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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N 현장+] 사내유보금 논란, 그 허와 실

박승원 기자

사내유보금 과세(이하 유보금 과세)가 재계와 자본시장을 강타하고 있다. 유보금이란 기업이 벌어들인 돈에서 세금을 내고 남은 세후이익에서 배당, 성과급 등을 제외하고 사내에 쌓아둔 자금을 말한다. 재무제표상에 명기된 자본잉여금(주식발행초과금 등)과 이익잉여금을 합치면 된다.

삼성전자를 보면 지난 1분기말 기준 유보금이 주식발행초과금 4조4천억원과 이익잉여금 154조원을 합쳐 158조4천억원에 이른다. 유보율이라는 용어도 있다. 재무안정성 지표인데, 유보금을 자본금으로 나눠 100을 곱해 계산한다. 삼성전자의 자본금이 8,975억원이니까 1만7,650%에 이른다.

CEO스코어에 따르면 3월 말 기준 국내 10대 대기업이 갖고 있는 총 유보금 규모는 518조1,000억원에 달한다. 5년 전 269조2,000억원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늘었다.

국내 기업들은 지난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부채 비율을 낮추기 위해 사내유보금을 늘려왔다. 특히, 현재 삼성전자(158조4,000억원)와 현대·기아차(72조4,000억원)의 사내유보금은 전체 10대 그룹의 사내유보금 총액의 절반에 달한다. 가파른 증가세와 더불어 급격한 쏠림이 읽힌다.

최경환 신임 경제부총리가 내수활성화를 위해 꺼내든 카드가 바로 '사내 유보금과세'(이하 유보금 과세)다. 그런데 유보금 과세가 언급되자 마자 불거진 게 유보금 논란이었다.

재계에서는 "유보금을 마치 기업들이 안쓰고 금고에 쌓아둔 현금으로 착각한다. 그렇지 않아도 기업들은 잘 투자하고 있다"고 즉각 반발했다. 일면 타당한 면이 있다. 유보금을 투자의 재원으로 사용해도 회계장부상에는 유보금으로 남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유보금과세의 대상은 '일정기간 투자, 배당, 고용 등에 쓰이지 않은채 사내에 적립돼 있는 현금성자산'으로 구체화하는 게 필요하다. 이렇게 풀어쓰고 보니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는 개념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업들은 또 미래의 투자를 위해 유보금을 적립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역시 타당한 논리다. 10년, 100년 앞을 내다보고 자금을 미리 준비하는 건 매우 건전한 경영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함정이 있다. 상당수 기업들의 경우 투자를 핑계로 과도하게 유보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상속, 세금이라는 민감한 이유 때문인데, 너무 복잡해지기 때문에 여기서는 유보금에 대한 얘기만 하기로 하자.)

그래서 과세의 대상이 되는 유보금에는 '일정기간 과도하게 사내에 적립돼 있는 현금성 자산'이라는 수식어가 추가되어야한다. 적절하게 유보된 현금성 자산은 배제하는 게 맞다.

이렇게 되면 기업들이 반대 논리로 내세우는 이중과세, 사유재산 침해, 유보금에 대한 몰이해 등의 주장은 반감될 수 있다. 유보금을 배당금으로 돌리면 외국인 주주들의 배만 불린다는 일부 전문가들의 주장은 너무 편협하다. 배당수익률이 장기적으로 올라가면 새로 들어올 외국인 주주들은 없겠는가. 그리고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는 연기금 자산을 보라. 주식에 투자된 연기금은 안정적인 고배당이 존립의 근거다.

유보금과세는 사실 시대적인 소명의 발로가 아닌가 싶다. 외환위기를 겪고난 지 16년이 지나는 동안 정부, 가계, 기업의 살림균형이 깨졌다. 특히 1천조원이 넘는 빚을 떠안고 있는 가계의 재무상태는 이대로 가다간 파산할 지경이라는 경고음이 끊이질 않는다. 그런데 기업들은 변함없이 정부의 지원과 가계의 희생을 바탕으로 축적한 자산을 풀지 않는다. (모든 기업이 그러는 건 아니다.) 정부는 적자재정에서 벗어날 수 없는 구조다. 이런 여건에서 기업들의 역할이 주목받은 건 당연한 귀결이었다.

기업의 과다한 사내유보금은 조세회피의 통로로 악용될 수 있고, 기업의 투자를 약화시켜 국가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정부는 사내유보금에서 발생하는 금융소득에 세금을 물릴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 입장에선 채찍이다. 대신, 사내유보금을 배당이나 직원 성과급 등으로돌리는 기업에는 세제·금융 지원을 아끼지 않을 계획이다. 당근이다.

정부는 사내유보금 과세가 기업의 투자와 서민의 소득 향상 등 내수 진작을 이끌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유보금과세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적절한 유보에 대한 기준이 공감대를 얻어야한다. 기업들의 반발이 크면 이 제도는 성공하기 어렵다. 적절하게 유보하는 게 대주주(오너)들에게도 이득이 될 것이라는 일종의 설득이 필요하다. 오너들이 경영까지 겸하는 우리나라의 현실상, 주식회사를 개인소유로 착각하는 오너들이 적지않은 현실을 감안할 때 오너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으면 실효성이 의문일 수 밖에 없다.
앞서 얘기했지만 사내유보금에는 이미 토지, 건물, 공장, 설비 형태로 재투자된 부분까지 포함돼 있다. 재투자된 자산까지 포함해서 현금성 자산을 분류하는 기준이나 방법도 정비되어야한다.

한국경제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기업의 현금성 자산 비중이 9.3%로 미국(23.7%), 일본(21.4%), 대만(22.3%), 유럽(14.8%)에 비해 낮다는 결과까지 나온 마당이다.

유보금과세 이후 배당수익률이 늘 것으로 투자자들의 기대가 큰 게 사실이다. 이 대목에서 배당세까지 정비되어서 배당을 적극 실시하는 기업이나 오너들에게 혜택을 주어야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배당을 늘렸는데, 결국 세금부담만 커졌다는 반발이 우려되는 탓이다.

저성장의 늪에 빠진 대한민국. 기업들의 투자촉진, 임금과 투자 소득의 증가, 정부세수의 확보 등 다양한 긍정적인 효과가 기대되는 유보금과세의 첫발을 이제 막 내디뎠다. 조기정착될 수 있도록 각계각층의 관심과 응원이 필요하다.

머니투데이방송 박승원(magun1221@mtn.co.kr)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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