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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 코드' 막으려다 '○재앙'까지 막은 게임사들...그 속사정은?

일부 게임사들, 특정 정파 소속 전현직 대통령들만 금칙어로 지정

머니투데이방송 서정근 기자2019/03/14 16:42

최근 블리자드가 '스타크래프트'를 즐길 수 있는 게임 플랫폼 '배틀넷'에서 대화하거나 전투참여자를 모집하는 방을 만들때 일부 전현직 대통령들과 이들을 비하하는 명칭을 쓸 수 없게 '금칙어'로 설정한 것이 논란이 되었습니다.

방제에 노무현, 김대중, 문재인 등 민주당 계열 전현직 대통령 3인의 이름을 넣어 방을 생성하려하면 "잘못된 이름입니다"라는 메시지가 떴습니다.

반면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이름과 이들을 동물에 비유하는 '쥐박이', '닭근혜' 등의 키워드는 방제에 포함해도 방이 만들어졌습니다.

'문재앙'을 키워드로 넣고 방을 생성하면 생성이 불가했습니다. '김재앙' '서재앙' 등을 키워드로 작성하니 방이 생성이 된 것을 감안하면 생성불가 사유는 '재앙'이라는 단어 그 자체가 아님을 유추할 수 있었습니다.

특정 정치인의 이름을 배틀넷 방제로 사용할 수 없게 했던 블리자드.

젊은층이 대다수인 게이머들이지만 이같은 '선별적 차단'에 대한 반응은 우호적이지 않았습니다. 때마침 일고 있던 https 차단 논란과 맞물려 인터넷 검열 혹은 그 가능성에 대한 우려와 거부감으로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정부가 민간기업, 그것도 외국계 기업에 '압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은 전무한 만큼, "업체가 알아서 긴 것 아니냐"는 관측으로 이어졌습니다.

관련해 블리자드 코리아 측은 "내부 여러 기준을 통해 정립한 '금칙어' 기준이 있는데, 누군가 '이런 용어는 걸러달라'고 신고한 후 이를 판단해 정해지는 경우도 있다"며 "(전현직 대통령 3인의 이름은) 금칙어로 지정해달라고 요청이 들어왔으나 우리가 금칙어로 지정하진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금칙어로 지정하지 않았는데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블리자드 코리아는 "금칙어 시스템이 제대로 가동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신고접수는 되어 있으나 금칙어로 지정되지 않은 키워드들을 일시적으로 금칙어로 지정하고, 금칙어 차단이 제대로 되는지 테스트를 한 후 이를 원상복구 시켰어야 하는데 실무진의 실수로 복구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선뜻 수긍하기 어려운 해명이긴 한데, 이후 블리자드는 금칙어 설정을 변경해 민주당 계열 전현직 대통령들의 이름과 이들을 비하하는 단어도 방제로 사용할 수 있게 바꿨습니다.

국내 주요 게임사들은 어떨까요? 넥슨의 모바일 MMORPG '액스'의 경우 전현직 대통령 전원의 이름을 게임 캐릭터 명칭으로 사용할 수 없게 되어 있었습니다. '쥐박이', '닭근혜' 등의 명칭은 캐릭터로 활용 가능했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을 비하하는 단어는 캐릭터로 활용이 불가하게 했습니다.

넷마블의 '블레이드앤소울 레볼루션'은 전현직 대통령의 이름을 모두 캐릭터명으로 활용할 수 없게 해놨습니다. 이름 이외의 비하형 별칭은 차단하지 않아 '핵대중'이라는 이름으로도 캐릭터 명칭 설정이 가능합니다. '리니지2 레볼루션'의 경우 대통령 전원의 이름을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엔씨의 '리니지M'은 전현직 대통령 전원의 이름을 캐릭터명으로 쓸 수 없습니다. '닭근혜', '문재앙'은 금칙어로 차단되어 있으나 '쥐박이'라는 명칭은 캐릭터 생성이 가능합니다.

더불어민주당 김병관 의원이 최대주주로 있는 웹젠의 신작 '마스터탱커'는 현직 대통령과 퇴임후 얼마 지나지 않은 전직 대통령만 금칙어로 설정해 뒀습니다.

게임업종에 종사하는 한 관계자는 "각 회사마다 금칙어 관련 나름의 기준이 있는데, 극단적 정치성향을 가진 이들의 '키워드'가 녹아들어 분쟁 사유가 되는 것을 우려해서 알아서 조심하는 측면이 있을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일베 코드가 녹아들어 있다며 '던전앤파이터'나 '이터널클래시' 같은 게임이 홍역을 치른 사례를 감안하면 아무리 조심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라고 부연했습니다.

'던전앤파이터'의 경우 게임 속 도우미 캐릭터의 이름이 '노예523호'로 명명되자 일부 이용자들이 "숫자 523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일인 5월23일을 연상시킨다"고 문제를 제기해 논란을 산 바 있습니다. 극우 성향의 기획자가 노 전 대통령을 비하하려고 붙인 이름이라는 의심 때문이었습니다.

'이터널클래시'라는 게임은 게임 속 챕터 4-19를 '반란', 5-18을 '폭동', 5-23을 '산 자와 죽은자'로 명명해 속칭 '일베 게임'으로 낙인 찍혔습니다.

게임이 이용자들로부터 정치적 쟁점과 얽혀 논란이 될 경우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게임사들은 '문화 검수'의 일환으로 이를 차단하기 위한 노력에 만전을 기해왔고, 금칙어 설정도 그와 같은 맥락입니다.

금칙어 설정을 통한 '문화검수'가 상대적으로 민주당 출신 전현직 대통령들을 보호하는 쪽에 기울어져 있는 양상인데, 그 또한 이해해줄 만한 구석이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중견 게임사의 한 임원은 "금칙어 설정도 규제의 일종인데, 누가 나서서 막아달라고 요청을 하고, 합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되도록 최소화하는게 좋다"며 "이명박, 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들의 연령대와 성향을 감안하면 이들이 적극적으로 게임사에 어필했을 가능성이 낮지 않느냐"고 반문했습니다.

컴투스의 경우 노무현 전 대통령(보다 정확하게는 '노무'라는 단어)만 금칙어로 지정한 상황입니다. 극우성향의 일부 네티즌들이 노 전 대통령을 상대로 줄기차게 가해온 비하, 도를 넘었던 고인에 대한 모욕을 감안하면 납득할만한 조치라는 평도 있습니다.

한 개발자는 사견을 전제로 "형이 최종 확정되진 않았다곤 해도 탄핵되고 사법처리를 받고 있는 전직 대통령들과 그렇지 않은 대통령들을 동일한 잣대로 보호하는게 맞는지 모르겠다"고 전했습니다.

인터넷 커뮤니티와 게임 상에서 이른바 '일베 코드'로 인해 생겼던 논란을 감안하면, 게임사들의 '몸조심'에 이해가 가는 측면이 없지 않습니다. 최근 불거진 5.18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망언 논란,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의 교섭단체 대표 연설 직후 '국가원수 모독죄' 논란이 불거진 것을 통해 볼 수 있듯 정치적 주관의 대립은 참으로 예민한 문제입니다.

검열과 규제는 '최소화' 해야 하는 점은 분명합니다. 방통위가 최근 "구글, 페이스북 등 해외 인터넷 사업자도 3회 이상 시정 권고를 어기면 서비스 임시중지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밝히자 "정부 입맞에 안 맞으면 유튜브도 막겠다는 거냐"라는 반응이 젊은층에서 쏟아져 나왔습니다.

정부 입장에선 국내 업체들만 규제를 준수하고 해외 업체는 지키지 않는 '역차별'을 해소하겠다는 '선의'로 내놓은 발상인데, 그 선의가 선의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입니다. https 차단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맥이 닿아있습니다.

게임사들이 설정한 정치 키워드의 금칙어들은 게임사별로 기준이 모두 달랐고, 같은 회사 내에서도 게임별로 기준이 다른 경우가 많았습니다.

자신과 정치적 주관이 다른 이들, 문화적 풍토가 다른 집단에 대한 '존중과 관용'이 넘쳐나서 '규제와 검열' 자체가 필요 없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형평성'과 '일관성'이 있는 최소한의 규제를 집행하는 것이 차선일 것입니다.

[머니투데이방송 MTN = 서정근 기자 (antilaw@m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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