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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N현장+]교도소 담벼락 위에서 곡예하는 회계사

권순우 기자

“지방 가서 기업하는 아버지 친구 회사 재무부서 직원으로 살고 싶어”

 기업들의 분식 회계를 잡아내는 냉철한 회계사를 꿈꾸던 친구가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합니다. 영업에 시달리며 사는 것도 서러운데 한순간에 범죄자가 될 수 있어 불안하기까지 하다고 합니다. 

 회계는 자본시장의 언어라고 합니다. 재무제표에 나온 기업의 발언을 투자자들은 듣고 판단합니다. 회계사는 그 말이 거짓말인지 아닌지를 걸러줍니다. 

 회계사는 사실 ‘갑’입니다. 회계사에게 거짓말을 하다 걸리면 기업은 순식간에 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업들은 회계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쇼핑하듯 다른 회계사를 찾습니다. 감시를 해야 할 회계사가 오히려 숨겨줘야 하는 '을'이 돼버렸습니다. 

 기업이 망하면 감사인도 위험합니다.
 
 서울중앙지법은 상장 폐지된 포휴먼의 주주 137명이 삼일회계법인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14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재판부는 삼일에 대해 “외부 감사인으로서 감사 책임을 다 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또 삼화저축은행 투자자 24명이 대주회계법인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피해액 19억원 가운데 대주회계법인은 20%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회계법인의 잇따른 패소를 바라보는 회계사들은 참담합니다. 기업이 작정하고 부실을 숨기면 회계사도 찾아내기 힘듭니다. 

 참담함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한 회계사는 “부정이 있다는 확실한 근거가 있다면 추가적인 자료를 요구하겠지만 을의 입장에서 단순한 의혹만 가지고 깐깐하게 감사하기 쉽지 않다”고 말합니다.

 회계사가 ‘함부로’ 깐깐하게 감사를 했다가는 다음 해에 계약이 해지될 수 있습니다. 또 깐깐한 회계사로 소문이 나면 다른 회사와 관계도 악화되지요.

 회계법인의 초라한 현실은 감사수임료에서 적나라 하게 드러납니다.  금융감독원은 상장법인의 감사인 변경과 수임료의 상관관계를 분석했습니다.

 감사인이 변경되지 않는 경우 수임료는 물가상승률 수준인 3% 정도 늘었습니다. 그런데 감사인을 변경하는 경우 수임료는 8%나 감소했습니다. 4대 회계법인에서 다른 회계법인으로 변경하는 경우 무려 22%가 떨어졌습니다. 

 현재 손님을 잘 모시면 3%라도 수임료를 올려 받을 수 있지만 한번 손님이 떨어져 나가면 22%나 낮은 수임료를 받아야 한다는 겁니다.

 또 지정 감사인으로부터 감사를 받다가 자유 감사인으로 변경되는 경우 수임료가 11%나 하락했습니다. 반대로 자유 감사인에서 지정 감사인으로 변경되는 경우 54%나 증가했습니다. 감사인 쇼핑이 가능한 기업과 쇼핑이 불가능한 기업 사이에 엄청난 수임료 차이가 발생하는 겁니다. 

 경쟁이 치열할수록 감사 수임료를 줄어듭니다. 수임료가 줄면 그만큼 많은 인력을 장기간 투입할 수 없습니다. 감사를 제대로 못하니 부정 회계를 잡아내기도 힘듭니다. 그러다가 사고가 나면 징계를 받는 악순환이 이어집니다.  

 B 회계사는 “회계사는 교도소 담벼락을 걷는 것보다 더 위험한 곡예를 하는 것 같다”며 “균형을 잘 잡아야 하는게 아니라 영업에 무게를 두면서 사고가 나면 언제든 징계를 받을 위험을 안고 살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저축은행 사태 이후 부실 회계법인에 대한 제제조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4대 회계법인은 물론 중소형 회계법인도 다수 포함돼 있습니다. 핑계 없는 무덤 없듯 부실 회계를 했던 회계법인들도 할말은 많습니다. 금감원도 못 잡아낸 회계 부정을 어떻게 잡아내느냐는 거죠. 

 하지만 금감원의 검사 결과와 회계법인의 외부 감사 결과 분식 비율이 27%나 차이가 나는 가운데 징계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입니다. 또 금융당국의 조치 결과는 저축은행 사태 피해자들이 회계법인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겁니다.

 마땅히 현재의 기형적인 구조가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손님과 감독당국, 고래등 사이에 회계사들의 수난사는 계속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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