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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 우리는 비관론에 목마르다

[김지민의 상식 깨는 투자]
김지민 뉴턴캐피탈 대표

연구과제가 하나 있어 거기 매이다 보니 세상사에 좀 어둡다. 시카고에 있으니 한국소식은 더 감감하다. 그런 중에 하루는 교포사업가 한 분이 불쑥 물었다.
 
“박사님, 혹시 미네르바 아니세요? 안 그래도 장사가 안 돼 죽겠는데, 진짜로 이거 완전 망가지는 시나리오로 가는 거에요?” 그러면서 빨리 자수하라고 농담반 으름장을 놓는데,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다.
 
어리둥절해 하는 나를 보자 그는 더 흥분하며 말을 이었다. 단숨에 신화가 돼 버린 화제의 인터넷 필명, 미네르바. 살아 있는 노스트라다무스. 주식도 경제도 우리의 미래도 모두 그가 말한 대로 가고 있다. 향후 다우지수 5000, 종합주가지수 500, 환율은 등등…… 순간 뇌리를 스치는 이름 하나가 있었으니 바로 스티브 마빈. 1998년에 지수가 300 갔을 즈음 그가 내놓은 학설(?)이 180 포인트 설. 하지만 그 말 나온 바로 그 시점이 소위 바닥이었고, 이후 300은 다시 못 볼 전설이 됐다.

풍부한 식견에 깊은 통찰력, 예리한 분석력. 또한 수려한 필력에 신비로운 예지력. 미네르바의 이 놀라운 소양들 중 내게 해당되는 사항은 안타깝게도 전무하다. 따라서 난 미네르바일 수 없다. 사실 몇몇 분이 그렇게 물어 오신 것만도 낯이 뜨겁다. 하지만 비록 가짜라도 난 그 진짜의 얘길 좀 하고 싶다. 그의 예측이 맞느니 틀리느니 하는 그런 시시콜콜한 얘기가 아니다. 마빈도 미네르바도 한 시대를 풍미한 분석가일 뿐 전능한 신이 아니므로 당연히 틀린다. 200불 하던 유가예측이 금세 0 하나 빠진 20불로 둔갑하는 걸 굳이 안 봐도, 예측이란 본시 허깨비 사냥이다. 내가 주목하는 바는 다름아닌 그들의 그 “비관론”인 것이다.

보험회사를 보라. 그들의 사업도 그 본질은 극단의 비관론이다. 불이 난다, 차가 망가진다, 인명이 희생된다. 매우 희박한 확률의 비관적인 상황들이 그들의 상품이다. 그걸 모두 부질없다며 뿌리쳤다면 오늘의 그들은 없다. 좋든 싫든 그 가능성들을 사 주었기에 필수불가결의 존재로 우리 삶 속에 자리한 거다. 그들의 비관론이 적중해도 우리는 좋다. 보험이 다 알아서 처리해 줄 테니까. 틀려도 역시 좋다. 보험료 몇 푼 없어진 것 빼곤 삶이 순탄하니까.
 
같은 경험을 주식투자에도 적용한다 했을 때, 우린 늘 비관론에 갈급해야 앞뒤가 맞다. 예측불허의 싸움에선 위험을 알리는 빨간 깃발이 곧 구원병임을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다. 비관론을 따라 주식을 팔았는데 가격이 되올라도 나는 좋다. 좀 비싸게 되사면서 보험료 얼마 낸 셈 치면 되니까. 주식 팔고 났는데 시장이 지금처럼 추락해도 역시 좋다. 큰 손실을 보험금 타서 메꾼 것과 같은 결과니까. 오르면 더 벌 생각, 내리면 본전생각, 허구한 날 주식 들고 끙끙대는 것보다 훨씬 편안한 투자다. 유연하고 건강하고 상식적인 투자를 가능케 해 주는 것, 이것이 바로 미네르바의 비관론인 것이다.

2008년 ‘세상을 밝게 만든 100인’ 중 한 명으로 미네르바가 선정됐다고 들었다. 만일 어둡게 만든 100인을 뽑는다면 당연한 이치로 낙관론자들이 뽑혀야 할 것이다. 날만 새면 주식 권하는 싸구려 장사치 같은 낙관론자들 100명이 줄줄이 그 상을 타야 할 것이다. 낙관론은 베짱이처럼 게으르고 준비가 없다. 낙관론은 그 자체로 희망의 끝이요 그 너머가 없다. 비관론은 개미처럼 부지런하며 항상 준비가 있다. 완벽이 아니면 못 견디고 지고지순만을 추구하는 완벽주의요 이상주의다.
 
 비관론은 틀려도 희망이 있고, 틀릴 때 오히려 즐겁다. 위기 조장, 허위사실 유포는 괜한 기우다. 건강한 비관론을 가장한 순전한 헛소리는 시장이 먼저 알고 등돌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비관론에 흔들릴 나라라면 결국은 모기의 날개짓에라도 허물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낙관론이 사람 잡는 것이고, 비관론이 지혜로운 것이다. 지혜의 신 미네르바, 우리 시장은 그런 비관론자에 목말라 왔다. 새해엔 더 많은 미네르바를 원한다.

시카고 하이드팍에서, 김지민 <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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