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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N현장+] 다가구 세입자의 설움...'세입자'라 쓰고 '봉'이라 읽는다

임채영


비행기 안에서 슈퍼갑질을 한 '땅콩 리턴' 부사장 때문에 대한민국은 연일 시끄럽다. 갑질을 하는 '있는 자'가 비단 비행기 안에만 존재할까? 서민들의 주거공간인 다가구주택만 가봐도 '땅콩 리턴' 부사장 못지않은 슈퍼갑들이 여럿 존재한다.

문제의 비행기 속 승무원들은 '땅콩 리턴' 부사장의 말한마디에 직업을 잃게 될까 두려웠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세입자들은 집 주인의 부당한 요구도 혹여나 밉보여 거처를 잃을까 두려워 따를 수 밖에 없다고 한다.

(사진=news1/서울 동작구 사당동의 한 빌라 밀집 지역)


■ 다가구주택에 살려면 '주인 말'을 따르라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듯이 다가구주택 세입자들 사이에서는 '다가구주택에 살려면 집 주인의 말을 따르라'는 우스갯소리로 오고 간다.

다가구주택은 집 주인이 가구별로 매달 일정 금액의 관리비를 걷는다. 보통 계단청소비, 센서등, 무선 인터넷비 등 다가구주택에 사는 사람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시설 등에 사용된다.

아파트처럼 정해진 관리비 항목이 없다보니 관리비 안에 포함되는 항목은 집 주인에 따라 다르고, 항목이 같아도 관리비 금액은 1만원에서 많게는 5만원 이상까지 큰 차이가 난다.

세입자가 집에 있는 시간이 적어 인터넷 등을 거의 사용하지 않아도 집 주인이 인터넷비를 관리비 항목에 포함시키면 헛돈을 내야 하는 꼴이다.

더 큰 문제는 본인이 낸 관리비가 매달 어떻게 얼마나 쓰이고 있는지 알고 싶어도 집 주인이 내역서 공개를 거부하면 달리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집 주인이 '매달 얼마씩 관리비를 내야한다'고 말하면 세입자들은 불만없이 그대로 그 말을 따라야 하는 것이 다가구주택의 관행적인 법칙이 된지 오래다.

■ 세입자는 '순한 양'이 될 수 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세입자 스스로 부당하다고 생각된다면 집 주인에게 보다 강하게 문제를 제기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세입자 입장에서는 집 주인과 갈등을 빚어 어렵게 마련한 주거공간을 잃을까 두려워 불만을 제기하기 쉽지 않다.

취재를 하면서 만난 사례자는 "매달 집 주인에게 용돈벌이를 해주고 있단 느낌이지만 괜히 밉보여 재계약할 때 불이익을 받을까봐 참고 산다"고 말한다.

아파트 전셋값 급등에 다가구주택의 전세 수요가 급증하면서 가격과 지역 등 조건이 맞는 다가구주택을 찾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 다른 세입자는 "집 주인에게 관리비가 너무 비싸다고 계속 항의하다가 왜 혼자만 난리나며, 다른 전셋집 구해 나가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말한다.

저렴한 집을 찾아 2년에 한번씩 옮겨다녀야 하는 처지에 놓인 세입자는 비자발적으로 '순한 양'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 '법'도 '있는 자'만 챙기는 구조

그렇다면 법으로 다가구주택 세입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안타깝게도 현재로서 다가구주택의 관리비는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주택법이나 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는 공동주택 관리비와 관련된 규정이 있지만, 150가구 이상의 대규모 공동주택이거나 혹은 집에 소유권이 있을 경우에만 적용된다.

다시 말해, 돈이 없어 저렴한 소규모 공동주택에 살거나, 세 들어 사는 경우에는 본인이 낸 관리비가 어떻게 쓰여도 권리를 주장할 수 조차 없다.

부동산 전문 변호사 조차도 "세입자가 변호사를 선임해서 소송을 걸수는 있겠지만, 법의 명확한 규정이 없기 때문에 승소 확률은 높지 않다"며 "매달 몇 만원을 아끼려다 거처도 잃고 소송비용도 잃을 수 있다"고 말한다.

법을 아무리 들여다 봐도 '없는 자만 서러울 뿐' 이란 결론에 도달할 뿐이다.

취재가 끝날 무렵 본인의 이야기를 들려주던 다가구주택 세입자는 "아파트에 사시죠? 내 집은 아니어도 아파트에 살 수 있는 것만으로 행복한 줄 아세요"라는 말을 씁쓸하게 웃으며 건넸다.

전셋값 급등에 조금이라도 저렴한 전셋집을 찾아 비자발적으로 다가구주택에 거처를 마련한 세입자들이 하루라도 빨리 있는 자의 '봉'에서 벗어나 내 집 마련의 '꿈'을 펼쳐나갈 수 있도록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

머니투데이방송 임채영(rcy@m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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