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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N 현장+] 1명의 고발자와 5명의 공모자들...'담합 적발' 제지업계의 민낯

심재용


친구 6명이 함께 은행을 털었습니다.

단숨에 큰 돈을 챙긴 친구들은 공평하게 돈을 나누고 그대로 흩어졌습니다.

경찰은 수배령을 내렸습니다.

'제일 먼저 자수하면 무죄'라는 조건이 달렸습니다.

그러자 친구 가운데 한명이 바로 자수를 했습니다.

친구들 사이에서 리더로 통하던 인물이었습니다.

그 '정직한' 리더 덕분(?)에 경찰은 나머지 친구들을 모두 잡을 수 있었습니다.


◆'담합 적발' 제지업계의 속사정

얼마전 제지업계에서는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종이컵 원지 담합행위로 6개 제지업체(깨끗한나라, 한솔제지, 한창제지, KGP, 무림SP, 한솔아트원제지)가 공정위로부터 100억원대 과징금 처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 사실을 공정위에 '찌른' 주인공이 함께 담합했던 6개 업체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이 업체가 '의리'를 저버리고 자진신고를 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리니언시'(leniency)라는 제도 때문입니다.

리니언시는 담합 사실을 제일 먼저 신고한 업체에게는 과징금을 100% 면제해주는 제도입니다.

결국 이 업체는 자진신고의 대가로 과징금 폭탄을 면제받고 유유히 빠져나갈 수 있었습니다.

물론 나머지 업체들의 속앓이는 심했습니다.

과징금도 과징금이지만 '꼼수'를 부린 '동업자'에 대한 배신감도 컸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놓치기 쉬운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억울함'만 토로할 뿐 담합행위에 대한 반성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겁니다.


◆제지업계의 뿌리깊은 담합 관행

공정위가 발표한 제지업계의 담합 행위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입니다.

제지업계는 종이컵, 라면 용기 등에 쓰이는 컵원지 가격을 지난 2007년부터 2012년까지 47%나 올렸습니다.

톤당 86만9천 원에서 5년만에 127만6천 원으로 올린 겁니다.

그런데 같은 기간 컵원지의 주재료인 펄프가격은 평균 13% 오른 것이 전부입니다.

시세보다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으로 폭리를 취하며 컵원지를 판 겁니다.

함께 짜고 동시에 가격을 높이니 종이용기 업체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자진신고가 없었다면 이런 담합이 어디까지 이어졌을 지 알 수 없습니다.


◆'벙어리 냉가슴' 중소 종이용기 제작업체

우리나라 종이용기 제조업체는 130여개 정도입니다.

나름 회사의 면모를 갖춘 '기업'도 있지만 대부분 '구멍 가게' 수준입니다.

매우 영세하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하루 아침에 원재료 값을 담합해서 올리면 적자가 나도 일단 사야합니다.

이런 상황이 억울해서 공정위에 담합을 고발한 업체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종이 공급중단이라는 '철퇴'였습니다.

제지업체가 '괘씸죄'를 적용해 해당 업체에 종이공급을 바로 끊어버린 겁니다.

그 뒤로 종이용기 제조업체들은 담합에 대해 침묵했고 냉가슴만 앓았습니다.

결국 제지업계 스스로 담합 관행을 끊어 내는 것 외에 담합을 막을 뾰족한 대책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자진신고자를 탓하는 제지업계를 보면 자정노력이라는 말, 참 무색하게 느껴집니다.


◆1명의 고발자와 5명의 공모자들

여기 1명의 고발자와 5명의 공모자들이 있습니다.

공모자들은 고발자 탓에 잡혔다고, 억울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동료의 배신으로 잡혔더라도 은행털이는 은행털이일 뿐입니다.

'남의 탓' 보다는 통렬한 자기 반성이 제지업계에 요구되는 이유입니다.

머니투데이방송 심재용 기자(m3rdjoy@m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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