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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성 암과 노이로제, 정운찬의 처방은?

[홍찬선칼럼]약발 떨어진 재정-금융정책의 대안은 기업가정신
홍찬선 머니투데이방송 보도국장

1930년대 지성의 전당으로 불리던 미국 하버드대학교의 리타우어 강당은 입추의 여지없이 가득 찼다. 당대 최고의 경제학자 중 한명인 조셉 슘페터와 마르크스 경제학자로 명성을 날리던 폴 스위지가 ‘병든 자본주의의 미래’에 대해 벌이는 토론을 듣기 위해서였다.

이날 사회를 봤던 레온티에프는 토론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스위지는 자본주의가 악성 암에 걸렸기 때문에 어떤 수술로도 살아날 수 없다고 봤다. 반면 슘페터는 극심한 노이로제에 걸려있는 자본주의가 자기혐오 덩어리가 돼 살아갈 의지를 잃고 있지만 제대로 치료를 하면 소생할 수 있다”고.

세계 경제가 대공황으로 신음하고 소련 경제가 강하게 성장하던 당시엔 스위지가 옳다는 견해가 강했을 터다. 하지만 70여년이 지난 오늘에도 자본주의는 꼿꼿이 살아 있다. 작년 9월 리먼 브라더스 파산 등으로 위기에 빠지듯 주기적으로 노이로제에 걸리기는 하나, 그때마다 거듭나는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다.

슘페터가 대공황의 절망 속에서도 자본주의 소생의 신념을 버리지 않은 것은 기업가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그는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 3가지로 기술혁신과 신제품에 의한 새로운 시장의 창조 및 (비용 저하에 따른) 공급곡선의 우하향 이동을 꼽았는데,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기업가라는 분석이다.

기술혁신으로 시장을 개척하는 공급구조의 변화가 있어야 경제가 발전한다는 그의 통찰은 동갑내기인 케인즈의 유효수요 이론에 밀려 빛을 보지 못했다. 슘페터의 처방은 시간이 많이 걸려 실업난과 마이너스 성장에 시달리던 당시에는 "장기에는 우리 모두 죽는다(We are all dead in the long-term)"며 정부가 돈을 푸는 재정정책을 통해 유효수요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케인즈가 더 각광받았다.

케인즈 처방은 대공황을 극복하면서(2차 세계대전의 효과가 더 컸다는 분석도 있지만), 아직까지 주류 경제학의 핵심 경제정책으로 군림하고 있다. 한강의 기적과 외환위기, 제2의 기적을 되풀이하면서 세계 11대 경제대국으로 올라선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정주영 이병철 유일한 같은 기업가 역할이 컸던 만큼 슘페터의 숨결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한국의 기업가는 존경받기보다 손가락질을 받는 처지에 빠져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반도체 자동차 조선 화학 철강 등을 키운 공(功)은 인색하게 평가받는 대신 가족경영이나 경제력 집중 같은 과(過)는 부풀려진다. 반기업 정서는 날이 갈수록 강해지는 반면 기업가정신은 나날이 쪼그라들고 있다.

슘페터는 기업가에게 기업하려는 동기를 부여하는 것은 사적 제국을 건설하려는 의지와 승리자의 결의, 그리고 창조의 기쁨 등 3가지라고 갈파했다. 피땀과 청춘을 바쳐 기업을 일궈내 승자로 군림하다 자녀에게 물려주는 게 보장돼야 기업가정신이 왕성해지고, 그것이 창업과 국가경제 발전의 초석이 된다는 것이다.

한국은 지금 ‘케인즈 정책의 함정’에 빠져있다. 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으로 낮추고, 재정지출을 건국 이래 최대로 쏟아붓지만 소비와 투자, 일자리는 늘지 않고 있다. 돈이 부동산과 주식으로 몰리면서 자산가격을 올리는 머니게임만 판을 치고 있는 탓이다.

경제가 어떻게 되든 나만 돈 벌면 된다는 극단적 이기심이 부동산버블을 만들며 경제성장 잠재력을 갉아먹고 있다. 개별 경제주체들이 자신의 이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하면 ‘보이지 않는 손(시장기능)’이 작동해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경제학의 근본원리’가 산산이 부서지며, 새로운 경제학과 정책이 절실해지고 있다.

한국경제는 지금 악성 암에 신음하는 것일까, 아니면 노이로제에 걸릴 것일까. 남들은 다 안된다고 할 때, 0.01%의 가능성을 보고 위험을 감수하는 기업가가 많다면 노이로제일 것이지만, 서울대 공대 학생마저 고시 공부에 빠진 현실이라면 노이로제는 악성 암일 것이다.

한국 최고의 경제학자로 평가받는 정운찬 국무총리(후보자)의 올바른 진단과 효과적인 처방이 정말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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