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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 임상 가로막는 '첨바법'… "식약처 이중승인 개선 시급"

5억 항암제 '킴리아' 만든 연구자주도 임상… 국내선 규제 가로막혀
강형진 서울대병원 교수, "CAR-T 연구 뒤쳐지면 의료속국 될까 우려"
전혜영 기자

서울대병원이 자체 생산한 CAR-T 치료제를 투여받은 후 치료에 성공한 18세 백혈병 환자. (사진=서울대병원)

한 번의 투약으로도 암 완치가 가능해 '꿈의 항암제'로 불리는 CAR-T 치료제의 국내 개발이 법적 규제에 발목 잡혀 순항하지 못하고 있다. 공익적 목적의 연구자주도 임상에서도 해외에선 요구되지 않는 불필요한 검증 과정이 필요한 탓에 한국은 수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글로벌 CAR-T 시장에서 뒤처질 위기에 놓였다.

◆지난해 7,200억원 팔린 '킴리아', 연구자주도 임상으로 시작
미국 FDA(식품의약국)에서 최초로 승인된 CAR-T 치료제는 노바티스의 '킴리아'로, 국내 도입 당시 1회 치료비가 5억원에 달해 '5억 항암제'라는 별칭도 붙었다. 킴리아는 지난해 기준 5억 8,700만 달러(한화 약 7,200억원)의 글로벌 매출을 기록하면서 CAR-T 치료제의 엄청난 시장 가치를 입증한 바 있다.

글로벌 빅파마가 처음부터 개발해 선두 진입에 성공했을 것이란 예상과 달리, 킴리아는 미국 펜실베니아대 연구팀이 연구자주도 임상을 통해 초기 임상을 진행한 후 노바티스로 기술이전한 약이다. 연구자주도 임상에서 충분한 임상적 유의성을 입증한 이후, 노바티스로 기술이전해 최종 임상을 진행했기 때문에 빠른 임상 진전과 상업화가 가능했다.

이처럼 미국의 경우, 공익적·학문적 목적의 연구자주도 임상은 상업화 목적의 규제 기관인 FDA가 아닌 NIH(미국국립보건원)의 규제를 받기 때문에 비교적 빠르고 합리적인 임상 진행이 가능하다. 국내서도 지난 2020년, 희귀·난치질환자들을 위해 첨단 의약품을 빠르게 도입하고 개발하기 위한 '첨단재생바이오법'을 제정했지만 일부 조항으로 인해 연구자주도 임상은 난항에 부딪혔다.

서울대병원 의료진들이 원내 자체 생산한 CAR-T 치료제 투약을 시행하고 있다. (사진=서울대병원)


◆식약처 승인에 불필요한 규제 항목 포함… 임상 전개 어려워
첨단재생바이오법 12조 3항에 따르면, 의료기관이 CAR-T 치료제를 포함한 '고위험 임상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보건복지부와 식약처가 공동으로 선별한 '심의위원회'를 거쳐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의 승인을 재차 받아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미 첨단바이오의약품 분야에서 충분한 전문지식을 갖춘 의료인으로 구성된 심의위를 거쳤음에도, 식약처의 이중 심의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원내 자체 생산 CAR-T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는 강형진 서울대병원 교수는 "환자를 살리기 위한 공익적 목적의 임상조차 상업화 목적의 임상 규제와 동일한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식약처의 이중 승인을 받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검증이 필요했고, 1~2년 걸릴 것으로 예상됐던 임상 승인에는 4년이 소요됐다"고 말했다.

실제 강형진 교수팀은 식약처 승인을 받기 위한 과정에서 '외래성 바이러스 부정실험'과 '동물실험' 결과를 제출하기 위해 어려움을 겪었다. 강 교수에 따르면, CAR-T 치료제는 그 특성상 외래성 바이러스가 발생할 가능성이 극히 드물다. 국내선 검사 기관도 거의 없으며, 비용도 수천만원에 달한다. 동물실험 또한 CAR-T 치료제가 작용하는 T세포는 인간화 쥐의 T세포와 상당한 차이가 있어 이종반응을 피하기 어렵다. 이런 이유로 해외서는 대부분 동물실험을 진행하지 않았다.

강 교수가 임상 승인을 위해 4년을 고군분투하는 동안, 해외에서는 수많은 연구가 승인을 받아 현재까지 1000여개에 달하는 CAR-T 치료제 임상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이중 중국에서만 약 600건의 연구가 진행 중이며, 태국·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에서도 빼놓지 않고 임상을 진행 중이다. CAR-T 치료제는 미래 '의료 자주권'을 확보하기 위한 핵심 치료제로 전망되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PMR'는 CAR-T 치료제 글로벌 시장 규모가 2031년 약 4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첨바법 개정 지금이 '적기'… "뒤처지면 '의료속국' 될수도"
곡절 끝에 강형진 교수팀이 임상에 진입하면서, 킴리아 급여 적용의 사각지대에 놓였던 말기 백혈병 환자들 일부는 생명을 연장할 수 있게 됐다. 올해 서울대병원이 자체 생산한 CAR-T 치료제로 치료받은 환자는 심장 옆에 재발한 백혈병 종괴가 치료 후 완전히 사라진 것으로 확인됐다. 우수한 치료 성적을 기반으로 복지부에 임상 환자 수 확대를 요청해 통과된 상태다.

그러나 '이중 승인'의 어려움으로 인해 CAR-T 치료제 임상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곳은 서울대병원 한 곳뿐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첨단재생의료 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실시기관은 상급종합병원 28곳을 포함해 47곳에 달한다.

강형진 교수는 "학문적·공익적 목적으로 임상1·2상을 진행한 후, 성공했을 때 기업에 기술이전해 상업화 과정을 거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모델"이라며 "이를 활성화하기 위해 만든 것이 첨단재생바이오법인데, 특정 조항으로 인해 식약처 승인이 포함되면서 사실상 연구자주도 임상을 가로막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강 교수는 "첨단재생바이오법이 마지막 치료 기회가 있는 환자들에게 삶의 기회를 줄 수 있는 법으로 개정될 필요가 있다"며 "확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CAR-T 치료제 시장에서 한국이 뒤처진다면 미래엔 '의료속국'이 될까 우려된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고 강조했다.



전혜영 머니투데이방송 MTN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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