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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가습기살균제 5년...'숨 막히던 외침'

이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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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커멘트 >
검찰의 가습기살균제 관련 수사가 마무리 수순을 밟고 있습니다. 어렵게 어렵게 20여명이 재판에 넘겨질 전망인데요. 아시다시피 이는 집단사망 참사가 공론화 된 지 무려 5년이나 지나서야 이뤄진 일입니다. 그 긴 시간 동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 문제를 세상에 알려온 사람들이 있는데요. 오늘은 그 사람들에게 시선을 두려 합니다. 이대호 기자와 함께 합니다.

< 리포트 >
앵커1) 5년, 정말 긴 시간이었습니다. 그동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 사건을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요?

기자)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첫 사망자가 나온 것은 지난 2002년으로 추정됩니다. 그리고 이 문제는 2011년, 임산부와 아기들이 연달아 사망하는 사태로 확산되고 나서야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는데요.

그 후로도 5년이 더 흘러서야 가습기살균제를 만들고 판매한 사람들에 대한 사법처리 절차가 진행 중입니다. 검찰이 올해 1월 가습기살균제 특별수사팀을 구성하면서 수사에 속도가 붙었고, 그 덕(?)에 피해자들의 목소리도 언론에 대거 보도될 수 있었는데요.

혹자들은 말합니다. '그동안 왜 가만히 있다가 이제 와서 이렇게 목소리를 높이느냐'고...

하지만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쉼 없이, 세상을 향해 그 실상을 외쳐 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을 만나봤습니다

지난 2011년 3월, 세퓨 가습기살균제로 인해 아내와 태아를 잃은 39세 안성우 씨. 당시 세살이던 큰 아들은 지금도 '폐 섬유화' 증상을 안고 살아갑니다.

30대 초반에 가정파괴를 당한 안 씨는 괴로운 방황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에 직장을 그만두고 아내의 유골이 안치된 사찰 인근을 전전하며 방황을 하기도 했습니다.

[인터뷰] 안성우 / 2011년 아내와 태아 사망
"피해 사실을 알고 직장생활에 집중이 안 되고 자의반 타의반 직장을 그만두게 되고..."

그러던 그가 본격적인 활동에 나선 것은 가해기업들의 뻔뻔한 모습과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의 눈물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기업과 정부를 상대로 한 싸움은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인터뷰] 안성우 / 2011년 아내와 태아 사망
"활동을 하면서 너무 힘들었죠. 난 피해자이지 가해자가 아닌데 가해자 취급 받고... 정부에서는 더 이상 해줄게 없다. 유해성만 밝히면 됐지 더 이상 뭘 해주느냐 그런... 기업을 상대로 직접 원인을 밝혀야 되는... 그게 더욱 지치게 만든 거죠."

안성우 씨는 지난 2015년 11월 부산에서 서울까지 자전거 종주를 하며 시민들에게 가습기살균제 사태를 알렸고, 지난 겨울에는 옥시 본사와 검찰청 앞에 텐트를 치고 살면서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옥시 등 일부 기업들이 피해 보상에 나서고 있지만, 오히려 안 씨는 보상 받을 길이 없습니다. 안 씨가 사용한 가습기살균제가 '세퓨' 제품인데, 이 회사는 이미 폐업을 해버렸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안성우 / 2011년 아내와 태아 사망
"(세퓨는)폐업을 해서 대응을 하지 않죠. 검찰에 구속이 됐고 대표는... 개인 배상에 대한 해결은 할 수가 없죠. 결국 국가에 책임을 묻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세퓨 사용자들은 국가에 책임배상을 받는 수밖에 없어요."

지난 2011년부터 '가습기살규제 피해자와 가족 모임'을 이끌어 온 강찬호 대표(47).

그가 피해자 단체의 대표를 맡은 것은 '내 가족은 살아남았다'는 고마움과 미안함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루 빨리 가습기살균제 유통을 막아야 한다는 절박함도 있었습니다.

[인터뷰] 강찬호 /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모임 대표
"2011년도 9월경일 거에요. 피해자들이 처음 모였어요. 제가 갔을 때 대부분은 유족분들이었고... 모였는데 별말씀 안하시고 다들 울고만 계시고... 다행이 저는 아이의 목숨을 건진 경우였으니까... 이런 사실을 빨리 사회에 알리고, 그 당시만 해도 가습기살균제가 (시중에)돌아다니고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빨리 회수해야 된다. 이런 걸 요구해야 된다 이렇게 하면서..."

강 대표의 딸은 5살 때 '원인 미상 간질성 폐질환'이라는 병을 얻었습니다. 다행이 목숨은 건졌지만 앞으로 딸아이의 폐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사실은 그를 두렵게 만듭니다.

그가 생계를 아내에게 맡기면서까지 오랜 시간 싸워 온 이유입니다.

[인터뷰] 강찬호 /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모임 대표
"와이프가 간호사니까 그냥 와이프가 밥벌이 하고, 저는 이렇게 상대적으로 쏠려 있는 거죠. 형편이 돼서 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제 딸의 문제이고, 제 딸이 앞으로 어떤 상황을 겪을지 모르고 앞으로 이 아이의 미래가 있고... 첫 모임 때부터 우리 아이는 목숨을 건졌는데 주변에 다 유족들이었을 때 가장 가까이서 이 상황을 봤던 사람이잖아요. 그것에 대한 책무가 있는 거죠."

그가 가장 화나는 것은 수백명이 죽고 수천명이 다친 참사를 피해자들이 직접 풀어나가야 한다는 점입니다.

[인터뷰] 강찬호 /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모임 대표
"일단 사람이 죽고 다쳤으면 먼저 구제를 해야 되는 거잖아요. 구제를 해놓고 국가가 구상권을 묻고 정부가 책임질 것은 책임지고 기업한테 물어야 할 건 물어야 되는데, 사람이 죽어나가고 있고 헉헉대고 있는데 이 문제에 대해서는 손을 놓고 이건 기업과 알아서 할 일이라고 하는 건 우선순위가 잘못된 거죠. 국가의 책임을 물어야죠. 반드시. 어떻게 한 사회에서 이렇게 유독물로 제품이 만들어져서 몸 안에 흡입이 됐고 그걸로 인해 수백명, 수천명이 죽고 다쳤는데 국가 책임은 없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전 세계 코미디가 되는 거죠."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과 함께 지난 5년간 이 문제를 세상에 알려온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

20여년간 환경운동을 해 온 그가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피해자들이 분열되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던 일이었습니다.

[인터뷰] 최예용 /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
"피해자들이 등급 때문에... '나도 굉장히 피해를 봤고 우리 가족이 죽었는데 왜 3~4등급이냐'는 그런 것을 속 시원하게 개선시켜 드리지 못하고 또 그것 때문에 피해자들 사이에 이견이 생기고 분열이 생기는 과정을 저희들이 도와주고 해결하는 데 아무래도 한계가 많이 있었고 지금도 마찬가지고... 노력은 하고 있지만..."

그는 피해자들과 함께 영국, 덴마크까지 날아가 옥시레킷벤키저와 케톡스 대표를 직접 인터뷰하고 그 자료를 검찰에 제출하는 등 입체적인 활동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정부와 기업의 연구용역이나 협찬 없이 회원들의 기부금만으로 운영되다 보니 항상 재정적인 어려움에 시달립니다.

[인터뷰] 최예용 /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
"회원 회비로 순수하게 가야죠. (회원이 많지도 안잖아요?) 많지도 않죠. 지금 한 180명 정도 되니까... 그러니까 생계비나 이런 것도 그 수준에서 유지하는 수밖에 없고... (기업 협찬은?) 전혀 안 받습니다. 정부, 기업 돈을 안 받으려고 하는 거고... 그러니까 운영위원들이 특별기부금 이런 형태로 아직도 거기에 많이 의존을 하고 있죠."

앵커2) 이렇게 가족을 잃고 긴 시간 동안 정부와 다국적기업, 그리고 세상의 무관심과 싸워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 기자, 이제야 조금씩 사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고 있는데, 아직 갈 길이 멀죠?

기자)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이제야 사법처리를 위한 첫발을 뗐을 뿐입니다. 그리고 가해기업들의 배상도 여전히 초기 단계입니다. 여전히 인과관계와 보상 규모를 두고 기업과 피해자 사이 갈등이 이어지는가 하면, 세퓨 사용자는 정부가 아니고서는 보상해 줄 주체도 없는 상황입니다.


앵커3) 7월 초에 검찰 수사 결과가 발표된다 하고, 여야 3당은 국정조사를 실시하기로 합의한 상황인데요. 국정조사에 따라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기자) 피해자들은 현재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도 진행 중인데요. 앞서 일부는 작년 초 1심에서 패소 판결을 받기도 했습니다. '국가가 유해성을 미리 알았다고 볼 수 있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에서입니다.

하지만 국정조사를 통해 정부의 과실이 드러난다면 피해자들은 국가로부터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릴 수 있습니다. 특히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세퓨 사용자들은 그 회사가 폐업을 해버린 터라 정부의 보상이 절실한 상황입니다.


앵커4) 피해자들은 이번 사태가 어떻게 해결되기를 바라고 있나요?

기자) 단순히 얼마를 받고 마는 보상 금액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지적합니다.

가족을 잃은 고통을 하루 빨리 잊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평생 폐질환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을 위한 미래 대책을 세우고, 어딘가에 있을 잠재적 피해자까지 찾아내는 것도 중요하다는 지적입니다.

호흡기 질환으로 인한 문제가 언제,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나타날 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돈으로 목숨 값을 치르고, 당장의 피해 정도만 파악하고 넘어가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또한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만들어 파는 기업들에 경각심을 높이지 위해 이번 기회에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전면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피해자들은 수백 수천명이 죽고 다친 참사에 정부가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조용해지면 결국 개인과 기업의 문제로 처리하고 말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검찰이 이슈를 만들어줬을 때 언론이 자극적으로 보도하고 국민들이 분노했던 것의 10분의 1만이라도 지속적으로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제2, 제3의 가습기살균제 사태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지적입니다.

머니투데이방송 이대호





[머니투데이방송 MTN = 이대호 기자 (robin@m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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