를 다 하니까, 어머니는 부산에 가서 피아노를 구하기 어렵다고 생각하셔서 정말 극성이셨죠. 트럭에 피아노를 싣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갔어요. 그래서 가자마자 피아노를 계속해서 친 거죠.

Q 어머니께서 첼로 교육도 받게 하시고 유학도 보내주시고 해서 7남매가 훌륭하게 자란 것 같으십니다. 어머님을 회고해보신다면.

A 어머님이 안 계셨더라면 우리 형제들 아무리 재주가 있었더라도 지금의 자리에 있을 수가 없었지요. 저희가 타고난 것을 알아서 키워주셨고 앞을 내다보시는 분이셨어요. 머리도 좋으셨고 열심히 사셨습니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여자가 왜 음악 하느냐고 하지 않으시고 지원해주셨습니다.

Q 부군도 음악을 많이 좋아한다면서요?

A 처음 만났을 때 저는 첼로음악과 심포니 몇 개 알 정도인데 남편은 고등학교 때부터 음악을 좋아해서 유명한 지휘나 심포니를 다 LP로 가지고 있었어요. 음악에 대한 조예가 깊고 더 중요한 건 그 시절 남성들과 달리 직업여성을 좋아 했습니다.

Q 커리어 우먼으로 첼로도 하시고 아이들도 키우시고 어려움이 많으셨을 것 같습니다.

A 양쪽 집안의 지원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죠. 남편이 AP통신 기자로 로마로 발령을 받은 게 저한텐 말할 수 없는 행운이었습니다. 로마에서는 활동하는데도 아이들 교육하는데 훨씬 편하고 좋았습니다. 제 음악 인생에서 그 시절은 커리어가 올라가다가 다운될 수 있는 시점이었는데 오히려 그 때 굉장히 열심히 했던 것 같습니다. 외부 도움이 있었고 그 때 아이들도 행복하게 자랐고, 로마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Q 40년 전에 음악을 시작하셨는데요, 그 때와 다르게 한국 음악 수준이 많이 높아졌습니다. 한국 음악계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A 지금은 어디가나 한국 음악가 하면 알아줍니다. 어떤 대회를 가도 1/3이 한국 사람일 정도지요. 첼로, 바이올린 할 것 없이 각 분야에서 한국 음악가의 수준이 굉장히 많이 올라가 있는 상태입니다.

Q 서초동 한국 종합예술대학에서 15년째 강의를 하고 계시는데요. 그동안 강승민, 고봉인 등의 제자도 많이 배출하셨는데, 지금 성장하고 있는 제자들을 보시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A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은 거의 다 젊었을 때 가르치는 것을 병행하는데 저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한국 나오기 2년 전에 뉴욕에서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늦게 시작해서 더 재미있습니다. 한국 학생들이 너무 열심히 하고 재주 있는 학생들도 많기 때문에 굉장히 재미있습니다.

Q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인간관계를 윤활유처럼 잘 가져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인간관계에 대해서 조언을 해주신다면?

A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고 남보다 무엇을 잘하는지를 찾아내서 그것을 자신감을 가지고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음악은 자신감이 중요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겸손함, 자기가 모자란 부분을 일생을 통해 채워나가야 하는 것인데요. 여기서 자신감과 겸손함을 균형 있게 유지하는 게 음악 뿐 아니라 일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거 같습니다.

Q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 있으시다면?

A 음악으로서 사회 봉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쪽으로 좋은 방법을 고민해 보겠습니다.

Q 40년을 정리하시면서 정명화 선생님에게 음악이란 무엇인지 정의를 내리신다면?

A 음악은 제 마음의 표현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것, 이제 첼로는 제 목소리고 제 마음입니다.


☞ 우리사회 아름다운 리더들의 인생철학과 숨겨진 진면목을 만나는 MTN 감성인터뷰 ´더리더´는 매주 월요일 오후 5시 케이블 TV와 스카이 라이프(516번), DMB(uMTN)를 통해 방송되고, 온라인 MTN 홈페이지(mtn.co.kr)에서도 동시에 볼 수 있습니다. 본방송 이후 [더리더]의 풀동영상은 MTN 홈페이지에서 VOD로 다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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