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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N현장+] 메릴린치 단타...'고품질 시장교란?'

이대호 기자

#1.
주요 포털사이트에 메릴린치를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메릴린치 단타'부터 뜬다. 주식시장에서 초단타 매매로 인한 개인투자자들의 반감이 매우 높아진 상황을 방증한다.


#2.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메릴린치 규제 요구는 20건에 달한다. "시장교란 행위를 처벌해달라"는 것부터 "한국에서 퇴출시켜야 한다"는 내용까지 다양하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메릴린치 규제 청원 글. 비슷한 내용의 청원이 20건에 육박한다. /이미지=청와대 홈페이지

#3.
코스닥 소형주 '청보산업' 사례를 보자. 청보산업은 코스닥 중에서도 매우 작은 종목이다. 시가총액 350억원. 코스닥 1,272개 종목 중 1,150위다. 이런 소형주까지 메릴린치 단타의 손이 뻗고 있다. 지난 1일 오전 메릴린치 창구에서는 8분만에 4,000여주 매수와 매도가 번갈아 이뤄졌다.1.79% 상승하던 주가는 순간 5.72% 하락으로 급반전했다.

지난 1일 청보산업 장중 주가 흐름과 메릴린치 창구 수급 변화. 몇분 사이에 순매수-순매도가 급변했다. / 이미지=HTS 캡쳐


◆ 영역 확장 중인 초단타 매매

메릴린치 창구에서 행해지는 고빈도 거래가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이른바 알고리즘 매매. 지수나 종목별로 복잡 다양한 조건값을 미리 입력해놓은 뒤 해당 조건에 들어오면 매수·매도가 실행되는 시스템 트레이딩을 말한다. 주로 데이 트레이딩으로 쓰이며, 목표 수익률이 1%도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한 헤지펀드 관계자는 "어차피 밸류는 안 보고 추세와 가격만 보는 것"이라며, "수익률 목표를 짧게 잡고, 오전 오후 달라지고, 종가 관여율이 높은 것이 특징"이라고 전했다.

메릴린치 창구를 활용한 알고리즘 매매는 수년 전부터 이뤄져왔다. 문제는 '짜내기식 매매'의 영토를 무차별적으로 넓히고 있다는 점이다. 중소형주의 경우 "장중 방향성과 종가를 아예 메릴린치가 좌우해버린다"는 말까지 나온다.

예전에는 코스피200이나 코스닥150 등 특정 지수에 담긴 종목들 위주로 매매가 이뤄졌지만 근래 들어서는 시총 1,000억원 미만 소형주까지 발을 담그고 있다.

◆ 진화된 알고리즘 매매?

메릴린치 시스템이 더욱 진화한 것 같다는 분석도 따른다. 주문 종목이 많아질수록 더 고성능 시스템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 증권사 트레이더는 "매수 매도 신호를 포착하는 알고리즘과 주문 시스템이 연결된 것 같다"며, "알고리즘을 짜는 것은 어디든 할 수 있지만 이걸 바로바로 주문으로 이어지게끔 하는 것은 다른 금융사들이 하지 못했던 부분"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코스닥150지수에 없는 종목까지 그렇게 하기는 어렵다"며, "단순 주문이 아니라면 메릴린치 시스템이 굉장히 좋아졌다는 의미일 것"이라고 말했다.

고빈도 알고리즘 매매 주체를 누고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 이미지=메릴린치 홈페이지


◆ 어떤 자금일까?...풍문까지 증폭

그렇다면 이런 고빈도 매매는 누구의 돈으로 이뤄지는 것일까?

글로벌 퀀트펀드들이 첫손에 꼽히지만, 정확한 운용 주체와 규모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전 세계적으로 퀀트펀드 규모가 2017년 10월 9,400억 달러, 우리 돈 1,000조원을 넘어섰다는 통계(HFR)가 있을 뿐이다. 이 가운데 국내에 유입되는 퀀트펀드 자금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메릴린치 프랍 트레이딩 즉, 자기자본 투자일 가능성도 거론된다. 빠른 주문을 소형주 단타로 확장하는 것을 보면 프랍 트레이딩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 일각에서 미국 볼커룰 적용을 받아 프랍 트레이딩이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있으나 금융당국 관계자는 "현지법인으로 자격요건을 갖추면 미국계 증권사도 자기자본 매매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정확한 분석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때문에 관측도 엇갈린다. 또 다른 감독당국 관계자는 "자기자본 매매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며, "계열사 주문일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영업 중인 메릴린치증권은 서울지점 1개, 임직원 85명 수준인 소규모 지점이다. 영업 대부분이 브로커리지 즉, 주식매매 중개인 것으로 알려졌다.

풍문도 많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메릴린치를 통한 국내 알고리즘 매매 규모를 두고 "1,000억원으로 시작해 3조원이 됐다는 말도 있다"면서, "워낙 '카더라'하는 말들이 많이 떠돈다"고 전했다.

◆ 시장교란, 규제는 안 받나?

메릴린치 단타를 두고 개인투자자들의 원성이 자자하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국민청원이 이어지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네이버 종목토론실 등 주식 관련 커뮤니티에는 "멸치에게 놀아난다", "멸치를 때려잡자"는 글이 넘쳐난다. 멸치는 메릴린치를 가리키는 말이다.

금융감독원과 한국거래소는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규정 위반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호가 관여율을 포함해 불공정거래행위가 있는지 모니터링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게 전부다. 금감원 관계자는 "(메릴린치 단타 논란을)기사에서 몇번 봤다"며, "아직 문제가 발견된 건 없다"고 말했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알고리즘을 짤 때 단일계좌 집중이나 관여율처럼 시장교란 행위는 걸리지 않도록 설계하지 않았겠느냐"고 되물었다.

알고리즘 트레이딩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한 전문가는 "기계를 통한 거래는 '플래시 크래시(Flash Crash)'를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플래시 크래시'란 갑작스러운 붕괴라는 뜻으로, 프로그램 매물이 일시에 쏟아지면서 주가가 폭락하는 현상을 말한다. 지난 2010년 5월 6일 미국 다우지수가 거래 종료 15분을 남기고 순식간에 9% 폭락한 바 있다.

◆ 혼란스러운 투자자들...어떻게 해야 하나?

"메릴린치가 사면 오르고 팔면 내린다" 개미들 사이에 유행하는 말이다. 위험한 표현이다.

메릴린치가 사실상 장중 분봉차트를 만들어간다는 의미인데, 이에 편승한 추종매매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또 메릴린치 창구의 시세 영향력을 강화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여기서 새겨들어야 할 말이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메릴린치 창구 이용 자금이)프랍일 수도, 헤지펀드일 수도, 돈 많은 개인일 수도 있는 것"이라며, "메릴린치 창구가 상위에 뜨면 그냥 '아, 또 기계가 사는구나'하고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 개인투자자는 "오히려 퀀트 트레이딩이 유동성을 공급해 거래가 더 용이해지기도 한다"며, "단기적인 시세나 기술적 분석보다 기업의 본질에 초점을 맞추자"고 말했다.

당장은 이 방법밖에 없는 듯하다. 적어도 청와대와 금감원이 멸치를 때려잡아주기 전에는.


[머니투데이방송 MTN = 이대호 기자 (robin@m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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