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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N현장+]붉은 여왕의 덫에 빠진 르노삼성…열심히 살았는데

모조스 부회장 르노삼성 공장 방문해 생산성 향상 필요성 언급
르노삼성 부산공장 한때 동맹내 4위 경쟁력 높아
부산공장 경쟁 대상인 규슈 공장보다 생산비 20% 이상 높아져
권순우 기자


“르노삼성 부산공장의 시간당 생산비용은 이미 르노 그룹 내 공장 중 최고 수준에 도달해 있다. 그동안 부산공장은 생산 비용은 높지만 생산성 또한 높았기에 유지될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생산 비용이 더 올라간다면 미래 차종 및 생산 물량 배정 경쟁에서 부산공장은 경쟁력을 상실할 것이다”

부산공장을 방문한 모조흐 르노 제조 총괄 부회장

르노그룹 모조스 제조총괄 부회장의 지적은 한국 제조업의 현실을 매우 뼈 아프게 보여줍니다. 모조스 부회장은 파업이 장기화되고 있는 르노삼성을 우려해 22일 부산공장을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조립, 차체 등 세부 공정별 책임자를 직접 만나 회사가 직면한 상황을 그룹 차원의 관점에서 설명했습니다.

르노삼성 부산공장은 벌써 38번째 파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회사는 경영상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고 노조측은 그동안의 경영성과를 공유하자며 맞서고 있습니다.

문제는 지금이 르노삼성 부산공장에 대한 평가가 진행중인 시점이라는 점입니다. 르노삼성 부산공장에서는 미국으로 수출되는 닛산 자동차의 SUV '로그'가 생산되고 있습니다. 그 비중은 전체 생산 물량의 절반이나 됩니다.

르노삼성의 내수 판매는 2년 연속 10% 내외 하락률을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7년 르노삼성은 6조원이 넘는 매출, 3천억원이 넘는 당기순익을 올렸습니다. 이익의 상당 비중은 로그 위탁 생산에 따른 이익이었습니다. 르노삼성은 자동차를 개발해서 만들어 파는 것뿐 아니라 닛산 자동차를 대신 만들어주는 대가로 많은 이익을 보고 있습니다.

부산공장 닛산 로그 생산라인

그랬던 르노삼성 경영에 빨간불이 켜졌습니다. 올해 9월이면 닛산 로그가 단종됩니다. 생산의 절반을 차지하는 물량이 빠지면 공장가동률이 떨어지고, 인건비 등 고정비 부담이 크기 때문에 경영 악화가 불가피합니다.

닛산 로그의 빈자리를 채워줄 다른 생산 물량을 배정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부산공장은 닛산의 후속 모델 배정을 두고 경쟁하고 있는 일본 규슈 공장보다 20% 이상 생산비가 비싸다고 합니다. 생산을 위탁하는 닛산 입장에서는 생산비가 비싼 부산공장에 맡길 이유가 없는 셈이죠.

르노삼성 안팎에서는 노동자들이 지나치게 많은 임금을 받아 가기 때문이라는 비난이 일고 있습니다. 또 이 와중에 파업을 이어가고 있으니 좋은 소리를 듣긴 힘든 상황입니다.

모조스 르노 부회장은 르노삼성 부산공장이 생존할 수 있는 모범 사례를 제시했습니다. 모조스 부회장은 르노그룹의 스페인 바야돌리드 공장을 예로 들었습니다.

스페인 바야돌리드 공장은 연간 29만대를 생산하는 공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생산 차종의 판매가 부진하고 유럽의 경제 위기까지 맞물리면서 1300명의 임직원들에 대한 희망 퇴직을 실시하는 등 위기를 맞았습니다.

바야돌리드 공장 직원들도 많은 파업을 진행했지만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이후 바야돌리드 공장은 3년간 임금을 동결하며 생산 비용을 낮췄습니다. 이후 바야돌리드 공장은 2017년 기준 25만대를 생산해 92%를 수출하는, 전 세계에서 가장 생산성이 좋은 공장으로 거듭나게 됐다는 것이 모조스 부회장의 설명입니다.

모조스 부회장의 설명은 명확합니다. 부산공장의 생산 비용이 높기 때문에 생산성 경쟁에서 뒤쳐져 있다, 지금은 파업을 할 때가 아니라 생산 원가를 낮추기 위해 임금 동결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르노삼성 공장 근로자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습니다. 위기를 겪고 생산성을 향상시켜 다시 살아난 스페인 바야돌리드 공장과 같은 사례는 또 있는데 다름 아닌 바로 르노삼성 부산공장입니다.

부산공장은 2011년 경영위기를 겪었고 2012년과 2013년 2년간 임금을 동결 했습니다. 또 전체 인력의 20% 이상이 회사를 떠났습니다.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안에서 르노삼성 공장 순위는 25위에서 4위까지 올라섰습니다. 그렇게 얻어낸 것이 닛산 로그 생산 물량입니다.

최근 규슈 공장에 비해 생산비가 높아지게 된 것도 르노삼성 노동자들의 잘못이라고 보기는 힘듭니다. 로그 배정 이후 르노삼성의 연평균 임금 상승률은 약 2.7%로 제조업 평균 임금 상승률에 비해 높다고 보기 힘듭니다.

또 통상임금 자율합의, 임금 피크제 도입, 호봉제 폐지 등 다른 자동차 제조사였다면 격렬한 노사 갈등을 벌일 만한 사안에 대해 회사와 분규 없이 타협을 했습니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 르노삼성 노조는 3년 연속으로 임단협을 무분규로 타결을 했습니다. 7개 차종을 혼류 생산하는 공장은 한국에서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흔치 않습니다. 르노삼성은 같은 기간 닛산 로그 생산 수익과 SM6, QM6 등 신차 판매 호조로 매년 3천억원 넘는 이익을 올렸습니다.

르노삼성 3년 연속 무분규 임단협 타결

르노삼성 노조가 장기 파업을 시작한 것은 지난해 강성 노조 집행부가 출범한 이후부터입니다. 노사관계의 모범 사례로 여겨졌던 르노삼성 근로자들은 강성 노조에 가장 많은 표를 던진 것은 그동안 자신들이 보여준 생산성에 비해 처우 개선이 부족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겁니다.

문제는 경쟁 공장인 규슈 공장의 생산비가 대폭 줄었다는 점입니다. 규슈 공장의 연평균 임금 상승률은 1% 미만이었습니다. 한국에 비해 성장률의 낮은 일본의 현실을 반영한 겁니다.

또 고령화가 부산공장에 비해 먼저 찾아온 규슈 공장은 상당수의 고임금 고령 노동자들의 퇴직도 먼저 이뤄졌습니다. 이후 임금이 낮은 젊은층, 외주 생산 비중이 높아지면서 전반적인 임금 수준이 낮아졌습니다.

이에 더해 환율 변화도 부산공장과 규슈 공장의 경쟁력을 뒤바꾸는 중요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2012년 이후 엔달러 환율은 40% 가량 상승했고, 반면 원달러 환율은 1%가량 하락했습니다. 환율로 인한 원가 경쟁력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르노삼성 부산공장 직원들의 인건비는 다른 국내 제조사에 비해서도 낮은 편입니다. 르노삼성 부산공장의 인건비는 7800만원으로 현대차 9300만원, 한국GM 9000만원에 비해 낮은 것은 물론 적자를 이어가고 있는 쌍용차 8300만원에 비해서도 낮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닛산 로그 후속 모델 배정을 둔 경쟁 상대인 규슈공장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생산비가 높습니다. 이기인 르노삼성 제조본부장은 “추가 차종에 대해서는 이미 늦었다”며 “닛산 쪽에서는 다른 공장에 배정하거나 프로젝트 자체가 위험한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로그가 아닌 다른 차종을 배정 받을 가능성이 남아 있긴 하지만 로그의 빈자리를 메우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중형 SUV 로그는 미국 시장에서 연간 40만대 이상 판매되며 도요타 라브4와 SUV 1,2위를 다투는 베스트셀링카입니다.

캐시카이 후속 모델을 배정 받거나 내년에 신형 SUV를 투입한다고 해도 로그의 빈자리를 메우기에는 역부족입니다. 거대한 미국 시장을 대체할 시장도 없고, 그 시장 베스트셀링 모델을 대체할 차종도 없습니다.

다른 생산 차종을 투입하더라도 근로시간 단축과 임금 하락은 불가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나마라도 배정을 못받으면 더 심각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르노삼성 관계자는 “로그 후속이 아니라 뭐라도 배정을 받아야 그나마라도 생산 물량을 확보할 수 있다”며 “생산 물량 확보의 첫 단추가 임단협 타결”이라고 말했습니다.

파업이 장기화 될수록 부산공장의 점수는 더 떨어지고 있습니다. 공장을 평가하는 기준 중에는 생산비뿐 아니라 납기의 적시성이 있습니다. 생산기지는 판매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적절한 시점에 차량을 공급하는 것이 무척 중요합니다. 장기 파업으로 인해 납기의 적시성 항목에서도 감점을 받는다면 후속 물량 배정 경쟁에서 더욱 뒤처지게 됩니다.

‘붉은 여왕의 효과’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어떤 대상이 변화를 하더라도 경쟁 상대가 더 빠르게 변화함에 따라 상대적으로 뒤처지게 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영국의 작가 루이스 캐럴이 쓴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유례한 말입니다. 붉은 여왕의 나라에서는 주변 세계도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열심히 뛰어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앞서 가고 싶으면 두 배로 열심히 뛰어야 한다.

르노삼성 직원들은 참 열심히 근무했는데, 붉은 여왕의 나라처럼 다른 나라 공장도 생산성 향상을 위해 앞으로 달려나가고 있기에 멈춰 쉴 수 없다는 점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머니투데이방송 권순우(soonwoo@mtn.co.kr)


[머니투데이방송 MTN = 권순우 기자 (soonwoo@m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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