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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이여, 인생의 고비마다 많이 '저질러라'

MTN 감성인터뷰 [더리더] '동양그룹' 구자홍 부회장

머니투데이방송 대담=최남수 보도본부장 기자2011/11/01 12:02

‘일단 저질러 봐’ 펴낸 구자홍 동양그룹 부회장
동양카드·동양생명 살린 ‘불패의 승부사’
“생각만 하지 말고 일단 저질러라”
“실패해도 훌훌 털고 일어나면 돼”
“부실기업, 잘하는 것에 선택과 집중 필요”
잘 나가던 공직 버리고 민간기업 전직 경력

인생을 살다보면 수많은 도전의 길에 직면하게 된다. 그 길에 당당히 맞서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실패해도 좋으니 일단 한번 저질러보라고 강조하는 이가 있다. 바로 불패의 승부사라 불리는 동양그룹의 구자홍 부회장. 그가 이야기하는 ‘저지름’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아름다운 리더를 만나는 머니투데이방송 MTN의 ‘더 리더’가 동양그룹의 구자홍 부회장과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Q 동양그룹에 대해서 간략하게 소개를 해주시죠.

동양그룹은 1957년에 동양시멘트를 발족시켰습니다. 그 이후에 1980년대 후반에 금융 사업에 진출해서 현재 30여개 계열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작년 기준으로 매출액이 약 9조원 되고 자산은 약 35조원정도 됩니다. 임직원은 2만5천명, 현재 중견 금융그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Q. 공직과 기업에서 오랜 경험을 하셨는데요. 그런 경험들을 묶어서 젊은이들에게 ‘일단 저질러 봐’라는 책을 내셨는데 어떤 의미를 담은 건가요?

요새 젊은이들이 상당히 힘들다고 해요. 주위에서 위로하는 이야기가 많은데 저는 그것을 떠나서 젊은이들에게 힘들면 용기를 가지고 도전을 해봐라.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생각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옮겨서 저질러라. 저지른 다음에 달성하기 위해서 올인을 하면 성공할 수 있지 않나하는 이야기를 하는데 저의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해서 젊은이들에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젊을 때 일단 저질러봐라. 저지르고 실패하면 어떠냐. 실패하면 툭툭 털고 일어나서 다시하면 되는 것이지. 그런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Q 고향이 시골이신데 어린 나이에 어떻게 부모님 곁을 떠나 조금 더 큰 도시로 공부하러 가시는 어려운 결정을 하셨는지요?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전북 진안에서 전주로 전학을 왔습니다. 지금 같으면 초등학교 때 대도시로 나오고 해외로 유학도 가고 그러는데요. 당시만 해도 아무 연고도 없는 대도시에 나와서 혼자 하숙을 하면서 학교를 다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당시에 보니까 주위에 있던 잘사는 친구들이 전주로 이사를 가더라고요. 왜 이사를 가나 고민을 했는데 가만히 보니까 나도 진안에 계속 있으면 시골에서 농사밖에 못 짓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부모님을 4학년 때부터 졸랐는데 제가 나이도 어리고 연고도 없고 그러니까 부모님이 찬성할 리가 없죠. 1년 동안 허락을 안 하셨는데 결국 5학년 때 전학을 허락해주셔서 저 혼자 전주에 나와서 하숙하면서 생활했습니다. 제 인생의 고비마다 많은 일들이 있는데 많이 저질렀습니다. 그 저지름 중에서 가장 잘한 저지름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Q조금 건너뛰어 보면 행정고시 패스하시고 정부부처는 어디에서 근무를 하셨나요? 그 당시에 어떤 일을 하셨고 그때는 탄탄대로를 걸으신 것 같은데요?

경제기획원 경제기획국에서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세우는데 기여를 했고요. 예산총괄을 하면서 예산 편성을 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고 승진해서 과장 때는 산업3과 과장을 하면서 우리나라 해운산업 합리화, 조선업 합리화 등 산업정책에 깊숙이 관여를 했습니다.

Q1987년인가요? 공무원하시다가 민간 기업으로 옮기는 파격적인 결정을 하셨는데요. 어떻게 그런 결정을 내리셨습니까?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만 그 당시 공무원이 굉장히 박봉입니다. 결혼하고도 경제개발계획이라든가 나라 경제에 관해 토론하고 이러면서 결국 집안 살림은 모르고 살았어요. 그러다가 미국 유학을 갔는데 처음으로 가족과 많은 시간을 가지고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그동안 결혼해서 3년 이상 부인이 굉장히 고생하고 지낸 것을 그때 알게 됐어요. 그런 회의도 있었고 또 하나는 그 당시 미국 상황을 보니까 미국의 사기업이 굉장히 발전해가는 단계였기 때문에 공기업하고 민간 기업하고 비교해보니까 민간 기업이 엄청 발전하고 좋더라고요. 앞으로 우리나라도 시간이 가면서 경제가 발전하면 공공부분보다는 민간부분이 훨씬 발전가능성이 있겠다는 생각하고 돌아왔어요.

돌아와서 승진하고 과장되고 일에 매달려 열심히 했는데 계속 머리에 떠나지 않는 것이 나는 나 좋아서 나라 일을 하고 떠들지만 아내는 자식하고 굉장히 힘들게 살더라고요. 이게 남자가 할 일이 아니구나. 결국 전직하려고 결정을 했는데 그 당시 가장 반대한 사람이 저희 아내입니다. 고시까지 해서 경제부분에서 잘 나가는 과장으로 있는데 왜 그만두려고 하냐. 그것은 개인적인 욕심이고 가정을 생각하면 별 수 없다고 설득을 해서 기업으로 옮기게 됐습니다.

Q 해운산업, 조선 산업 두 부실 산업을 합리화하는 경험이 있으셔서 그런지 몰라도 잘 안 되는 기업을 맡으셔서 잘 되게 하는 성과를 많이 이루셨는데요. 동양카드를 보면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카드였죠? 이때도 적자였던 회사를 맡으셔서 흑자로 돌리셨는데요

동양카드의 경우는 기업에 나와서 처음으로 사장을 맡은 경우인데요. 동양카드는 아멕스 카드의 한국지사를 인수해서 만든 회사입니다. 당시 아멕스 카드는 한국에 진출한지 10년이 됐습니다. 10년 동안 적자를 냈고 노사분규가 심해서 미국 아멕스 본사에서 포기를 했어요. 팔고 나가는 것을 동양그룹이 인수를 했는데 인수하고보니까 아멕스 카드의 내용이 너무 부실해요. 회원수가 5만 명, 가맹점이 1만개 밖에 안 돼요. 실제 유효 가맹점은 5천개밖에 안되더라고요. 그 당시에 경쟁 카드사인 BC카드, 국민카드, 외환카드는 회원 수가 천만 명이 넘고 비교가 안 되는 상황이었는데 과연 이 카드사를 어떻게 하나 고민을 많이 했는데요. 제가 이 카드를 회생시킨 전략은 하이클래스, 고급화전략이었습니다.

보통 우리나라 대부분의 대형카드사들은 전 국민이 카드를 갖게 하자. 대중화 전략으로 가는데 저는 누구나 갖고 싶어 하지만 아무도 갖지 못하는 카드, 고급화전략으로 해서 차별화 전략을 많이 썼습니다. 카드 연회비가 있지 않습니까. 아멕스 골드카드가 8만원이에요. 다른 카드는 5천원~1만원이에요. 그것부터 차별을 했는데 저는 높은 연회비를 받으면서 멤버십 리워드 프로그램이라고 해서 지금 이야기하면 포인트제입니다. 포인트제를 처음으로 도입을 해서 고객들에게 그만큼 돌려주는 정책을 썼습니다. 아멕스 카드에 없던 금융업이라든가 관광업이라든가 통신판매도 도입해서 활성화시켰습니다. 10년 동안 아멕스 카드가 적자가 났는데 첫해부터 흑자로 돌리고 제가 3년 후에 동양생명으로 갈 때는 회원수가 20만 명 정도, 가맹점도 20만점 정도 됐습니다.

Q 여러 가지 차별화 전략과 함께 흑자로 전환시키신 것이죠. 98년인가요? 동양생명을 맡으셨는데요. 퇴출직전의 기업을 성공적으로 탈바꿈 시키셨죠?

98년도 12월 28일 제가 동양생명 사장을 맡았는데 그때는 IMF 때였습니다. 제가 가서 업무보고를 받다보니까 이 회사가 어느 상태냐 하면, 제가 취임 3일후까지 마이너스의 지급여력을 플러스로 돌려놓지 않으면 퇴출시키겠다는 금감원 통보를 받아놨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제일 먼저 한 것이 금감위 당국자를 만나서 도대체 지급여력이 뭔데 나보고 3일 만에 퇴출을 당하라고 하냐고 하니까 IMF와의 협정상 지급여력을 플러스로 올려놓지 않으면 다 퇴출하게 되어있다고 그래요. 그러면 말미를 3~4주 줘라. 그러면 내가 퇴출 안 당하도록 지급여력을 플러스로 돌려놓겠다. 그래서 말미를 얻어서 3주 정도에 거쳐서 지급여력을 플러스로 확충해서 퇴출을 막았습니다.

막아놓고 회사가 최후의 상황이니까 손을 봐야하는데 첫 번째 한 것이 직원들의 사기를 높여야겠다. 사기가 떨어지면 영업이 안 될 것 아니예요. 회사가 어려우니까 보너스를 줄 수도 없고 몸으로 때워야겠다. 취임하자마자 3개월 동안 전국지점을 순회했습니다. 전국 지점 영업소가 230개가 되는데 3개월 동안 전국지점 직원들을 다 만나고 설계사들 다 만나서 현장에서의 어려움과 회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런 현황을 파악했고요. 그 다음에 수호천사 브랜드마케팅을 시작을 했습니다. 돌아다니면서 설계사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설계사들이 동양생명이라는 이름 가지고는 장사가 안 된다는 거예요. 고민 끝에 답을 얻은 것이 동양생명을 버리고 새로운 브랜드마케팅을 하자. 고민해서 만든 것이 수호천사입니다.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데 수호천사는 뜻이 고객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동양생명이 지켜드리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알려야 되잖아요. 그냥 알리면 다른 광고랑 같죠. 그래서 알리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대표이사가 직접 나서서 벌거벗을 수밖에 없겠구나. 그래서 제가 주민등록번호를 공개하는 결정을 내리고 수호천사 브랜드를 세상에 알리는 첫날 전국 모든 일간지 신문에 전면광고로 제 얼굴하고 주민등록번호와 수호천사가 무엇인지 전면광고를 실었어요. 대표이사가 얼굴을 걸고 나의 가장 은밀한 주민번호를 걸고 여러분들을 지켜드리겠다. 고객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 했는데 엄청난 파격적인 것이 됐죠. 9시 뉴스에도 나오고 이런 노력을 한 결과 동양생명도 10년 동안 적자가 났는데 첫해부터 흑자로 돌아서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Q 부실기업을 되살리는 과감한 의사결정을 하실 때 뭐가 힘이 드셨다고 생각하십니까? 어떤 원칙을 가지고 하셨는지요?

가장 중요한 것은 부실기업의 업무현황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입니다. 그 기업의 잘하는 것을 찾아서 나머지를 정리하고 잘하는 것만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선택과 집중을 했습니다. 결국 부실기업을 정리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CEO의 결단력, 추진력, 직관력 같은 것이 중요하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임직원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신뢰관계를 쌓아서 임직원이 이해하고 따라와야지 임직원이 반대하는 구조조정은 할 수가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결국 이 기업을 정리하고 회생을 시키면 회사가 어떤 모양으로 될 것이라는 비전을 제시해주고 그럴 때 임직원이 어떤 혜택을 받을 것이라는 것을 제시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Q 지금 청년들이 상당히 어렵거든요. 취업이 어렵지요. 젊은이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이번에 펴낸 책에서 말씀드렸듯이 어려운 줄 아는데 어렵다고만 하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일단 망설이지 말고 저질러봐라. 그리고 그것을 달성을 위해서 올인을 하면 성공할 것이다. 실패해도 좋다. 실패하면 툭툭 털고 일어나서 다시 하면 되는 것 아니냐. 여러분들이 멋진 인생을 살고 후회 없는 인생을 살려면 생각만 하지 말고 망설이지 말고 행동을 하라고 말씀드리고 싶고요. 마지막으로 안 해보고 후회하는 것보다 해보고 후회하는 것이 낫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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