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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남수 칼럼] 금융개혁, 현실의 벽 못 뛰어넘나

최남수 대표이사

[머니투데이방송 MTN 최남수 대표이사] “보험상품 신고 대상을 축소하고 상품가격 결정에서 보험사의 자율권을 대폭 확대하겠다.” 지난 7월 7일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보험업계 실무자들과의 현장 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규제 덩어리를 걷어내기 위한 임종룡 위원장의 행보가 예사롭지 않게 다가왔다. NH농협금융 회장을 하면서 현장에서 규제의 실상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관이 얼마나 기세등등하고 민은 얼마나 어깨를 움츠리고 있는지 잘 아는 금융위원장이다. 그래서 규제개혁의 깃발을 높이 올렸다.

규제의 울타리를 낮추는 일의 핵심은 금융상품 가격에 대해 관이 감놔라 배놔라 하는 관행을 없애는 것이다. 시장 원리가 작동하게 하는 처방전이다. 가격을 수요와 공급의 힘겨루기 결과에 맡기거나 원가 수위에 따라 가격이 변동하도록 관의 힘을 내려놓은 작업이다.

항상 그래왔듯이 이상은 화려하지만 현실의 돌멩이에 맞으면 쉬 깨지기 쉬운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이상을 현실의 땅으로 잡아당기는 중력의 힘이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보험료 결정권을 기업들에게 돌려주는 일에서도 아니나 다를까 현실의 저항은 이상을 흔들어버릴 기세이다.

그 주 무대 중 하나는 자동차보험료. 손해보험사들은 자동차 보험의 원가에 해당하는 손해율이 많이 올라 적자를 내왔다. 이 때문에 최근 중소형 손해보험사들은 자동차 보험료를 올리거나 인상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상위권 회사들도 선발대인 중소형사들의 뒤를 따라 보험료를 올려보려고 했다. 임 금융위원장의 말대로라면 금융당국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는 일이다. 알아서 올리면 그만이다. 문제는 현실이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자율’이라는 말을 순진하게 믿고 그랬다간 나중에 된통 당할 게 두려워 그동안 하던 관성대로 금융당국 윗분(?)들의 의견을 물어보았다. 답은 예상했던 대로이다. 상위권 회사들은 상황이 어려워도 보험료를 올리지 말고 참아달라는 당부 겸 요청이다.

예나 지금이나 아무리 적자가 나도 금융당국이 자동차 보험료를 못올리게 하는 명분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는 서민 보호와 물가 안정. 둘째는 일반과 장기보험, 자산운용 등 다른 부분에서 이익이 많이 나는 편이니 자동차보험의 적자를 참아내라는 압박이다. 이번에도 이 두 가지 이유가 동원된 것으로 알려졌다.

얼핏 그럴듯한 말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이게 바로 시장경제원리의 작동을 훼손시키는 ‘독약’이기도 하다. 적자가 나는 상품의 가격을 원가 위로 올리는 건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기업 활동의 기본 중의 기본이다. 여러 가지 상품의 생산라인이 있는데 다른 라인에서 이익이 난다고 적자를 내고 있는 상품의 가격을 못 올리게 하는 건 시장원리는 둘째 치고 회계의 기본조차 외면하는 일이다.

서민 가계 보호 등 거시적 경제운용 목표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장기화된 불황으로 서민가계에 드리워진 먹구름이 심각한 상황이어서 정부로선 자보료 인상은 부담스러울 것이다. 더구나 내년부터 선거가 이어지지 않는가.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가격이라는 시장의 온도계가 정상 작동한다는 전제조건이 충족돼야만 설득력을 가질 것이다. 금융당국은 물가와 서민생활에 영향이 큰 자동차 보험과 실손 의료보험은 보험가격 자율화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적자가 나는 손보 상품의 두 축을 빼고 하는 자율화에 ‘자율화’라는 간판을 달 수 있을까.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은행, 증권, 카드 등 다른 금융권의 상품 가격 자율화에도 별로 기대할 게 없을지 모르겠다.

금융상품의 가격 자율화가 다른 어떤 목표에 앞서는 절대선이라서 이런 지적을 하는 게 아니다. 바가지요금 같은 가격의 지나친 방임도 있어서는 안되겠지만 과도한 ‘가격 관치’도 금융 산업의 건전한 발전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서민생활 안정과 금융자율을 조화시키는 최저선은 어떤 금융상품이든 적어도 적자는 내지 않는 정도를 보장해주는 것 아닐까.

금융 현장 출신인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규제개혁에 팔을 걷어 부치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역시 다르구나’하는 기대가 커졌다. 그러나 한편으론 관치에 익숙해져있는 금융당국의 저 바닥까지 임 위원장의 진정성 있는 열정이 스며들 수 있을지 의구심도 적지 않았다. 보험요율 자율화를 둘러싼 혼선을 보며 이런 걱정이 커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관의 기세에 주눅이 들어온 민간 기업 입장에서 보면 ‘그러면 그렇지’하는 탄식이 나오는 순간이다. 금융개혁과 규제완화 또한 한 때 지나가는 바람인 것을, 관치의 나라에서 섣불리 고개를 드는 우를 범하지 말자고 다짐하는 금융인들이 늘어나는 것은 아닐까. 그래도 임 금융위원장이 무언가를 큰 역할을 해줄 것이란 기대를 아직 접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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