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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리뷰] 삶의 많은 여정을 늘 ‘처음처럼’ 시작하게 만드는, ‘따뜻한 잠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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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신영복 전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글과 그림을 곁들여 수많은 ‘처음’에 관해 사색하고 그려낸 잠언집, 『처음처럼』 개정신판이 나왔다. 첫 글 「처음처럼」과 마지막 글 「석과불식」만 그대로 두고 전체 구성을 대폭 바꾸었으며, 기존 글에 보완된 부분이 많아 초판에 비해 3분의 1 가량 분량이 늘어났다.

책을 펼치면 이제는 일반인과도 친숙해진 저자 특유의 붓글씨를 비롯해 많은 삽화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저자가 감옥에서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밝게 만들어 보고자’ 엽서 아래쪽 구석에 앉혔던 그림들이 지면 가운데로 들어가 자리 잡은 결과다. 저자는 애써 “글이 줄어들고 상대적으로 그림의 비중이 더 커지면서 그 부족함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며 의미를 줄이려 하지만 내용을 찬찬히 뜯어보면 어느 그림 하나도 ‘갑자기 격상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글과 그림이 있어야 할 자리에 제대로 놓여 저자의 생각을 조화롭게 전달하는 느낌이다.

서문에서 저자는 이 책이 ‘역경을 견디는 자세에 관한 것’이라고 밝힌다. 그 방법은 처음의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수많은 처음’을 꾸준히 만들어내야 한다. 그처럼 독자들이 자신의 앨범을 열고 자신의 그림들을 확인해가는 여정에서 이 책을 짧은 길동무 삼아 주기를, 저자는 바라고 있다.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 가는 끊임없는 시작입니다.” 저자 특유의 서체를 세상에 알린 굵고 강렬한 네 글자 ‘처음처럼’에 담긴 이야기다.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는 새싹처럼” 우리는 언제나 새날을 시작하며 살아가지만, 이를 날마다 의식하기란 참으로 쉽지 않다.

히말라야의 높은 산에 살고 있는 토끼는 “자기가 평지에 살고 있는 코끼리보다 크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높은 기득권의 단상 위에 걸터앉은 소인배들이 자신들이 보는 세상만이 전부인 양 거들먹거리며 곡학·곡필하는 대가로 자리를 보전하는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닐 것이다. 타인을 단정하는 자는 자신이 단장(斷腸)할 날을 준비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착각에 빠진 토끼는 결코 평지로 내려올 생각을 하지 못하는데, 진실을 대하는 순간 자신의 삶이 끝장난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春風大雅能容物 秋水文章不染塵. “봄바람처럼 큰 아량은 만물을 용납하고, 가을 물같이 맑은 문장은 티끌에 물들지 않습니다.” ‘춘풍추수’라 줄여 읽히며 시경 대아편에서 말하는 정치의 경지를 펼친 내용으로 중국 전서의 대가 등석여가 썼고 그의 글을 보고 추사 김정희가 다시 쓴 것으로도 유명한 대련구다. 저자의 서체로 감상하고 있으면 내용의 심오함에 문장의 무게와 맥락의 역사성이 어우러져 긴 울림을 준다.

지산겸(地山謙)은 주역에서 “땅속에 산이 있으니 겸손하다”는 풀이가 따르는 괘다. 얼핏 자연현상으로는 모순되어 보이는 이 괘를 두고 저자는 겸손이 ‘군자의 완성’임을 보여준다는 원전의 해석을 강조한다. 이를 토대로 저자는 “겸손은 관계론의 최고 형태”라고 말한다. 저자가 오랜 사색의 여정 끝에 동양적 사고의 기본틀을 구성하는 관계론의 중요성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글이다. 인격의 최종 잣대로서 겸손이 갖는 중층적 의미에 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전에 이 책을 읽고 ‘처음’의 의미를 새겨 본 독자라면, 다시 펼쳐 든 이 책에서 자신이 만들어 갈 ‘처음의 나날’들에 대한 암시를 찾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하다. 저자가 병상에서 이전 원고를 새로 추리고 수정, 보완하여 개정판을 만든 뜻이라 여겨진다.

개정 초판에는 이 책과 함께 1969년 감옥에서 ‘청년 신영복’이 쓴 육필 산문 「청구회 추억」 영인본을 제공한다.

* 검색창에 ‘신간 리뷰’를 쳐보세요. 날마다 새 책을 만날 수 있습니다.


◇ ‘처음처럼 : 신영복의 언약’ = 신영복. 돌베개. 308쪽. / 분야 : 에세이 / 값 : 14,000원


김선태 기자 kstkks@me.com

[MTN 온라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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