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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N현장+]금감원 '좋은 규제'를 그림자로 만들 수밖에 없던 사연

권순우 기자

[MTN현장+]금감원 좋은 규제를 그림자로 만들 수밖에 없던 사연

최근 금융감독원은 소멸시효 완성 채권을 추심하거나 매각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행정지도를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금융감독원은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권을 추심하거나 대부업체 등에게 매각하는 행위를 자제하도록 유도하며 하반기중 행정지도 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금감원이 소멸시효 완성 채권 매각을 금지하려는 이유는 불법 추심에 시달리는 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섭니다.

금융회사의 대출은 안 갚고 5년이 경과하면 소멸시효가 완성돼 갚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법원의 지급 명령이 있거나 채무자 스스로 일부라도 변제를 하는 경우 소멸시효가 다시 살아납니다.

일부 대부업체들은 금융회사로부터 소멸시효 완성 채권을 매입해 법원에 지급 명령을 신청하거나 채무자로부터 일부를 변제 받아 시효를 부활시키는 꼼수를 부리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1만원만 입금하면 이자를 모두 면제해주겠다”는 식이지요. 안갚아도 되는 돈 1만원을 갚은 사람은 원금이 모두 부활해 전액을 상환해야 하는 의무가 생깁니다.

소멸시효완성 채권은 자금을 회수할 가능성이 매우 낮기 때문에 액면가의 1% 정도 수준으로 거래가 되고 있습니다. 100만원짜리 채권이 1만원에 매각되고, 이를 인수한 대부업자가 절반인 50만원이라도 회수를 한다면 5000%의 수익을 올릴 수 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채무자를 괴롭힐지는 불보듯 뻔합니다.

하지만 금감원은 이같은 조치를 '그림자 규제' 형식으로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림자 규제는 법적 근거 없이 만들어진 행정지도, 모범규준, 구두지시 등의 규제입니다.

금감원의 '소멸시효 완성채권에 대한 매각, 추심 금지 행정지도'가 그림자 규제가 된 건 채권추심법, 민법이 소멸 채권에 대한 추심과 매각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법원은 무효인 채권이라 하더라도 양도 행위는 인정한다고 판결한 바 있습니다. 또 민법상 채무자가 빚을 갚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시하기 전에는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하더라도 그 채권은 유효합니다.

금감원도 '소멸시효 완성 채권 매각 금지 행정지도'의 법적 근거가 없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안병규 금감원 저축은행 검사국장은 “국회 입법 조사처에서도 소멸시효 완성 채권 매각을 금지하는 것을 제안했고 의원 입법으로도 관련 법안이 발의된 바 있다”며 “사회적 공감대는 충분히 형성됐다고 판단하고 법무부에도 법률 개정을 건의했다”고 말했습니다.

법 개정 논의는 있었지만 개정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꼭 필요한 규제니 법적 근거가 없다는 사실을 굳이 드러내지 않았으면 하는 당부를 남겼습니다.

법무부가 채권추심법을 개정할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금감원은 금융회사 채권에 대해서만 소멸 채권 매각, 추심을 금지하려고 하지만 채권추심법은 모든 채권에 적용되며 상거래 채권과 금융회사 대출채권을 구분하지 않고 있습니다.

또 채권추심법을 개정하면 채권자의 재산권이 침해할 여지가 있고 여러 종류의 채권 거래에 혼란을 줄 우려가 있어 쉽게 개정할 수 없습니다. 결국 소멸채권 추심, 매각 금지 행정조치는 법적 근거를 만들지 못하고 그림자 규제로 남겨질 가능성이 큽니다.

금융당국 고위 관료 출신인 성대규 경제규제행정컨설팅 수석연구위원은 저서 <그림자 금융규제>에서 “규제 수요를 조속하게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법령의 개정을 기다릴 수 없었고, 이에 따라 만들어지는 것이 모범 규준”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법령의 위임 근거가 명확하지 않음에도 규제의 필요성이 있는 경우 모범규준이 제정되기도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림자 규제는 대부분 선한 의도에서 만들어집니다.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합법적인 절차를 거치지 못하는 것은 법 개정이 수월하지 않고 필요한 조치를 적기에 수행 할 만한 제도가 미흡하기 때문입니다.

그림자 규제가 우리 금융산업 발전을 가로 막는 것을 방지하려면 철폐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필요한 규제를 적법하게 만들 수 있는 제도 정비가 필요합니다.

서민들을 보호하는 효과적인 행정 조치가 ‘관치 금융’, ‘그림자 규제’ 형식으로 추진되고, 좋은 일을 하려는 공직자가 당당할 수 없게 만드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머니투데이방송 권순우입니다.(progres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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