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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도 혹독한 수련을 요한다

[김지민의 상식을 깨는 투자]이익추구 아닌 손실방어 훈련을
김지민 뉴턴캐피탈 대표

중3 때 태권도를 배웠다. 반장으로서 불량급우들과의 기싸움에 지지 않으려고 제 발로 도장을 찾았다. 이창섭이라 하는 우리 사범님은 무뚝뚝하지만 누구보다 태권도를 사랑하셨다. 도장에 기숙하며 늘 수련에 정진하니, 태권도는 그의 예술이요 애인이었다. 발을 차는 눈매는 진짜 적을 앞에 둔 듯이 매서웠고, 이얏 기합 소리는 우리 모두의 소리보다 더 쩡쩡거렸다.
 
 당연히 우리는 고달팠다. 이 세상 최고의 운동이니 최고로 멋진 동작을 내라는 주문을 웬만해선 충족시킬 수 없었다. 훈련은 으레 얼차려로 이어졌고, 토끼뜀과 푸쉬업(팔굽혀펴기) 등은 시작되면 끝이 없었다. 땀범벅, 파김치가 되어 오늘은 이만인가 싶은 그 때가 얼차려끝, 수련시작의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수련 또한 얼차려 못지않은 지옥의 연장이었다.

그 해 여름 물난리로 전국에 휴교령이 내린 날, 장대비를 쫄딱 맞고 도장엘 갔다. 결석한 죄로 나중에 귀 잡고 앉아서 뛰느니, 지금 비 맞고 서서 뛰는 편을 택한 것이다. 설마 누가 오랴 싶었던 사범님은 그제야 도장문을 열면서 처음으로 미소 같은 걸 보여 주셨다. 그처럼 긴장을 늦추지 않고 수련한 덕에 나는 도장 역사상 최단기 승단의 영광을 안았다.
 
그러나 몇 년 뒤, 전국대학태권도연맹 시합에선 두 차례나 1회전에서 탈락했다. 가혹행위 없는 민주훈련(?)이 낳은 예견된 패배였다. 인천체전과 한 판. 유도대와 한 판. 내 인생 50에 꼭 한번 되돌리고 싶은 일이 있다면 그 사범님의 지도 아래 그 두 판을 다시 뛰어 보는 것이다.

행인지 불행인지 투자에 있어선 더 지독한 선생을 만났다. 이를테면 얼차려에다 구타까지 일삼는 싸이코 투자사범이라고나 할까. 영화 G.I. Jane에서 여성훈련병 제인이 받은 수모와 고초가 내 경우와 비슷할 것이다. 진정 나를 키우려는 건지, 아니면 땅에 묻어 버리려는 건지, 내 선생의 언어폭력은 어록을 만들어 남길 만하다.

 네가 버는 건 행운, 내가 버는 건 실력이다.
 네 성적이 업계 평균에 비해 월등하다면 그건 분명 일시적이다. 왜냐하면 네가 남보다 특별히 똑똑할 수는 없으니까.
 내 발목을 잡지 마라. 나는 너와 차원이 다르니 너와 함께 흙탕물에 빠질 수 없다.
 네 자질에 박사 논문을 쓰고 남의 논문도 도와 줬다니 믿을 수가 없다.

하지만 내 선생은 나를 학대해도 된다. 충분히 그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그는 미국동부 명문대 물리학도 출신에 MBA이며 시카고 선물시장의 젊은 거물이다. 천재적인 머리에 노력 또한 남다르니 당할 자가 없다. 그는 실제로 10만불로 일평균 3천불을 근 1년간 벌어 보임으로써 자신의 실력을 증명했다. 그 와중에 잃은 날수는 며칠뿐이고 그 금액도 얼마 안 되니 그는 가히 최고다.
 
그가 내게 내리는 주문은 단순하다. 하루도 안 깨지고 매일 벌 실력이 되느냐. 당장 천지가 개벽해도 안 다칠 자신 있느냐. 한국의 쌀이든, 미국의 IBM 주식이든, 두바이 원유든, 유럽의 유로화든 이 세상 무엇을 매매해도 안정적인 수익이 날 그런 공통된 황금률을 발견했느냐. 그렇지 못하다면 입 다물고 더 정진하라는 것이다.

사실 내 성적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70억이 열 달만에 170억 됐다며 고맙다고 찾아온 투자자도 있었다. 6천만원으로 4년간 월평균 5백만원씩 벌도록 이웃을 돕기도 했다. 회사를 차려 월평균 2%의 수익률을 수년간 유지하며 최고의 실력자를 꿈꾸기도 했다.
 
그러나 실력의 퇴보 및 과도한 경비지출에 못이겨 모든 걸 잠시 접고 이곳 선생 곁으로 왔다. 그저께는 그가 전화해서 나한테 뭘 물어보았다. 가르쳐 주기만 하던 사람이 묻기도 하다니 정말로 천지가 개벽하려나. 아니면 나의 내공을 이제는 조금 인정해 준다는 뜻인가.
 
아무튼 그가 미소를 보여 주는 그 날, 나는 다시 둥지 밖으로 훨훨 날기를 시작할 것이다. 펀더멘털이 아니라 독한 선생을 찾아야 한다. 열정이 있는 선생. 손실이 죽음보다 싫은 선생. 가슴에 비수를 꽂는 선생. 가혹행위를 일삼는 선생. 어떤 땐 한 대 때려 주고 싶을 정도로 지긋지긋한 선생을.

시카고 하이드팍에서, 김지민 <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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