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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N현장+]도 넘은 면세점 길들이기...이미 기울어진 운동장

이대호 기자



"브랜드 신경전이 아니에요. 면세점 길들이기죠."

수입화장품 브랜드들의 '매장 면적 신경전' 아니었던가? 면세점 길들이기가 뭐지?

기자가 해당 면세점 매장을 찾아간 이유다.

에스티로더는 지난 5일 여의도 갤러리아면세점63에서 자사 11개 브랜드 소속 판매직원 30여명을 모두 철수시켰다.

겉으로는 경쟁업체와의 입점 조건을 문제 삼으며 실력 행사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약속과 달리' 한화갤러리아면세점이 경쟁사인 샤넬코스메틱에 더 넓은 매장을 내줘 화가 났다고 한다.

에스티로더 측은 "원래 한화갤러리아와 계약할 때 샤넬에 자리를 크게 주지 않겠다고 했다"며, "샤넬 매장이 더 커서 실측까지 해봤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가봤다.


▲ 정문을 열자마자 에스티로더가 '딱'

갤러리아면세점63은 국내 면세점 가운데 1층 정문을 열자마자 매장으로 이어지는 유일한 곳이다. 그것도 땅값 비싸기로 유명한 여의도, 63빌딩이다.

이런 면세점 정문 바로 앞에 에스티로더 화장품 매장이 자리하고 있다. 면세점 측 표현을 빌리자면 '1급지 중의 1급지'다.

그리고 그 뒤에는 에스티로더 계열인 크리니크, 바비브라운, 톰포드 등 11개 브랜드가 줄줄이 이어져 있다.

여의도 갤러리아면세점63에 위치한 '에스티로더' 화장품 매장. 1층 정문 바로 앞에 위치해 가장 목 좋은 곳으로 불린다.


반면 샤넬 화장품 매장은 비교적 눈에 덜 띄는 오른쪽 구석에 자리하고 있다. 매장 면적은 에스티로더와 별 차이 없어 보였다. 그들처럼 '실측'을 해봐야만 비교 가능할 것 같았다.

갤러리아면세점63에 위치한 샤넬 화장품 매장. 상대적으로 코너에 있다. 에스티로더는 샤넬 화장품 매장 면적이 더 크다며 실력 행사에 나섰다. 기자가 둘러보니 두 매장 면적 차이는 체감하기 힘들 정도였다.


▲ "여기서 밀리면 안돼" 주변서 부추기기

이번 싸움이 겉으로는 매장 면적을 둘러싼 화장품 업체간 신경전으로 보이지만, 사실 그보다는 '면세점과의 기싸움'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심지어 '면세점 길들이기'라는 표현도 나온다.

신규 면세점에서 보다 좋은 조건을 받아내기 위해 해외 브랜드들이 국내 기업들을 상대로 파워 게임을 벌인다는 지적이다. 에스티로더 계약서에 샤넬 코스메틱 매장 면적이 담긴 것도 아니다. 경쟁업체 입점 조건을 특정 브랜드가 좌지우지 한다는 것 자체도 불공정 거래다.

한 화장품 업계 관계자는 "(에스티로더가)여기서 물러나면 랑콤, 부루벨까지 영향을 받게 된다면서 주변에서 부추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 면세점 업계 관계자는 "다 소문이 나서 이쪽을 해주면 저쪽도 해달라고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 역시 "옆에서 자꾸 (면세점과의 싸움을)부추기는 듯 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면세점 관계자는 "설화수(아모레퍼시픽) 등 국내 화장품 업체가 너무 뜨니 우리도 있다는 존재감을 과시하려는 것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


▲ 철수한 직원들은 어디에? '뺑뺑이 근무'

해외 명품업체의 실력 행사 뒤에 한국인 근로자들은 말 못할 고통을 받고 있다.

갤러리아면세점63에서 철수한 에스티로더 판매직원들은 다른 면세점 매장으로 분산 배치됐다. 집에서 멀어져 출퇴근이 더 힘들어졌다는 것은 이 글로벌 기업에게 '일부 직원들의 푸념'에 불과하다.

갤러리아면세점63은 작년말에 문을 열었다. 에스티로더 계열 11개 브랜드 판매직원 30여명은 약 반년만에 다시 근무지가 바뀐 셈이다. 또 언제 어디로 가게 될지도 알 수 없다. 회사에서 통보가 오면 하루아침에 근무지가 달라진다.


▲ '갑'이 된 해외브랜드, 한국인·한국기업은 '봉'

안 그래도 콧대 높던 해외브랜드들이 '갑 중의 갑'이 된 이유는 경제 현상의 만고진리인 '수요공급 법칙'으로 설명된다.

2014년 6개에 불과했던 서울시내면세점은 현재 9개로 늘었다. 여기에 관세청이 올해 말 특허 4개 더 추가할 예정이다. 2년새 서울시내면세점이 6개에서 13개로 두배 넘게 급증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해외 명품 업체들의 콧대만 더 높아졌다. '모시러' 오는 곳이 많으니 급할 것이 없다. 이리 재고 저리 재고 뜸 들이다가 '매장 면적이든 구매 단가든' 더 좋은 조건을 내미는 곳으로 입점하면 된다.

수가 틀어지면 판매직원들을 철수하고 인력이 모자란 다른 면세점 매장에 보충할 수도 있다. '입점 조건'도 개선하고 '인건비 절감 효과'도 누리는 일석이조다.

이런 현상이 '루이비통'에나 통하는 것인줄 알았는데 점점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면세점에서 국산 화장품에 밀려 존재감을 잃어가는 외국산 화장품 브랜드까지 이럴 지경이니...


▲ 정책, 외국계 배불리고 국내기업 제살깎다

면세점 특허를 대폭 늘리고 있는 정부.

그 '명분'은 중국인 관광객 급증이요. '실리'는 투자 활성화와 고용 확대다.

관세청 보도자료를 봐도 '고용·투자 활성화 정책'이라는 표현이 빠지지 않는다. 당국은 지난 4월에도 "시내면세점 추가에 따라 초기 투자 9,982억원, 신규 고용 5,000여명 창출 기대"라고 낙관했다.

한 면세점 판매직원은 말한다. "나라에서는 면세점이 많이 생겨서 일자리 창출된다고 하는데 새로 뽑은 직원이 거의 없다", "다른 매장 직원 다 데려다 놓은 것"이라고...

일자리가 늘기야 늘었겠지만, 정부의 낙관론만큼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신규 면세점들은 하나같이 흑자 전환 시점을 늦추거나 매출·이익 목표치를 하향 조정하고 있다. 예상치 못한 특허 추가가 이어지고 있고, 물 만난 외국계 브랜드들은 기세등등하기 때문이다.

에스티로더만 욕할 수는 없다. 경제적 손익이 좌우되는 마당에 경영도 '명품처럼' 하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이미 운동장이 기울어졌으니 공이 아래로 구르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힘의 균형이 깨진 상황에서 제2, 제3의 에스티로더는 또 나올 것이다. 이게 현실이다.

머니투데이방송 이대호 (robin@mtn.co.kr)



[머니투데이방송 MTN = 이대호 기자 (robin@m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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