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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로 1000억 매출 올리는 사연

[홍찬선칼럼]사쓰마도자기와 망건
홍찬선 경제증권부장(부국장)

"지진이나 화재가 났을 때 다른 것은 모두 버리더라도 이것만은 꼭 가슴에 안고 대피소로 뜁니다.”

일본 큐슈의 최남단에 있는 가고시마현의 미야마(美山, 공식 행정구역 명칭은 東市來町(히가시이치키쵸))에 있는 자택에서 만난 심수관(沈壽官?83) 옹은 감개무량한 듯 와인박스처럼 생긴 조그만 상자의 뚜껑을 조심스럽게 연다. 그는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유명한 심당길의 14대손으로 일본의 사쓰마도자기 원조로 통한다.
 
헤져 손바닥만해진 410년된 망건의 비밀

뚜껑을 여는 그의 손길은 조금이라도 손상이 가면 죄를 지을 것처럼 엄숙하다. 하지만, 그가 상자에서 꺼낸 것은 검은색이 나는 조그마한 조각이었다.

‘저렇게 보잘것없는 것이 무슨 값어치가 있다고?’하며 의아해 하는 순간 그의 설명이 이어진다.

“이게 망건입니다. 410년 전인 1598년, 왜군에 끌어올 때 심당길 할아버지가 쓰고 왔던 바로 그 망건입니다. 처음에는 형체가 남았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제는 이렇게 조각만 남았지요….”   망건이란 조선조 선비들이 이마에 쓰던 것으로 말총, 즉 말의 머리 뒤에 있는 갈기털로 만들어진다.

그렇다! 그가 그 망건 조각을 목숨처럼 소중하게 간직하는 것은 바로 자기가 배달민족의 후손이라는 것을 잃지 않겠다는 정체성의 강조인 것이다.

그는 “사람에 따라서는 복원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하기도 하고, 그냥 보관해야 한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며 “선조의 체취가 어려 있는 것인 만큼 이대로 보관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되묻는다.

 
1주일 매출액 1억4000만엔..대기업 아냐?
 
뿌리에 대한 강한 애착 때문일까? 그가 굽는 사쓰마도기는 ‘도자기의 원조’로 불리며 일본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1주일 매출액이 1억4000만엔(약22억원)이나 된다. 1년에 70억엔, 요즘 환율로 환산하면 약 1000억원이나 되는 규모의 기업이다. 꽃병 하나가 38만엔(약600만원)이나 되지만, 그의 낙관이 들어있다는 이유로 부담 없이 일본 전국 방방곡곡으로 팔려 나간다.

‘심수관 도자기’가 이렇게 경쟁력을 갖게 된 비결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해 그는 당연하지만 뜻하지 않은 답변을 한다. 바로 지력(知力)이라고. “인텔리전스(Intelligence)가 경쟁력의 원천이라고 생각합니다. 심당길 할아버지가 가고시마에 끌려왔을 때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사람은 고작 3%에 불과했습니다. 말뿐만이 아니라 글로 도자기 굽는 비법을 후손에 전수함으로써 410년이나 가업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이라는 설명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올 여름까지 멀쩡하던 회사가 쓰러질 정도로 부침이 심한 세상에서 14대나 가업을 이어 훌륭한 기업으로까지 발전시킨 것에 커다란 자긍심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조상 대대로 구운 도자기와 조상이 사용하던 유품을 전시해 놓은 박물관 격인 수장고(守藏庫)에는 자녀들에게 가르치던 한글로 된 책이 전시돼 있다. 붓글씨로 써서 묶은 책을 보고 있노라면 물 설고 땅 설고 사람까지 선 이국땅에 끌려와 우리말을 가르치려 한 조상의 의지가 느껴지는 듯 해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410년만에 남원 시민 자격..시간은 숫자에 불과하다
 
그는 이제 나이가 들어 한국에 자주 가지 못하지만 여권을 3권이나 다시 발행했을 정도로 한국에 자주 오고 갔다. 한국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일본 학생 등 2000여명을 이끌고 한국을 찾았다는 것. 이런 노력을 평가받아 그는 명예 주일한국총영사를 지내기도 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한국을 찾았던 것은 지난 5월. 전남 남원에서 그를 명예시민증을 준 때였다. “심당길 할아버지가 강제로 남원을 떠난 뒤 410년 만에 남원시민으로 인정받았다는 것이 감격스러워 눈물이 쏟아졌다”고 한다.

 
410년을 지내면서도 한국 성인 沈(본관 청송)씨를 버리지 않았던 심수관 옹. 83세라는 고령이지만, 도자기를 배우기 위해 찾아오는 일본 학생들은 물론 한국에서 가끔 찾는 손님들을 위해 직접 도자기 굽는 방법과 가문의 역사 등에 대해 설명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밝은 얼굴과 맑은 목소리는 그가 83세 할아버지라고 볼 수 없을 정도다. 일가(一家)를 이룬 뒤의 자긍심과 여유가 그런 부드러운 자태를 빚어내고 있는 듯 하다.

 
그는 몇 해 전 한국에서 목재를 갖고 가 도자기를 굽는 가마 옆에 한국식 정자를 세웠다. 와세다를 졸업한 그의 아들도 15대 심수관(선대의 이름을 이어받는 습명(襲名))이 되기 위해 경기도 이천을 수차례 오가는 등 가업을 이을 준비를 거의 마쳤다.

 
그의 선조가 쓰고 왔던, 이제 손바닥보다도 작아진 망건 조각은 시간이 흐르면 더 헤져 없어질 것이다. 하지만 그 정신을 이어받는 심수관의 사쓰마도자기는 앞으로도 400년은 더 이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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