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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N현장+]은행원의 운칠기삼?

이대호 기자



최근 1년 사이 대형 금융사고가 잇따라 터진 금융권에서는 난 데 없이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노력이나 재주보다 운에 의해 성패가 갈린다는 뜻인데, 요즘 이 말을 실감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고 합니다. 물론 운이 없는(?)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우리은행은 CJ그룹의 차명계좌 수백개를 만들어 준 혐의로 금융감독원의 징계를 앞두고 있습니다. 은행은 기관경고를, 임직원 수십명도 중징계를 받을 전망입니다.

우리은행은 지난 2008년 삼성 비자금 사건에 연루돼 금융실명제법 위반으로 기관경고를, 당사자들도 여러명 중징계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당사자로서는 “왜 하필 나야?!”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대기업과 주거래를 하는 은행, 그 본사에 입점한 지점장인데, 대기업 측에서 차명계좌 개설을 요구했을 때 과연 이를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는 토로입니다.

원칙을 지키려고 부탁을 거절했다가는 대기업과 거래가 끊길 수도 있는 상황인데, 옷 벗을 각오를 하고 이를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금융권 사람들은 이야기 합니다.

이러나저러나 범법자 혹은 실업자가 될 위기인데, 당장 실업자가 되는 선택만큼은 피하고 본다는 얘기입니다.

단골, 큰손 고객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금융실명제법을 위반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입니다. 10년 넘게 거래한 고객이 어느 날 지인 명의로 계좌를 개설하려 한다던가, 큰손 고객이 전화만으로 대신 업무를 봐달라고 부탁하면 이를 거절하기 쉽지 않다고 합니다.

고객의 편의를 봐주겠다며 통장과 도장을 맡아놓거나, 미비서류를 챙겨올 때까지 다른 서류를 서랍에 보관하다가 불시검사에 걸리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한 사람의 부당 행위로 인해 애먼 동료들까지 제재 대상에 오르는 일도 적지 않습니다.

국민은행에서는 일부 직원이 저지른 금융 사고의 책임소재를 따지다보니 과거 자신이 맡았던 업무와 연관성이 있어 뒤늦게 본인이 제재 대상에 올랐다는 것을 알게 되는 직원도 꽤 있다는 군요.

처음에는 “내가? 왜?!”, “하필 왜 나야?!”라고 반문하다가 징계가 확정되면 이내 ‘운칠기삼’을 떠올리며 체념한다고 합니다.

KT ENS 협력사로부터 초대형 대출사기를 당한 하나은행 담당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전까지 ‘관행적’으로 해오던 일들이 결과적으로 ‘범법’을 양산하고 이를 키워온 꼴이 됐습니다.

경징계 하나라도 금융인 생명에는 치명적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경우에 따라 인지상정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운 나쁜 사람만 걸린다’는 안일함으로 결코 ‘정의’를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요즘 은행원들의 ‘운칠기삼’이라는 말이 한낱 푸념에 그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머니투데이방송 이대호 (robin@m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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