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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N현장+] 깐깐해진 용선료 계약…잘못되면 모두 해운사 책임

김이슬 기자

<네덜란드 로테르담항에 입항 중인 현대상선 컨테이너선. 사진=현대상선>


[머니투데이방송 MTN 김이슬 기자] 4.13 총선 이후 한계기업에 대한 구조조정 논의가 급물살을 타는 가운데 국내 해운업계가 '용선료 인하' 협상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은 "용선료를 낮춰 재무 건전성을 회복하는 일이 결과적으로 선주들에게도 이득"이라며 해외 선주들을 설득 중입니다.

기업간 거래에 있어 계약 위반은 곧 신뢰 상실을 의미합니다.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이 기본적인 덕목까지 제쳐 두고서라도 용선료를 20~30% 가량 낮춰달라고 읍소하는 이유는 별다른 도리가 없는 절박한 상황 때문일 것입니다. 당장 채권단은 "용선료 인하 없이는 추가 지원도 없다"고 하고, 더 이상 구조조정을 미룰 수 없다는 정부는 "현대상선이 가장 걱정"이라며 해운업을 정조준하고 있습니다.

◆ 현대상선 이달 말까지 '용선료 인하' 협상 성공해야...해외 22개 선주 설득나서

기한은 이달 말까지입니다. 그나마 해운사들이 협상 타결 가능성에 실낱 같은 희망이라도 걸 수 있는 건 앞서 이스라엘 '짐(Zim)' 같은 선사들이 등이 용선료 인하 협상을 이끌었던 성공 사례 때문일 것입니다. 이처럼 그간 국내외 해운사들은 실적 악화 등으로 인해 구조조정을 겪을 때마다 선주들에게 벼랑 끝 전술로 용선료 인하 협상에 나섰습니다. 파산 직전의 선사가 법정관리라도 가게 되면 선주 입장에선 쥐꼬리 만큼도 얻어 낼 수 없으니 울며 겨자먹기로 협상에 응했던 것입니다.

현대상선과 협상을 진행 중인 해외 22개 선주들 역시 비슷한 심정일 것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만약 현대상선의 용선료 인하 요청을 거부해 지급불능 상태에 이른다면, 현대상선에 선박을 용선한 선사는 비교적 고액 용선료 수익이 끊겨버리는 상황이 되기 때문에 쉽게 거부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한진해운 주요 기항지 중 하나인 미국 롱비치 터미널. 사진=한진해운>


◆ 올해부터 달라진 정기 용선료 계약 표준양식...NYPE2015 문제 발생시 '해운사 책임'

그런데 앞으로는 국내외 해운사들의 이런 막무가내 전략이 쉽게 '통(通)'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올해부터 선박 소유권자인 선주와 배를 빌린 용선자 간의 정기 용선료 계약서 양식이 더욱 깐깐하게 변경, 적용됐기 때문입니다. 달라진 계약 양식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선박 소유권자는 유리해졌고, 배를 빌린 용선자들은 절대적으로 불리해졌습니다.

배경은 이렇습니다. 글로벌 해운협회인 Bimco와 싱가포르 해사재단 SMF 등은 'NYPE 2015'란 새로운 정기 용선계약서 양식을 개정 발표하고, 올해부터 적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해당 양식은 글로벌 해운사들이 사용하는 표준 거래 계약서입니다. 개정안에서 주목할 부분은 이전 양식인 NYPE 1993과 비교해 배를 빌린 용선자들에 대한 책임 소지를 분명하게 적시했다는 점입니다.

가장 핵심은 '선박철수권'에 해당하는 내용입니다. 일반적으로 선박철수권은 배를 빌린 용선자가 용선료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을 때, 선박 소유자가 해당 선박을 회수해갈 수 있는 권리를 뜻합니다. 이와 관련해 NYPE 계약서는 용선료 지급 확정 날짜 외에 대개 3일로 설정되는 유예기간을 지나도 용선료가 지급되지 않을 경우 선박철수권을 행사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 용선료 미지급 시 선박 회수, '모든 책임은 해운사가 져야'

선박철수권 행사에 있어 기존 NYPE 1993과 NYPE 2015의 차이는 분명합니다. 기존 NYPE 1993에서는 유예기간의 조건을 '용선자나 용선자의 은행 과실'로 인한 용선료 미지급에 한해 설정했습니다. 하지만 변경된 개정안에서는 해당 단서조항이 불필요한 분쟁을 야기할 수 있다고 판단해 해당 단서를 삭제하고, 용선료 미지급의 모든 원인을 배를 빌린 용선자에게 있음을 명확히 했습니다.

또 동일 조항에는 선박 철수 이후에 용선계약의 남은 기간에 발생한 손실에 대해서도 선주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는 내용도 포함됐습니다. 단순히 배를 회수해 가는 것을 넘어 이후 시장가격 하락에 따른 잔여 용선기간에 대한 손실마저 배상하라고 정당하게 요구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기존 NYPE 1993 계약서에는 단순한 선박 철수 이후 시장 가격 하락에 따른 선주의 손해를 구상받기 어려웠습니다.

이에 더해 용선자가 선사일 시에는 기존 선주에게 용선한 선박에 적재된 화물의 유치권을 행사할 수 있게 했습니다. 용선료를 지급하지 않으면 배에 실은 화물 소유권을 뺏겠다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한 경우 용선자의 다른 선박을 묶을 수도 있어, 사실상 영업 불능 상태까지도 염두에 둬야 합니다.

◆ 새로운 유형의 소송ㆍ분쟁 가능성 커질 듯...용선료 협상 난항 예상

업계에서는 큰 틀에서 보면 용선자가 '용선료 인하'를 요구할 경우에도 포괄적인 용선료 미지급 사유에 해당하는 만큼, 용선자의 책임 부담이 한층 커질 것으로 관측하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현대상선의 용선료 인하 협상을 두고도 계약 변경 사유나 마찬가지여서 자칫 분쟁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를 빈번하게 제기하고는 했습니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이번에 개정된 계약 양식에 의해 새로운 유형의 소송과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유동성 위기로 벼랑 끝에 서 있는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에게 고액의 용선료는 아킬레스건입니다. 해운업 시황이 좋을 때 비싼 값에 장기 계약한 용선료가 현재 시세보다 6배나 뻥튀기 되는 상황을 예측이나 했을까요. 지난해 현대상선은 용선료로 1조 8,000억원을, 한진해운은 2조 6,200억원을 지급했습니다. 용선료 인하 협상에 성공하지 못하면 현대상선은 침몰하고 말 것입니다.

'사즉생의 각오'란 이 같은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둔 발언일 것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기존 계약서에는 위와 같은 엄격한 책임 조항이 빠져 있다는 점이 아닐까요. 이제 잘못되면 모든 책임을 짊어져야 할 해운사들에게 용선료 협상은 앞으로 더 까다로운 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

머니투데이방송 김이슬 기자

[머니투데이방송 MTN = 김이슬 기자 (iseul@m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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