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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 뛰어타기식 투자와 삶은 위험합니다"

이대호 앵커가 새해 MTN 시청자에게 드리는 글
이대호

 눈앞에서 전철을 놓치면 다음 차가 아무리 빨리 온다 해도 3분은 기다려야 합니다. 바쁜 아침 출근길에 3분이란 참으로 긴 시간이죠. 회사에 9시에 도착하는 것과 9시 3분에 도착하는 것의 차이라면 많은 직장인들이 그 의미를 공감하실 겁니다. 늦지 않게 3분 더 일찍 나오는 습관을 들인다면 더 없이 좋겠지만…….

 다른 분야는 어떨는지 모르지만 금융과 언론계의 출근시간은 보통 7시 대에 맞춰져 있습니다. 누가 뭐라 하는 건 아니지만 한 발 더 뛰기 위해 아침부터 눈썹을 휘날리는 것이죠.

잠이 많고 게으른 편이지만 저 역시 그 틈에서 아등바등 출근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특별한 일이 없는 날에는 보통 전철을 이용합니다. 내리자마자 계단이 보이는 '7-4번 문'은 제가 애용하는 자리입니다. 여의도로 출근하는 많은 사람들이 바로 이 칸에서 내리더군요.

다시 전철을 타기 직전으로 시간을 거슬러 가봅니다. 교통카드를 찍고 지갑을 추스르며 전철을 타기 위해 계단을 내려갑니다. 보이지 않는 계단 아래에 전철이 와있을까 이미 왔다가 막 출발하는 건 아닐까 또 내 눈앞에서 가버리는 건 아닐까 별 생각을 다 해봅니다.

학습효과라고들 하더군요. 눈앞에서 전철을 자주 놓치다보니 으레 계단부터는 뛰는 겁니다. 저 보이지 않는 아래에 전철이 와 있을지, 언제 올지도 모른 채 일단 뛰고 보는 거죠. 이쯤에서 이 글의 본질을 드러내보겠습니다. 주식하는 여러분도 그렇진 않으신지요.

이 공시 뒤에, 이 뉴스 뒤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조명 뒤에 그늘은 없는지 생각하지 못한 채 상한가를 놓친 경험에 비춰 서둘러 달려간 경험은 없으신지요.

달려가서 출근길 전철처럼 문이 닫히기 전에 입성했다면 다행이겠지요. 그러나 주식은 때로 거꾸로 가는 일도 많답니다. 한마디로 전철을 반대 방향으로 탄 것이죠. ‘내가 왜 그렇게 서둘렀을까’ 후회한다면 이미 주가는 미끄러진 다음이겠네요.

요즘엔 출근길에도 요령이 생겼습니다. 계단을 내려갈 때 계단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이 안보이면 뛰는 겁니다. 아직 전철이 안 왔다는 뜻이니까요. 반대로 계단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이 보이면 이미 때는 늦은 겁니다. 전철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내리고 그 사람들이 계단을 다 올라올 정도면 이제 남은 건 전철 문이 닫힐 차례니까요. 발 밑 계단만 쳐다보며 올라오는 사람들을 피해 저는 조심히 걸어 내려갑니다.

며칠 전에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동네에 도착해 보던 책을 접고 전철에서 내려 계단을 오르고 있는데 글쎄 어떤 청년이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뛰어 내려가다가 제 어깨를 툭 치고 간 겁니다. 화가 나더군요. 가끔은 책을 보면서 계단을 올라가기도 하는데 만일 그랬으면 어땠을까 아찔하기도 했고요. 순간 혹자처럼 ‘성질이 뻗쳐서’ 뒤를 돌아봤습니다. 윗입술은 위로, 아래턱은 앞으로 장전돼 ‘뭐 한마디’ 던질 사람이 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청년 전철 문 앞에서 급브레이크를 잡더군요. 정말 ‘코 앞’에서 문이 닫혔습니다. 요즘 기관사분들은 냉정해졌나요? 다시 열어줄 법도 한데 그냥 가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면서 참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시 제일 먼저 든 생각은건 ‘쌤통이다’였고, ‘난 이 계단에서 굴러 피해자가 될 뻔했다.’ ‘저 녀석이 전철을 타고 그냥 갔다면 이건 뺑소니다.’ ‘하긴 나도 저런 적이 있었지.’ 등등.

5분 늦었다고 세상이 끝나진 않습니다. 발을 헛디딜 위험, 다른 사람과 부딪힐 위험, 전철 문에 끼일 위험 등 여러 리스크를 떠안은 채 계단에서 뛰어야만 할까요? 투자도 마찬가지죠. 상한가 종목 놓쳤다고 주식투자를 더 이상 못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당장은 배 아프고 아쉬워도 ‘테마 따라 재료 따라’ 움직이다 역으로 크게 당할 수도 있었다는 걸 생각한다면 차라리 다행이라고 여기는 건 어떨까요.

2009년 소띠 해입니다. 정확히는 음력 1월 1일. 그러니까 설이 지나야 진짜 ‘기축년’이 되는 것이지만. 미국 소는 Bull 황소를 말합니다. 여러 증권사 앞에 서있는 동상도 ‘미국산’ bull이더군요. 황소는 좀 더 강해보이긴 합니다. 뿔도 더 커 보이고요. 그래서 ‘불마켓’이라면서 강세장을 이야기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최근 미국증시를 보면 카우보이들이 타는 길들여지지 않은 로데오 황소만 생각납니다. 지난해에 하도 많이 당해서일까요?

새해 새 시장은 ‘황소장’이 아니라 ‘한우장’이었으면 합니다. 금융위기의 장본인인 미국산 수입소가 아니라 그 와중에도 대처해나가고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 묵묵히 밭을 갈고 있는 토종 ‘한우’가 이끄는 불마켓을 기대합니다.

한우는 우직합니다. 성실함의 상징입니다. 옛날엔 한 집안 부의 척도가 되기도 했죠. 한우는 말없이(당연한 거지만) 밭을 갈고 수레를 끌고 고기까지 내어줍니다. 로데오 소처럼 날뛰지 않고 차분하고 우직하게 움직입니다. 그런 한우처럼 우직한 2009 ‘우 상향’ 증시를 기원해봅니다.

[MTN 이대호 앵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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