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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리뷰] ‘천재’의 광기와 열정에 대한 섬광 같은 통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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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중후반 무렵 ‘범죄학’을 창시한 것으로 알려진 이탈리아 법의학자 체자레 곰브로조는 다윈의 진화론을 적용하여 범죄성이 유전적 형질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이후 많은 반박과 수정을 받아야 했지만 그가 범죄인류학과 법의학 발전에 기여한 공은 널리 인정되고 있다.

“우리가 천재성이라 부르는 것 또한 유전적 정신병의 형태”라는 가정 하에 곰브로조가 1888년 펴내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책이 『미쳤거나 천재거나(The Man Of Genius)』이다. “천재는 신경병으로 인한 것”이라는 가정을 신뢰하기는 어려워도, 동서양의 천재들을 통해 그가 날카롭게 끄집어 낸 패턴들 다수가 지금도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

곰브로조가 보기에 천재들은 “요령이라고는 없고, 중용의 미덕도 갖추지 못했으며, 실생활에서 어수룩한 면모를 보이는” 인간들이다. 천재와 광인은 충분히 혼동될 여지가 있다. 천재들은 두개골과 뇌에서 흔히 손상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루소, 바그너, 파스칼의 경우 의학적으로 뇌의 손상이 확인된 경우다.

천재들은 ‘한 번 꽂히면 끝까지 가는 특성’이 있는데 이는 무의식이 발달한 결과다. 나폴레옹은 결정적인 순간이 닥치면 눈앞에 번쩍 하고 영감이 떠오른다고 말했고, 모차르트는 음악적 영감이 마치 꿈처럼 불쑥불쑥 떠올랐다고 고백했다. 같은 맥락에서 소크라테스는 “시인들이 과학적인 사고가 아니라 자연의 본능에 의지해 창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천재들은 영감을 얻고자 몰두하는데 이는 외견상 광기에 사로잡힌 사람과 구별하기 어렵다. 쉴러는 발을 얼음에 담그고는 그 충격으로 영감을 얻으려 했다. 밀턴은 안락의자에 머리를 뒤로 젖힌 채 작품을 썼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짐꾼의 모습을 유심히 본 다음 「가롯 유다」 그림을 완성했다.

천재들은 매우 조숙한 면모를 보인다. 단테는 아홉 살에, 루소는 열 살에, 바이런은 여덟 살에 각각 첫사랑을 경험했다. 그와 같은 극도의 예민함은 불행의 원흉이기도 했다. 하이네는 죽음에 임박해서 “작은 것 하나도 이해할 수 없는 상태”라고 고백했다. 베토벤은 툭하면 외투나 모자를 잊어먹었으며, 그 때문에 부랑아로 오인되어 유치장에 갇히기까지 했다.

천재들은 멈출 수 없는 열정으로 광기를 넘어서는 인물이다. 저자는 천재에게 나타나는 광기의 총집합체로 쇼펜하우어를 든다. 지독한 슬픔과 과도한 환희로 급변하는 그의 감정을 누구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에게 질린 어머니가 절연을 통보하기도 했고, 지나친 불안증 탓에 그 자신도 악령에 씌었다고 믿을 정도였다. 『대장 불리바』의 작가 고골은 척수매독으로 인한 탈진으로 제단 앞에서 최후를 맞았다.

그럼에도 천재의 위대성은 그들이 인류의 진보에 크게 기여해 왔다는 점에 있다. 새로운 문명이 새로운 예술을 잉태하는 시기에는 어김없이 천재들이 맹활약했다. 루터는 27살에 현기증 증상이 나타났고 이후 늘 신경 이상으로 고통을 받아야 했지만 동시대의 사상을 자기 안에 갈무리했다. 뉴턴은 열정에 지나치게 많은 이성을 빼앗겨 노년에 정신이상 증세를 보였다.

로크에게 보낸 편지에서 뉴턴은 난로 옆에서 자는 통에 이주일 동안 잠을 자지 못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발견한 만유인력은 인류의 세계관을 영원히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아시시의 프란체스코, 사보나롤라, 콜라 디 리엔조, 캄파넬라, 다비드 라차레티 같은 인물의 천재적 면모도 자세히 기술된다.

천재들은 때로 미치광이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틀에 가둘 수 없는 인물들이다. 이중인격과 동시다발적인 망상을 보인 천재로 월터 스코트, 바이런이 있고, 술독에 빠져 산 천재로 에드가 앨런 포나 보들레르가 있다. 곰브로조는 천재들에게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간질병적 발작을 가장 잘 묘사한 예로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과 『백치』, 플로베르의 「서간집」, 졸라의 『자연주의 소설론』 등을 든다. 사실 도스토예프스키의 글들은 그 자신을 묘사한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모습을 두고 저자는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다음과 같은 가르침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최고의 불운이라 할 광기에 대해서는 존중하는 마음을, 동시에 천재의 걸출함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현혹되지 않도록 경계하는 마음을.”

곰브로조는 “천재들은 궤도를 잃고 지구 표면에서 산산이 흩어지는 유성과 같은 존재”라고 말한다. 집요한 학문적 열정과 섬광처럼 내뿜는 통찰력이 압권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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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쳤거나 천재거나 : 천재를 위한 변명, 천재론‘ = 체자레 롬브로조 저. 김은영 역. 책읽는귀족. 568쪽. / 분야 : 인문교양 / 값 25,000원



김선태 기자 kstkks@me.com

[MTN 온라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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