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N NEWS
 

최신뉴스

[MTN 현장+] 시계비행-계기비행도 구분 못하는 국토교통부

이재경 기자


항공안전종합대책이 '생색내기'용에 불과하고 정작 사고원인과 관련된 핵심적인 내용은 빠졌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항공관제 분야를 비롯해 정부가 스스로를 뜯어 고쳐야 할 내용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항공안전종합대책은 국토교통부가 민-관 합동으로 구성한 항공안전위원회가 지난 27일 서울 메이필드호텔에서 40개에 달하는 항목으로 발표한 내용이다.

이 위원회는 올 들어 발생한 항공사고 이후 항공 안전도를 높이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다.

◇계기비행 차트를 시계비행 내용으로 채워...관제는 '엉터리'

항공사고는 조종사의 과실이나 관제사의 과실이 함께 원인으로 꼽히는 경우가 많지만 이번 항공안전종합대책에선 관제사의 문제는 전혀 제기되지 않았다.

지난 2011년 1월 울진비행장에서 항공대와 한서대의 교육용 경비행기 두 대가 공중 충돌한 사건에선 관제사의 잘못이 제기됐다.

당시 두 대의 항공기가 착륙보고를 했으나 관제사가 근접한 비행에 대해 공중충돌 방지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던 점이 원인으로 지적된 바 있다.

최근 울진비행장으로 향하던 한서대 경비행기의 추락사고에서도 당시 관제를 맡았던 포항접근관제소의 관제사가 성의껏 조언을 해주지 않았거나 잘못된 방향을 알려준 것 아니냐는 추측이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이렇게 두 번의 추락 사고가 있었던 울진비행장의 경우 항공지도마저 엉터리로 작성돼 있는 등 입출항 절차와 같은 항공관제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울진공항의 차트(항공기가 비행하는 경로를 표시한 지도)를 보면 계기비행 차트의 일종인 '비주얼 어프로치(Visual Approach) 차트'에 시계비행 내용이 버젓이 들어가 있다.

계기비행은 지상의 항공기 유도시설의 신호와 비행기의 계기를 이용해 비행이나 착륙을 하는 방식이며 시계비행은 조종사의 육안으로 비행과 착륙을 하는 방식으로 두 방식은 전혀 다른 절차를 따른다.

비주얼 어프로치 차트는 계기비행으로 비행장 인근까지 비행한 후 육안으로 활주로를 찾아 들어가면서 관제탑에 보고를 하는 지점을 표시한 지도이며, 비주얼 어프로치는 계기비행 절차 중 하나다.

그런데 울진공항의 차트에는 이런 비주얼 어프로치 차트에 엉뚱하게도 시계비행 이착륙 패턴과 시계비행 보고지점만 기록돼 있다.

게다가 '시계비행 이착륙 절차는 비주얼 어프로치 차트를 보라'고 안내까지 하고 있으며, 별도의 시계비행 차트는 존재하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비주얼 어프로치 차트에는 정작 있어야 할 계기비행의 비주얼 접근 절차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이 차트를 만든 국토교통부는 계기비행의 비주얼 어프로치 차트와 시계비행 차트를 구분하지도 못하고 있는 셈이다.

A항공사 비행교관을 역임한 한 조종사는 "차트는 조종사들이 비행을 할 때 가장 먼저 챙기는 기본 중의 기본"이라며 "조종사는 반드시 차트대로 비행하기 때문에 잘못된 차트는 사고와 직결된다"고 설명했다.

이 조종사는 이어 "시계비행 차트와 계기비행 차트는 완전히 다른 것이어서 절대 혼용할 수 없다"며 "계기비행 차트에 시계비행 내용이 있다는 것은 국제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비상식"이라고 꼬집었다.

잘못된 차트는 울진뿐 아니라 양양국제공항 등 다른 공항에서도 빈번히 볼 수 있었다.

양양공항은 지난해 일부 조종사들의 거센 항의를 받고 최근 차트를 수정한 바 있다.

이런 차트는 관제사들이 제작에 참여하고 있으며, 관제사들은 국토부 소속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번 대책을 보면 조종사나 항공사에 대한 규제는 대폭 강화하는 측면이 있다"며 "그러나 관제사들에 대한 교육이나 항공관제의 문제점 개선에 관한 내용이 전혀 없어 알맹이 없는 대책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울진공항의 비주얼 어프로치 차트. 가운데 보이는 사각형이 시계비행 이착륙 패턴, 주변 알파벳이 시계비행 보고지점이다. 원래 계기비행 차트에선 전혀 볼 수 없는 내용이다.)


◇관제사에겐 '당근', 조종사·소형 항공사에겐 '채찍'

이번 대책으로 관제 여건은 매우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150억여원에 달하는 비용을 들여 각 공항의 항행안전시설을 확충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김포, 김해, 제주 공항은 계기착륙시설, 착륙대 등을 추가로 설치하고, 광주공항은 계기착륙시설의 일종인 활공각시설(Glide slope)을 새로 설치하며, 대구공항은 전방향표지시설(VOR)을, 청주 등 5개 공항은 관제통신시설을 개량하기로 했다.

관제사의 역량, 자질 문제는 빼놓고 관제시설만 갖춰준다는 비판이 나오는 지점이다.

반면 조종사나 소형항공사들에겐 수많은 '채찍'이 준비됐다.

조종사는 등급제를 도입해 더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해야 하는 상황이다.

헬기 한두 대를 운영하는 매우 작은 소형 항공사들까지 안전면허(AOC)를 도입하기로 했다.

안전면허는 주로 대형 항공사들을 대상으로 1,300여가지의 점검기준을 통과해야 발행해주는 운송사업 허가증과 같은 것이다.

소형 항공사들은 이에 대한 막대한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는 "이런 규제가 도입되면 소형항공사는 더이상 새로 생기기 어려울 것"이라며 "기존 업체들도 불필요하게 과도한 규제로 사업이 힘들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대한항공 조종사가 되기 위해선 1,000시간의 비행경력이 필요한데 항공대나 한서대를 나오면 200여시간 안팎밖에 되지 않는다"며 "경력 축적을 위해선 소형 항공사에서 경험을 쌓아야 하는데 이제 그럴 기회조차 사라지지 않겠냐"고 우려했다.

이재경기자 (leejk@mtn.co.kr)

머니투데이방송의 기사에 대해 반론·정정추후 보도를 청구하실 분은 아래의 연락처로 연락주시길 바랍니다.

고충처리인 : 콘텐츠총괄부장 ombudsman@mtn.co.kr 02)2077-6288

MTN 기자실

경제전문 기자들의 취재파일
전체보기

    Pick 튜브

    기사보다 더 깊은 이야기
    전체보기

    엔터코노미

    more

      많이본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