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N현장+]빌 게이츠는 모뉴엘을 몰랐다!!..."반성합니다"

희대의 사기극으로 드러난 모뉴엘을 설명할 때 가장 자주 인용되는 수식어는 ‘빌게이츠가 주목한’입니다.

많은 언론들은 지난 2007년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에서 빌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이 “앞으로는 홈엔터테인먼트 PC 시장이 성장할 것이고, 모뉴엘 같은 회사가 주목 받을 것”이라고 직접 회사 이름을 언급했다고 밝혔습니다.

LG경제연구원 역시 <2007년 CES에서 빌 게이츠 회장이 “모뉴엘 같은 회사가 주목을 받을 것”이라며 회사명이 직접 거론 되는 등 미국에서 그 혁신성으로 인정을 받았다>고 모뉴엘을 소개했습니다.

모뉴엘이 은행권으로부터 3조원 넘는 대출을 받을 수 있었던 비결은 이같은 사회적 평판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 많은 언론과 경제연구원은 빌게이츠가 실제로 모뉴엘에 대해 이야기한 것을 본 적이 있을까요?



2007년 모뉴엘을 언급했다는 빌게이츠의 기조 연설은 유투브를 통해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DxWd19-TdRo&app=desktop

빌게이츠의 연설 어디에서도 '모뉴엘'이라는 단어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굳이 주목할 만한 업체를 소개하는 자리도 아니었습니다.

소니, 도시바 등 몇몇 업체가 언급되긴 하지만 빌게이츠가 이날 했던 이야기는 윈도우 비스타가 하드웨어의 기능을 향상 시켜줄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단지 윈도우 비스타가 탑재된 여러 종류의 컴퓨터들을 보여줄 때 모뉴엘 제품(902 E8400)이 스치듯 지나갈 뿐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홈시어터 PC를 만드는 곳이 거의 없다보니 CES에 출품된 모뉴엘 제품이 자료 영상에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글로벌 IT 업체인 마이크로소프트의, 그것도 빌게이츠 회장이 직접 우리나라 중소기업을 주목하라고 언급했다면 분명 '기사꺼리'입니다. 하지만 그런 사실이 없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한줄의 기사도 없습니다.

빌게이츠가 모뉴엘을 언급했다는 말은 2010년 한 IT 전문매체에서 처음 등장합니다. 이후
종합일간지, 경제지, 주간지 등을 가리지 않고 인용돼 ‘모뉴엘’ 하면 ‘빌게이츠가 주목한’으로 표현됩니다.

무려 관련 기사만 400여개나 됩니다. 그 많은 언론중 단 한 곳도 빌게이츠가 모뉴엘에 대해 언급 했는지 확인하지 않은 겁니다.

"삼인성호(三人成虎), 사람 세명이 호랑이를 봤다고 거짓말을 하면 없는 호랑이도 만들어진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모든 언론이 ‘모뉴엘=빌게이츠가 주목’이라고 떠들어 댔으니 모뉴엘 정도의 괴물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모뉴엘 사건이 발생한 이후 많은 언론들은 ‘한번만 유심히 봤어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은행의 부실한 대출 심사를 지적했습니다. 또 감독당국 책임론을 들먹였습니다.

엄중히 은행과 감독당국을 꾸짖는 비판기사, 사설에서도 모뉴엘은 ‘빌게이츠가 주목한’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습니다. 재무제표만 제대로 봤어도 알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하지만, 모뉴엘의 재무제표는 2007년 이후 매년 공개돼 있었습니다.

진실을 추구하고 국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은 언론의 사명입니다. 그런데 대규모 사기행각을 벌인 사건을 뒤돌아 보면 항상 무책임한 언론의 받아쓰기도 한 몫을 해왔습니다.

'한번만 유심히 봤어도'

다른 사회적 주체들을 비판하기에 앞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겠습니다.

추신.
저 역시 3차례에 걸쳐 모뉴엘 관련 기사를 쓰며 빌게이츠가 모뉴엘을 칭찬했다는 오보를 썼습니다. 반성합니다.

머니투데이방송 권순우 (progres9@naver.com)

<2007 빌게이츠의 CES 기조연설 발췌>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