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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롤'에 치이고 '룰'에 눌리고…게임업계 한숨

이규창

'4대 중독'이자 척결해야 할 '악'으로 지목되면서 게임 업계에 냉기류가 흐릅니다. 규제 카드가 나올때마다 항변과 읍소를 하던 모습과는 다릅니다.

정기국회 첫 날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는 마약, 알콜, 도박과 더불어 게임을 '4대 중독'으로 규정하고 전쟁을 선언했습니다. 47만명의 인터넷 게임 중독자들이 현실과 가상세계를 구별하지 못해 '묻지마 살인'을 벌인다는 주장까지 폈습니다.

앞서 여성가족부의 주도로 청소년이 심야에 게임을 못하게 막는 '셧다운제'가 도입됐고 문화체육관광부는 고스톱 포커 게임의 판돈을 제한하는 규제도 추진중입니다. 국회에서는 중독 치료를 위한 재원마련을 명분으로 게임업체에게서 매출액의 1~5%까지 부담금을 징수하는 법안이 발의됐습니다.

게임업계 종사자들을 이제 불안과 분노를 넘어 체념에 가까운 반응을 보입니다. 한 중견 게임업체 대표는 "어차피 우리 말은 들어주지도 않을 거, 접고 일본이나 가야겠다"고 푸념합니다. 때마침 중국, 일본 등에서 쏟아지는 영입제안은 마음이 더 심난하게 합니다.

규제 대상이 되는 게임 업체들은 사실 '갑'이 아닙니다. 스마트폰 게임은 구글, 애플, 카카오와 같은 플랫폼 사업자가 이득을 가장 많이 챙기지만 게임 규제에서는 자유롭습니다. PC 온라인게임 시장은 이른바 '롤'이라 불리는 외산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LOL)가 절반을 차지하며 국내 업체의 생존을 위협합니다.

한미FTA 체결 이후 외국 기업의 규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최근 정부가 도입한 각종 규제들은 외국 기업들에게 시장을 내주는 결과만 낳고 있습니다. 게임 산업에 대한 규제 역시 마찬가지 상황이 될 것임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물론 게임 업계가 이렇게까지 코너에 몰린건 어느 정도 자초한 면이 있습니다. 부정적인 여론에 정면으로 맞서는건 부담스럽고 "이러다 말겠지" 하는 안일한 판단까지 더해져 소극적으로 대처한 것이 상황을 악화시켰습니다.

뒤늦게 게임업계의 목소리를 제대로 내자고 새누리당 남경필 의원을 회장으로 영입한뒤 협회 이름도 'K-IDEA'로 바꿨지만, 굴러가는 바퀴를 멈추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게임중독' 이슈 대응에서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게임중독이 아닌 게임과몰입"이라는 논리로 대응했지만 시민들의 반응은 싸늘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노력은 없이 별 차이도 없는 말장난으로 책임만 피하려는 듯한 인상을 준겁니다.

사실 '중독' 문제가 제기된 서비스나 상품이 게임만은 아닙니다. 과거 미국에서 케이블TV의 24시간 방송이 시작되자 '카우치 포테이토'(couch potato)들이 사회문제로 떠올랐습니다. 하루 종일 소파에 앉아 TV만 보는 사람들을 누가 책임져야 하는지 그 이유와 해결책을 찾는 논의가 벌어졌습니다.

TV 자체를 '악'으로 규정하는 극단적인 주장이 한때 힘을 얻기도 했지만, 업계의 지속적인 노력으로 중독의 원인을 사회와 사람에게서 찾고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사회적으로 공감을 얻으면서 더이상 TV를 문제삼지 않게 됐습니다. 패스트푸드나 청량음료 등 다양한 상품들이 비슷한 홍역을 치렀습니다.

자녀가 착실히 공부만 하기를 원하는 부모들은 아이들이 게임을 하는 것도 TV를 보는 것도 못마땅합니다. 그런데 TV는 TV 자체의 문제로 보지 않고 게임은 왜 게임 자체의 문제로 보는지, 게임업계는 주목해야 합니다.

정부의 인식도 바뀌어야 합니다. 콘텐츠 수출의 과반을 차지하는 게임 산업을 홀대하면서 '창조경제'를 육성하겠다는건 넌센스입니다. 가뜩이나 '롤'(LOL)에 치여 위축되고 있는 게임 업계가 정부와 정치권의 '룰'(rule)에 눌려 압사당하는 상황은 막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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