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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중동(Middle East) 이야기

[박문환의 증시 제대로 읽기]우리가 몰랐던 중동(Middle East) 이야기
박문환 동양종금증권 강남 프라임 지점

시장은 연초의 기대감에 잇달아 상승을 하는 모습이다. 경제지표들은 최악을 지속적으로 경신해나가는데도 불구하고 거래량도 작고 적극적 매물은 이제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아마도 오바마의 취임식까지는 연초 랠리가 진행되지 않을까 싶다.

이제 마지막 저항선인 1174선 이상에서 시종가가 3영업일 이상 머무른다면 1360선까지의 항진도 조심스럽게 기대해 볼 수 있다. 또한 다소 늦어진다고 해도 아마도 악성 매물로 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물량들은 지난 10월 폭락장을 전후로 해서 거의 매도가 완료된 것으로 생각된다.

아무튼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적어도 지난 주간에 보여주었던 최악의 경제지표를 다 넘고 상승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시각으로 일요일 새벽에 드디어 이스라엘은 탱크가 가자지구를 넘었다. 유럽 각지에서 이스라엘을 강력히 비난하는 모습이지만 강대국들은 하나같이 꿀먹은 벙어리다. 오늘은 지난 주 내내 화재의 핵심에 있던 중동지역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중동지역에 대한 이야기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또한 이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가 흔히 이슬람 하면 과격한 종교로 생각을 하고 있지만 사실과는 다르다.

대부분의 종교가 그렇듯이 누군가를 죽이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지 않다. 이들의 일부가 과격해지기 시작했던 것은 13세기 시리아의 성직자였던 “이븐 타이미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지금은 터키에 속하는 “우르파”에서 태어나 “다마스커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어느 종교가 되었든 종교를 자신의 생각대로 다시 정리를 하려는 사람은 있게 마련이다. 그 역시 당시의 정통적인 이슬람을 공격하는 수많은 논쟁과 저서를 통해 이슬람에서 커다란 물의를 일으키게 된다.

1306년에 이르러 이슬람 법원은 그의 이단성을 이유로 그를 투옥시켰고 이후 석방 없이 1328년까지 감옥에서 생활하다 숨졌다.

그의 가르침은 한 마디로 죽어 마땅한 사람은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같은 무슬림이라도 적과 공동전선을 펴면 죽어 마땅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통적인 이슬람에서는 비록 적일지라도 손을 내밀면 친구인데 말이다...

아무튼 그의 죽음 이후로 이슬람은 한동안 평온했었다. 하지만 1928년에 “이븐 타야미야”는 무덤 속에서 부활했다. 이집트에서 “하산 알 바나”라는 사람이 이슬람을 정화하고 이집트에서 외세를 몰아내기 위해서 “무슬림 형제단”을 창설했다는데 근본 취지가 이븐 타야미야의 이론과 흡사했다.

물론 한 때 이들 무슬림 형제단 역시 구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과 협력관계에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미국이 주된 목표가 되었다는 것을 보면 세상에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상당히 과격한 성향을 가지고 있었던 무슬림형제단은 1948년 12월 28일 당시 이집트의 총리를 암살하게 되고 이집트 정부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하산 알바나를 살해하게 된다. 이후 1954년에 다시 이집트의 나세르 대통령을 암살하려다 실패한 이후 이들은 이집트로부터 추방당하게 된다.

하지만 이들이 추방된 것은 오히려 무슬림 형제단을 세계로 퍼지게 만드는 계기를 제공했다. 이집트로부터 나온 이들은 주로 사우디아라비아로 향했고 그 중 일부는 다마스커스와 시리아 등으로 도주했고 그곳에서 국제 지부들을 일제히 열었다. 자연스럽게 무슬림 형제단은 전 세계에 퍼지게 되었고 과격한 이슬람 운동을 주도하게 된다.

1995년에는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이티오피아를 방문하는 동안 그를 죽이려다 실패했었고 그로부터 2년 뒤에는 룩소에 있는 사원을 공격해서 외국인 관광객 58명과 이집트인 4명을 죽이면서 이 방면에서 최고의 이름을 날리게 된다.

-이슬람 강경화의 주된 자금줄은 사우디아라비아

그럼, 이들 과격단체는 누가 지원하는가?

대략 두 가지의 자금조달원이 있다. 하나는 이슬람의 자카트(기독교로 말하면 십일조)이며 다른 하나는 보호세다. 한 쪽은 꾸준한 지원금이며 다른 한 쪽은 보너스로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이슬람 과격단체에 가장 많은 지원을 하는 나라는 바로 사우디아라비아라는 점에서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 부분에 대해서 필자는 고민을 많이 했었다. 왜 미국은 테러의 온상인 사우디를 치지 않을까? 911사건에서도 이라크 인은 단 한명도 없었고 거의 사우디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미국은 압둘라가 아닌 사담을 공개적으로 비판했었다.

지금도 실질적으로 헤즈볼라 등 이스라엘을 압박하는 테러단체에게 가장 많은 돈을 주고 있는 나라가 바로 사우디아라비아라는 사실은 이미 다 알려져서 국제 정치에 대해 문외한인 필자도 다 알고 있는데 과연 미국이 모른단 말인가?

물론 필자는 미국이 사우디를 감싸는 대략적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 이유까지 설명하려면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되니 다음에 기회가 되면 설명하기로 하자.

아무튼...사우디는 참으로 재미 있는 나라다. 사실 아랍권에서는 가장 엄격한 이슬람 근본주의의 나라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인권이 무시되기도 한다.

지금도 샤리아(shari`ah:이슬람의 율법)에 의해서 도둑은 팔을 자르고 가끔 백주 대낮에 참수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여성이 바람이 날 경우에 얼굴만 남기고 몸을 땅에 묻어서 꼼짝 못하게 한 후 돌팔매로 죽이는 나라다. 물론 남자가 여자를 강제로 추행해도 거의 대부분의 죄는 여자에게 있다. 집구석에 처박혀 있지 않고 나돌아 다니다가 남자의 공격을 받았다면 여자의 잘못이 크다.

남자들은 종족번식을 위해서 신이 주신 본능이니까 죄가 크지 않고 피해야 하는 것은 여자라는 취지로 만들어진 법이 아닌가 싶다(물론 필자 생각).

지금도 영화상영이 금지된 나라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사우디에서는 영화관이 없었다. 지난 주에 처음 영화가 상영되었다고 하는데 이는 주로 이집트에서 제작된 영화다. 재미 있게도 이집트 영화에 95%를 사우디에서 투자하고 있다.

그들은 영화제작에 이렇게 말을 한다고 한다.

“여기 돈을 대겠소 하지만 약간의 조건이 있소”

그 조건은 약간이 아니다. 가장 엄격한 수니의 이슬람을 상징하는 사우디에서는 가벼운 포옹과 음주 키스를 금하고 있는 소위 35계율을 지키도록 하고 있다.

그러니...사우디의 자본이 들어가서 사우디의 식으로 스킨십도 모두 없앤 재미 없는 영화가 작년 말에 처음으로 상영이 개시되었다고는 하나 이거 무슨 재미로 보겠는가?

물론 모든 사우디의 남편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여성들은 남편으로부터의 폭력에 대해 법적으로 보호를 받을 길이 거의 없다.

밖에서 돌아다닐 일이 없는 사우디의 여성들은 교통사고로 죽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 보다는 한 해에 상당한 수의 여성들이 남편이나 가족들에게 살해가 되고 있음에도 유엔 인권위에서는 사우디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다. 물론 종교적 신념에 누가 참견을 하겠는가?라는 말로 핑계를 댈 수는 있다.

만약 그런 이유로 그들의 인권에 대해서 말하지 않으려면 다른 나라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아야 하는데 또한 그렇지만도 않다. 아무튼 유엔도 그렇게 신뢰가 가는 단체는 아닌 것 같다.

아무튼 사우디아라비아는 참으로 희한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들은 공식적으로 서방세계에 대한 극도의 증오심과 순교를 부추기는 기관을 운영하고 있는데 그 기관을 “마드라사”라고 한다.

앞서 거론했듯이 이집트의 나세르가 1954년에 무슬림형제단을 폐쇄하자마자 이들은 거의 사우디로 갔고 그곳에서 무슬림 형제단의 대부분은 마드라사나 중요한 대학에서 강단에 서게 된다.

결국 사우디를 통해 이슬람 형제단을 더욱 강해지게 되었고 사우디가 전세계 무슬림의 강경화를 주도하고 있는 셈이다.

선(善) 속에서 악(惡)이 공존한다는 것이 정말 재미있지 않은가?

하긴 선도 악이 있어야 선이 될 수 있다. 선만 있다면 선이 아니다. 음양의 조화가 결국 세상살이인 것 같다.

-산업화 되고 있는 테러

필자가 테러진압부대에서 군 생활을 할 때 주로 많이 듣고 연구 대상으로 삼았던 사건이 바로 지난 1968년 7월 23일 로마를 떠나 이스라엘의 텔아비브로 가던 엘알 항공기의 납치사건이었다.

메산리 훈련장에서 1:1 축척의 항공기를 놓고 비행기의 사각(死角)을 통해 진입하는 방법과 테러범의 진압 훈련을 무던히도 반복 했었는데, 바로 엘알 항공사의 납치사간 이후로 세계는 테러산업과 테러진압이라는 특수를 낳았다.

각 나라마다 테러를 진압하는 특수부대들을 창설하기 시작했고 SAS나 델타포스 등이 그런 역할을 수행하는 특수부대들이었다.

엘알항공의 납치는 레바논의 베이루트 아메리칸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한 “와디 하다드”의 작품이었다.

“와디 하다드” 이후 테러는 하나의 산업이 되어 버렸다. 그 이전에는 테러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그것도 항공기를 대상으로 할 것이라는 생각을 누구도 하지 못했었다.

그러니 대응책도 없었고 또다시 같은 테러가 날 경우 막을 방법도 없었다. 방법은 상납(上納) 뿐이었다.

그 납치사건 이후 세계의 여러 항공사들은 테러단체에 자발적으로 보호세를 내게 되었다. 물론 자신들의 항공사가 테러의 타깃이 되지 말게 해 달라는 댓가로 지급되었고 하다드는 이후 부자가 되었는데 당시 상당히 많은 국제 항공사들로부터 매달 백만 달러 정도의 돈을 댓가로 받게 되었다.

당시 엘알 항공사의 납치에서 12명의 유대인들만 남겨두고 모두 석방했었다. 과거 유대인 학살의 전과를 가지고 있어서인지 자신들은 안전할 것이라고 믿었던 루프트한자는 1972년에 아덴에서 자신들의 항공기가 납치를 당하게 되자 그 다음 날에 즉각 보호세를 내기 시작했다.

이런 돈들은 성과에 따라 무장단체들에게 분배되면서 무장단체들도 부유해지기 시작했다.

항공업종에서 시작된 이런 보호세는 거의 전 산업으로 퍼져갔다. 1972년 검은 9월단이 로텔담에 있는 석유 시설을 공격하자마자 여러 석유 메이저들이 자발적으로 보험료를 내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라 도처에 널려 있는 송유관하나 박살내는 것이 얼마나 쉬운 일인가?

석유메이저들이 송유관을 보호하기 위해 송유관 주변에 일렬로 도열을 시킨다면 전 인류를 도열 시켜도 모자를 판이다. 그러니 사방에 허점은 많다.

무장단체의 입장에서 석유 메어저들에 대한 테러를 하는 것은 이유가 빈약할지도 모른다. 거의 산유국들은 지금도 이슬라믹이 많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런 이유는 그럴듯하게 둘러 대면 된다.

앞서 말했듯이 “이븐 타야미야”의 “죽어야 마땅한 이유”를 만들어내면 순식간에 표적이 된다. 석유가 미국을 부강하게 만들고 그 역할을 너희들이 하기 때문에 죽어 마땅하다...이 정도면 간단히 표적이 된다.

이슬람교도였던 사우디 최고의 석유회사 아람코의 직원도 로마 공항에서 테러를 당했다. 그 이후에 아람코는 자발적으로 무장단체를 찾아가서 보험료를 내기 시작했다.

“재칼”이라는 이라는 닉으로 더 유명한 “일리치 라미네스”는 그의 전사들과 함께 OPEC의 건물을 접수한 적도 있다. 이후 OPEC는 일시불로 하다드와 그 작전을 지휘한 그룹에게 직접 1억 달러를 건넸다.

지금은 죽었지만 당시 PLO의 의장이었던 아라파트에게도 OPEC는 비자금으로 1억 2000만 달러의 돈을 은밀하게 찔러 주었다.

1억 2000만 달러라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전부 일을 해서 야세르 아라파트에게 헌금한다고 해도 어림 없는 일이었다.

테러가 산업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하마스

지옥의 신 하데스가 연상되는 하마스(Hamas)도 이런 과정에서 태어난 무장 단체로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 팔레스타인 최고의 저항단체였던 PLO를 제치고 하마스가 득세하게 된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언제부터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PLO라는 말이 쏙 들어가 버렸다. 지금은 PLO 라는 말을 기억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그 뒤를 하마스가 차지하고 있다.

그럼 하마스가 어떻게 해서 득세를 하게 되었는지부터 살펴보자. PLO가 국제 사회에서 그것도 가장 돈이 많은 사우디로부터 지원을 받았었는데 어느날 그 막대한 지원금이 끊어지게 되고 PLO의 의장이었던 “야세르 아라파트”는 이상스럽게 죽어갔다.(한 때 약물 중독설 등이 그의 사후에 제기되었던 것으로 독살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이후에 득세를 하게 된 것이 바로 하마스다. 일단 PLO의 자금 지원이 막히게 되었던 것은 표면적으로는 PLO가 후세인을 지지한다는 성명을 밝히고 나서부터였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PLO가 갑자기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 이유가 다소 불만족스럽다. 1980년대의 인티파다(불복종운동)에서 생겨난 것이 바로 하마스인데 당시만 해도 비교적 PLO의 비교적 온건한 노선에 맞서서 이슬람의 근본주의를 내세우며 인기를 얻어가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다른 점이 있었다면...하마스는 처음부터 PLO의 이스라엘과의 약속이나 협상은 무조건 무효라고 주장했다.

이 대목을 중점적으로 기억해두라...“하마스는 PLO와 이스라엘의 합의가 모두 무효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재미있는 일이 일어난다. 하마스에게 처음 돈줄이 되었던 것은 사우디가 아니었다. 바로....이스라엘이었다.

당시에 하마스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었던 PLO의 의장 “아라파트”의 말에 의하면 당시 이스라엘의 총리였던 “이츠학 샤미르” 총리는 하마스에게 돈을 건냈을 뿐만 아리라 대학과 모스크 등 700여군데의 시설을 제공하기 까지 했다고 주장한다.

물론 지금은 고인이 되어 그의 말을 입증할 수는 없지만 그 말이 사실이라면 정말이상하지 않은가? 자국의 목을 조르는 하마스에게 돈을 주다니...그것도 더욱 강경한 하마스에게 말이다.

아무튼 이스라엘의 독점적인 지원을 받아 재정상태가 좋아진 하마스는 이스라엘 내에서의 테러 행위를 독점하게 된다. 적으로부터 받은 돈으로 적을 공격했다.

그럼 왜 하마스에게 이스라엘은 돈을 주게 되었을까?

여기에서 우리는 잘 진행되어왔던 PLO와의 평화협상이 중단되고 아라파트는 왜 그렇게 말년에 의미 없는 죽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의 죽음은 모든 것이 의문 투성이다. 어느 순간 그와 관련된 기사도 종적을 감추어 버렸다. 아라파트의 죽은 이후의 시신상태를 보면 거의 독살된 것이 틀림이 없어 보일 뿐 언론은 이후 그의 죽음에 대해 더 이상 거론하지도 않았다.

입증할 방법이 없다면 그의 죽음으로 가장 이익을 본 사람이 누구인가를 생각해서 역으로 추측을 해봐야겠다. 물론 증거는 없고 단순히 필자의 생각이다.

일단 하마스의 득세로 가장 이득을 보는 주체는...바로 이스라엘이다. 증명해보자. 1947년 이스라엘의 독립전쟁 당시에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과 병존할 것을 요구했었다. 당연히 당시에 팔레스타인은 어림없는 소리라고 이스라엘의 주장을 일축했다.

그렇지 않은가? 잘 살고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가 와서 이거 내집이니까 나가라고 한다면 네 알겠습니다...라고 할 사람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바다 한 가운데 떠 있는 코딱지 만한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데 대해서도 공분을 느끼는 우리를 생각해보면 당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생각은 이해할 수 있다.

아무튼 이러한 공존의 요구는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와 어느 정도 성과가 가시화되어가기 시작했었고 이들 두 민족 간에 공존의 길이 한 때 열리는 듯 했다. 당시 이스라엘의 총리였던 “샤론”과 “아라파트” 그리고 중재자로 나섰던 “부시”가 한 자리에 모여 웃는 모습이 티비를 통해 방영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절대적인 힘의 우위에 있는 이스라엘로서는 공존이 싫어졌을 수도 있다.

나의 주목이 훨씬 센데 굳이 화해할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아무튼 언제부터인가 이들 두 민족 간에 입장이 바뀌었다. 지금은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과의 병존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이 이를 거절하고 있다. 물론 이스라엘이 그냥 거절하면 명분이 서지 않는다.

예측하건대...과거의 약속을 깰 필요가 있었고 보다 더 강경한, 즉 이스라엘을 몰아내고 가자지구에서 서안에 이르는 팔레스타인 인들의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하마스가 이스라엘에게는 더욱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제 5차 중동전쟁으로까지 확대될 가능성을 두고 있는 가자지구에 대한 대규모 공세가 연일 지속되고 있다. 명분으로는 하루가 멀다하고 로켓을 날려 대는 하마스에 대한 응징의 차원이었다.

하지만 하마스를 키운 것은(물론 죽기 직전 아라파트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이스라엘이다. 하마스를 키워놓고 6개월간의 휴전 기간 동안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 대한 봉쇄를 통해 고사전략을 펼쳤다. 그러니 하마스가 화가 날만도 하다.

대외적으로는 하마스가 먼저 로켓을 날린 것은 맞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원인과 결과에 이스라엘이 깊숙이 개입되어 있다는 의혹을 뿌리칠 수 없다. 먼저 한 대를 맞았던(맞기를 바랬을지도...모른다) 이스라엘은 불시에 하마스의 본거지를 쑥대밭을 만들었다.

이제 과거의 약속을 지킬 필요는 없다. 점령지에 대해서 권리를 주장한들 누구 하나 뭐랄 사람이 없다.

그러니...이 전쟁은 끝나기 어려운 전쟁이다.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본다면...

지도상으로 보면 3억 명 이상의 이슬람 국가가 위에서 아래에서 압박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언제나 긴장상태에 있을 수밖에 없다. 일 년이면 30일을 예비군 훈련으로 입영해야 하고 그나마도 터무니 없이 높은 세율에 국민들은 시달린다.

지상 제일의 목표가 생존일 수밖에 없는 그들에게도 하마스나 그 외의 국지적 도발에 대한 일벌백계 차원의 응징은 어쩌면 그들로서도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종이 호랑이가 된다면 국지적 도발에 의해 이스라엘은 곧장 무너저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국민이 한 명이 죽을 경우 상대방 국민을 100명 죽이겠다는 자세는 살아남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일 것이다.

또한 팔레스타인 사람에게도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들은 일단 피해자들이다. 그들이 살고 있었던 터전을 송두리째 빼앗겼다. 가자지구는 겨우 365km2좁은 땅덩어리에 바글대는 지구상 최대 인구 밀집지역이 되어 버렸다.

이곳에서는 희망도 미래도 없다. 자신들이 거주하던 곳에서 ?겨나서 마치 노예처럼 이스라엘 지역에서 노동을 하고 그 댓가로 그날 그날 연명해가는 이들에게도 평화와 공존은 이미 먼 나라 사람들의 복에 겨운 소리에 불과할 것이다.

게다가 언제부터인가 주인장이 되어버린 이스라엘 사람들이 요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에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신상을 데이터베이스화 해서 툭하면 신분증을 갱신한다.

취업할 때에도 신상명세를 즉시 확인해서 가족 중에 수배자가 있다면 취업이 불가능하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유대인 거주 지역에 들어가 일하지 않으면 먹고살 일이 막막한데 그들에게 어떤 선택이 가능하겠는가?

이쯤 되면 아무것도 없고 황폐한 땅에 농사지을 것도 없어 자급자족도 안되는 팔레스타인의 젊은이들이 먹고 살기 위해서 어떤 일을 선택해야 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종교적 편향이나 특정민족을 지지하는 글은 아닙니다. 또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서 추측한 부분이 많아 입증할 수도 없습니다.

저는 어떠한 종교에도 편향적 사고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단지 죄 없는 사람을 죽이는 일은 어떠한 경우라도 없어져야 할 일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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