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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N현장+] 천막 시위와 증시 상장식

이대호 기자

"이제 막 상장하는 기업들인데, 이런 모습 보여주는 거 민망하죠."
"설레는 마음으로 왔는데, 분위기가 좀 그렇네요."

한국거래소 관계자와 신규상장기업 관계자의 말이다.

"상장기업들도 한국거래소 현실을 알아야 합니다."
"노동운동, 쟁의행위도 교육 가치가 있어요."

한국거래소 노동조합의 이야기다.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1층 로비에 노동조합 천막(오른쪽)이 설치돼 있다. 사진 왼쪽은 코스피·코스닥 상장식이 열리는 장소 / 사진=MTN DB

자본시장 메카,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1층 로비에는 파란 천막이 있다. 벌써 두 달 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국거래소 노조(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한국거래소지부)가 설치한 천막이다.

지난 10월 이른바 '낙하산 인사'에 반발하며 노조가 설치한 천막. '금피아(금융+마피아)'로부터 한국거래소 독립성을 지켜야 한다며 내건 '적폐청산' 슬로건.

반대했던 유가증권시장본부장과 파생상품시장본부장이 지난 10월 말 그대로 임명되자 노조 천막시위는 장기화 됐다. 이달에는 본부장보 3인(경영지원본부장보 및 코스닥시장본부장보 2인) 인사를 두고도 비판적 성명을 냈다.

사실, 한국거래소 노조가 1층 로비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진행한 일은 과거에도 수차례 있었다. 이사장, 부이사장 등 임원 인사를 전후로 특히 그랬다.

지난 2013년 9월 당시 최경수 이사장 선임을 반대하기 위해 설치된 한국거래소 노조 천막 / 사진=뉴스1

그러나 이번 천막이 조금 다른 분위기를 내는 것은 한국거래소 1층 로비를 오가는 사람이 더욱 많아졌기 때문이다. 상장식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신규상장사 임직원부터 견학을 온 학생들까지.

서울사옥 본관과 국제회의장 리모델링 공사가 지난 9월 시작되면서, 대내외 행사가 대부분 1층 로비로 몰렸다. 대형 홍보관에서 펼쳐지던 상장식 행사도 비좁은 1층 로비에서 열린다. '꿈꾸는 여의도 경제버스'와 같은 중·고등학생 견학 프로그램도 1층 로비를 거치게 된다. 현재로서는 한국거래소 현장 분위기가 날 만한 곳이 1층 로비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장소에 노조 천막이 더해지면서 공기가 달라졌다.

한국거래소 일부 리모델링 공사가 시작되면서 본관 쪽 펜스(왼쪽 아래)가 쳐졌다. 공사로 인해 기존 홍보관에서 열리던 행사가 1층 로비로 집중됐다. 본관 입구(오른쪽 아래)에는 낙하산 인사를 규탄하는 노조 현수막이 걸려 있다. / 사진=MTN DB

상장식을 주관하는 부서는 머리를 싸맨다. 상장식 장소를 노조 천막이 보이지 않는 뒷문 쪽으로 옮겼다가 너무 비좁다는 지적에 다시 정문 쪽으로 방향을 돌리기도 했다. 노조 천막 쪽으로 임직원이 서있도록 해 일종의 '인간 병풍'을 만들기도 한다. "상장식 분위기를 해친다"거나, "신규상장 기업에게 민망하다"는 이유에서다.

상장식이 열리는 날은 해당 기업 임직원과 가족, 상장주관사 관계자 등 많게는 100명 이상이 몰린다. 하루에 기업 두 개 이상 상장하는 날은 더욱 북적인다.

주식투자는 해봤어도 한국거래소에는 처음 와본 신규상장사 직원들. 사업을 시작해 IPO(기업공개)까지 성공한 기업가. 1년 넘게 공들여 IPO를 마무리한 상장주관사. 모두에게 이날은 잔칫날이다. 이들의 눈에 처음 들어오는 것이 '노조 천막'이라는 점이 아쉬울 뿐. 특히 노조 천막이 들어선 시점이 상장식이 가장 많이 몰리는 4분기여서 더욱 그렇다.

노조는 천막을 철거할 생각이 없다고 한다. '독립적이고 공정한 인사'가 관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현재 진행 중인 임단협이 체결되면 천막 철거의 명분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지만, 노조는 "상관 없는 일"이라고 선을 긋는다.

오히려 노조는 '천막 시위가 상장식에 방해된다', '거래소 이미지를 깎아먹는다'는 지적에 적극 반박한다. 오히려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

이동기 한국거래소 노조위원장은 "상장기업들도 한국거래소 이해관계자로서 거래소가 마냥 잘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며, "다른 노조처럼 음악을 트는 등 소음공해를 일으키는 것도 아니고, 최대한 혐오감을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이를 불편하다고, 눈꼴 사납다고 하는 것은 천막을 치우게 하려는 (사측의) 작전일 뿐"이라며, "(견학 온) 학생들에게도 선생님들이 노동조합과 쟁의행위에 대해 가르쳐주는 계기가 된다"고 말했다.

나아가 "짧은 30분 상장식에 매번 300만원씩 쓰는 등 상장식 자체가 너무 허례허식으로 운영된다"는 점과, "상장 제도를 너무 완화시키다보니 한계기업이 속출하고 무자본 M&A, 불성실공시 등이 증가한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당분간은 '천막을 앞에 둔 상장식'이 계속될 듯하다. 이미 우리나라 자본시장, 노동현장의 한 부분이 되어 버린 것 같기도 하다. 파란 천막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관치 논란과 독립성 투쟁까지. 상장사 임직원, 견학 온 학생들에게 한국거래소 첫인상은 어떻게 기억될까?



이대호 머니투데이방송 MTN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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