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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남수 칼럼] ‘관피아’와 세금의 배신

최남수 보도본부장


뿌리가 깊은 문제는 끈질기게 되풀이된다. 일이 터지면 대책은 예외 없이 강공이다. 그러다 시간이 조금만 흐르면 망각의 관성이 발목을 잡는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잡초는 다시 고개를 든다.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관피아 문제가 대표적 예이다.

1982년으로 30 여 년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퇴직한 공직자의 낙하산 인사가 말썽이 돼 사회가 떠들썩했다. 당시 언론 보도를 날짜를 가리고 보면 요즘인지 과거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낙하산 인사의 부작용으로 거론된 문제들은 ▲ 산하단체의 공공성과 독립성 저해 ▲ 민간기업 취업 시 정부와 업계의 유착관계 우려 ▲ 기존 임직원들의 사기 저하 등이다. 이 문제에 관한 한 우리 사회가 여전히 제 자리를 맴돌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관련해 낙하산 인사의 본질적 유인은 무엇인지 그 속내를 짚어보자. 다른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현직에서의 공로를 퇴직 후 ‘한 몫’으로 보상받고자 하는 심리가 강할 것이다. 나라를 위해 박봉에 툭하면 야근을 하는 등 희생을 했으니 그만둔 뒤 두둑한 보수를 주는 자리를 제공받는 혜택 정도는 정당화될 수 있다고 보는 ‘그들끼리의 집단사고’ 말이다.

언뜻 보면 그럴 듯해 보이는 말이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제는 시대착오적 생각임을 알 수 있다. 지금 민간 기업들이 직면하고 있는 상황을 보자. 경기침체의 장기화, 치열한 글로벌 경쟁,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 등으로 자칫 한 눈을 팔다 생존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위기가 ‘상수’로 자리 잡고 있다. 근로자들은 위기 때마다 삶의 터전이 흔들리는 구조조정의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명목 상 존재하는 정년은 허구의 숫자에 불과하고 퇴직 후도 국민연금은 충분치 못한 수준이다.

공무원들은 어떤가. 아무리 심한 경제위기가 닥쳐도 끄덕도 하지 않는 무풍지대에 놓여있지 않은가. 상대적으로 정년도 보장되는 편이다. 공무원 연금의 노후 보장 수준은 국민들 입장에서 보면 부러울 따름이다. 한 연구결과(‘공적연금 간의 형평성 문제, 김상호)를 보면 2010년 신규 가입자를 기준으로 했을 때 국민연금 가입자가 기대여명 동안 받을 순연금액은 8,747만원(2010년 현가)인데 비해 공무원 연금 가입자는 이보다 1.7배나 많은 1억 4,849만 원에 이른다. 특히 공무원 연금 기금이 실제로 바닥난 상태에서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연금을 지원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형평성 문제의 심각성이 더해진다고 이 보고서는 지적하고 있다.

이렇듯 공직의 현직은 민간보다 고용 안정성이 훨씬 높은데다 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자리이다. 퇴직 후에도 국민의 세금으로 국민보다 두툼한 호주머니를 보장받고 있다. 현직이든 퇴직 후든 공직이 민간보다 더 큰 혜택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퇴직 후 ‘한 몫’이라는 보상은 더 이상 정당화되지 않는다.

게다가 끼리끼리 챙기는 ‘패거리 문화’는 스스로 무덤을 판 집단이기주의의 절정이다. 아무리 선배가 부탁을 해도 민간 민원인에 적용한 똑같은 원칙을 가지고 후배들이 일을 처리했다면 관피아 문제 자체는 잉태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선후배로 함께 엉켜 고급 정보를 주고받고 일도 은근슬쩍 처리해주는 현실극의 주인공들이 국민이 세금으로 키운 공직자들인 상황. 그만큼 불이익을 받아온 국민 입장에서 보면 빠듯한 살림살이에서도 꼬박꼬박 내온 ‘세금의 배신’인 셈이다.

목민심서를 보면 당시 덕정을 베푼 지방 관리들이 자리를 그만두게 되면 백성들이 아쉬움에 덕정비(德政碑)를 세웠다고 한다. 공직자가 평생 ‘공복의 길’을 잘 걸어왔다면 마무리 역시 낙하산이네 로비네 하는 불명예스러운 길을 멀리하고 그 덕정비를 사모하는 마음을 가져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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