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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무엇이 현대중공업 직원들을 분노하게 했는가?

초기에 반발하지 않았던 현대중공업 노조 물적분할 후 감정 격화
'빚만 떠 안는 분할'은 물적분할에 대한 왜곡된 주장
구조조정 과정에서 커진 불안감 무시한 사측의 일방통행이 불씨 당겨
권순우 기자

처음부터 이렇지는 않았습니다.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 인수를 둘러싼 갈등이 점차 격화되고 있습니다. 주총장을 점검하고 경찰이 공권력 투입을 검토할 정도로 울산의 민심은 흉흉합니다. 송철호 울산시장은 현대중공업 분할에 반대하며 삭발까지 했습니다. 그들은 왜 반발하고 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런 방식으로 대우조선 인수가 진행되고 있는지 하나하나 점검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 인수는 현대중공업 노조에게 불리한 방식인가?
=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을 인수하는 것에 대해 처음부터 현대중공업 노조가 반발하는 것은 아닙니다.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 인수안이 발표가 됐을 때 대우조선 노조는 90% 이상 압도적으로 반대를 했습니다. 피인수 기업의 불안감은 이해할 만 합니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당시 52%만 반대를 했을 뿐입니다.

현대중공업 노조가 극렬히 반대하기 시작한 것은 ‘물적분할 계획’이 발표된 이후부터였습니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이번 물적분할이 '빚은 현대중공업이 떠안고 자산은 한국조선해양(중간지주사)가 가져가는 구조'라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또 빚에 허덕이다가 결국 구조조정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표면적으로 보면 현대중공업(신설회사)의 부채 비율이 증가하는 것은 맞습니다. 분할 내용을 살펴보면 지주사는 자산 11조, 현대중공업은 13조를 갖고 부채는 지주사 1600억원, 현대중공업은 7조원을 갖게 됩니다. 분할 이후 한국조선해양의 부채비율은 62.1%에서 1.5%로 줄어들고 현대중공업은 60%에서 115%로 늘어납니다. 이 때문에 ‘빚만 많아진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수주산업의 특징과 물적분할의 개념을 생각하면 이같은 우려는 기우에 불과합니다. 조선사는 선박 발주를 받으면 주문자(선주사)로부터 선수금을 받습니다. 선수금은 선박을 건조해줘야 한다는 의무가 부여된 ‘부채’로 인식됩니다.

또 협력업체로부터 부품, 기자재를 납품 받고 어음을 끊어주면 매입채무, ‘부채’로 인식됩니다. 선수금은 선박이 만들어지는 공정에 따라 매출과 이익이 되고, 매입채무는 정산을 해주면 사라지게 됩니다. 이자를 내야 하는 ‘빚’이 아니라는 겁니다.

물적분할 역시 마찬가집니다. 물적분할은 사업부문을 나누는 것이며, 현대중공업이 가져가는 자산/부채는 선박을 건조하기 위한 자산/부채입니다. 재무비율을 고려해 지주사와 사업회사의 자산/부채를 나눈 것이 아닙니다.

현대중공업은 100% 자회사가 되기 때문에 한국조선해양(지주사)의 장부에 그대로 기재가 됩니다. 현대중공업의 재무상황이 악화되면 지주사 재무제표도 악화가 됩니다. 현대중공업의 재무 상황을 악화시켜 구조조정을 하려고 한다는 것은 물적분할의 절차를 왜곡한 주장입니다.



2) 울산지역에 악영향을 미칠 만한 구조 개편인가?
= 송철호 울산시장은 한국조선해양 본사가 서울에 위치하게 되면 지역 경제에 악영향이 미칠 것이라며 삭발까지 감행하며 반발했습니다. 알짜 사업이 서울로 가면 법인세수 등이 감소할 것이라는 겁니다.

현대중공업에서 돈을 버는 부문은 울산에 있는 사업부문입니다. 중간지주사는 현대중공업, 미포조선, 삼호중공업 등 조선 계열사들의 지분을 관리하고 연구개발 및 투자부문을 담당합니다. 특별히 돈을 버는 사업은 없습니다.

한국조선해양은 현대중공업으로부터 배당금을 받게 됩니다. 배당은 울산 지역에서 법인세를 모두 납부하고 남은 금액 중 일부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세수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한국조선해양이 연구개발 부문을 가져가게 되면 울산 지역의 연구개발 부문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연구개발 인력들이 울산을 떠나게 되면 미미하나마 소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대중공업은 대우조선 인수를 논의하기 전부터 이미 판교에 글로벌 연구개발센터(GRC)를 설립하고 연구개발 역량을 수도권에 집중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현대중공업은 3500억원의 예산을 들여 2021년까지 글로벌연구개발센터(GRC)를 설립하고 1만여명의 연구개발 인력을 충원해 역량을 강화할 계획입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연구개발 인력들이 울산보다 수도권을 선호하고 우수 인재 영입을 위해서는 수도권을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한국조선해양이 연구개발을 주도하게 되는 것은 향후 대우조선 인수를 대비하려는 목적도 있습니다. 개별 기업 차원에서 각각 연구개발을 할 경우 비용이 많이 들고 집중력이 부족할 수 있습니다. 대우조선과 현대중공업이 공동으로 연구개발을 하려면 각 기업의 연구개발 부문을 분리해 통합 운영 할 필요가 있습니다.



3)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일가를 위한 구조 개편인가?
= 일각에서는 한국조선해양 물적분할이 정몽준 이사장 일가의 지배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하고 있습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지주사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총수 일가의 지배력을 강화한 바 있습니다.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은 현대중공업 지분 10.15%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지주사로 전환이 되면서 28.15%로 지분율이 높아졌습니다. 현대중공업 주식 617주를 보유하고 있던 정기선 부사장은 현대중공업 지주 83만 1097주를 보유하게 됐습니다. 지분율을 높이는데 총수 일가의 추가적인 자금은 투입되지 않았습니다.

제윤경 의원실에 따르면 지주사 전환 이후 현대오일뱅크 지분에 대한 대주주 귀속분은 2015년 283억원에서 2017년 1793억원으로 6배 넘게 늘었습니다.

이같은 전력이 있었기 때문에 지배구조 개편이 있을 때마다 총수일가 지배력 강화를 의심하게 됩니다. 하지만 총수 일가의 지분은 현대중공업지주에 집중돼 있고, 물적분할은 자회사인 현대중공업에서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에 총수일가의 지배력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또 한국조선해양 지분의 일부를 산업은행이 보유하게 되기 때문에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은 일정 부분 제한됩니다.

4)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 통합은 국제적으로 비난 받는 일인가?
= 국제 제조산업 노조는 대우조선 인수 반대를 결의했습니다. 국제 제조산업 노조는 “한국조선해양이라는 조선소가 생기게 되면 건전한 경쟁보다는 강력한 독점력이 세계 조선시장을 지배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유럽 지역은 2개 조선사의 통합을 달가워하진 않고 있습니다. 독일 안드레아스 문트 연방 카르텔청장은 “소비자에게 이익이 되는지를 최우선으로 고려하겠다”고 말했고, EU 집행위는 “합병을 평가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경쟁제한 여부와 소비자에 대한 영향”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들이 대변하고 있는 이해 관계자는 각각 외국 조선사, 해외 선사입니다. 외국 조선사는 현대중공업, 대우조선과 선박 건조 일감을 두고 수주 경쟁을 해야 하는 경쟁자입니다. 통합으로 생산성이 높아지고, 비용절감을 통해 수주 경쟁력이 높아지는 상황을 반기지 않습니다.

EU집행위가 고려하겠다는 소비자는 한국 조선사로부터 더 싸게 선박 건조를 맡기고 싶은 선주사입니다. 이들 역시 현대중공업-대우조선의 통합으로 협상력이 강해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주체이며 오히려 한국 조선 3사가 출혈 경쟁, 저가 수주를 할 때 이익을 본 이해 관계자입니다.

현대중공업, 대우조선 노조가 자신들과 이해관계가 배치되는 이들의 주장을 인용해 반대하는 장면은 아이러니합니다.



5) 현대중공업은 직원, 지역과 충분히 소통했는가?
= 한국 조선업이 지난 수년간 혹독한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구성원들의 불안감이 많이 커져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지역 경제도 악화돼 지역 민심도 흉흉한 상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빚을 떠안는 기업 분할, 서울 수도권으로의 인력 및 자본 유출 등 왜곡된 정보에 더 많은 사람들이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실제 현장에서 만난 울산 시민들, 현대중공업 직원들은 자신들의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현대중공업 직원은 “자율경영을 보장하겠다, 추가적인 구조조정은 없다는 말을 하더라도 이전에도 회사에 속았다는 불신을 갖고 있기 때문에 믿을 수가 없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 인수는 ‘스토킹 홀스’ 방식으로 전격적으로 발표가 됐습니다. 인수 구조와 기업 구조의 개편을 누구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일사천리로 진행이 됐습니다. 복잡한 인수 구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을 하겠지만, 노동자와 지역 주민들의 불안감이 커진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입니다. 사후적으로라도 인수 취지와 개편 과정, 향후 전망에 대해 충분히 설명했어야 합니다.

국회 관계자는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을 인수한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에도 이렇게 격하게 반발하지 않았는데 절차가 진행이 되면서 시위가 격해진 것은 소통 부족의 문제로 보인다”며 “어차피 반대할 것이라며 무시할 것이 아니라 구성원들의 불안감을 낮춰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울산 현대중공업에 다니는 남편을 둔 한 아이의 엄마가 물적분할을 막아 달라고 충원하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그는 “신랑은 혹시 내가 거제도로 쫓겨나는 건 아닌가. 아님 내가 짤리는 건 아닌가. 이런 생각으로 많이 힘들어 했다”고 말했습니다.

노조와 울산시장, 지역 주민까지 불안에 떨고 있다면 절차적 정당성, 물적분할의 필요성을 불문하고 함께 가야 할 이해 관계자들에게 과연 최선을 다해 설명했는지 현대중공업 스스로 반문해 봐야 할 것입니다.

머니투데이방송 권순우(soonwoo@mtn.co.kr)

권순우 머니투데이방송 MTN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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