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N NEWS
 

최신뉴스

[사재출연 긴급진단①]한국식 구조조정과 사재출연의 정당성

권순우 기자



[머니투데이방송 MTN 권순우 기자]

한진해운의 법정관리와 물류대란 과정에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일가에 대한 사재출연 논란이 한창입니다. 한진해운을 살리는데 필요한 사재출연을 사실상 거부한 조양호 회장은 물류대란으로 여론이 악화되자 결국 400억원을 출연하기로 했습니다.

사재출연에 대해서는 여러 논란이 있습니다.

대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재벌 일가는 ‘당연’스럽게 사재출연 압박을 받습니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은 금호그룹 구조조정 과정에서 2200억원의 사재를 내놨고 그 덕에 우선매수권을 받아 금호산업을 되찾았습니다.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은 금융계열사 지분을 출연하라는 채권단의 요구를 거부하고 법정관리에 갔습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현대상선 구제를 위해 300억원을 내놓았지만 결국 경영권을 뺏겼습니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를 가게 된 것은 경영자만의 책임이라고 보기는 힘듭니다.

고유가와 글로벌 물동량 감소, 해상 운임 하락은 해운산업이 생긴 이래 60년 만에 오는 최악의 상황입니다. 글로벌 해운사 중에 정부 지원 안 받고 생존해 있는 곳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주식회사는 보유한 지분만큼 유한책임을 집니다. 대주주든 소액주주든 지분이 휴지조각이 되면, 그만큼 책임을 진 것이다. 대한민국 누구도 최은영 회장에게 사재출연을 요구할 '권리'가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2일 한국경제연구원이 주최한 ‘물류대란 사태, 어떻게 볼 것인가’ 긴급좌담회에서 "대주주에 대한 사재출연 강요는 주식회사 유한책임 법리를 넘어선 초법적 요구"라고 비판했습니다.

연강흠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역시 "기업의 부실원인이 사업실패라고 하더라도 경영자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요인에 의한 사업실패라면 경영책임을 묻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날 좌담회가 기업에 우호적인 한국경제연구원이 주최한 행사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재벌 오너의 사재출연과 관련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습니다.

진보적인 경제학자로 분류되는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한 언론 기고문에서 “이런 식으로 대주주의 도덕적 의무를 강조하다보면 나중에 거꾸로 법에도 없는 총수의 권한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며 “대주주를 불필요하게 압박하는 것에는 반대”라고 밝혔습니다.

일부 주주에게 무한 책임을 강요하는 것은 회사법상 주식회사 제도를 흔드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지적이며, 결국 재벌 일가에 대한 사재출연 요구는 적은 지분율로 재벌그룹을 지배하는 명분이 된다는 비판입니다.

금융당국과 채권단의 입장은 다릅니다. 기본적으로 한국식 구조조정은 이해 관계자 중 사회적 약자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이뤄집니다. 워크아웃은 전체 채권의 75% 이상의 동의를 얻어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방식입니다.

전체 이해관계자가 아닌 75%만의 동의로 진행하는 이유는 기업 구조조정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섭니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대부분 은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합니다. 은행 채권 비중만 하더라도 75% 이상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업 구조조정을 추진할 때 돈을 빌려준 모든 채권자의 의견을 묻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회사채, 상거래 채권(외상값) 등을 포함할 경우 너무 이해당사자가 많아 의견을 모으기가 쉽지 않습니다.

법정관리로 가면 법원의 결정만으로 모든 채무를 조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법정관리 기업은 신규로 자금을 조달하기가 힘들어 구조조정을 추진하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기촉법에 따라 전문성을 갖춘 대여섯개 은행만 입을 맞춰 구조조정을 추진하면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습니다.

은행 뒤에는 경제 관료들이 있습니다. 효율성은 높지만 관치의 그림자가 짙게 밸 수밖에 없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죽일 것인지 정무적 판단이 개입됩니다. 기촉법은 특혜 시비를 내재하고 있는 법이라 한시적으로 적용되는 특별법입니다. 2001년 재정된 이후 네 차례에 걸쳐 만기를 연장했고 2018년 6월이면 다시 만기가 됩니다. 금융당국이 만기 연장을 시도할 때마다 법조계는 위헌소지가 있다며 연장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기촉법은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경제 관료들은 은행 뒤에서 구조조정을 지휘할 때 일반 상거래채권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합니다.

기업 구조조정을 하면 그동안의 빌린 돈은 탕감을 하거나 출자전환을 통해 주식으로 바꾸게 됩니다.

은행만 희생을 하면 일반 채권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신규자금 지원입니다. 부실 기업이 다시 살아나려면 새로운 자금이 필요한데, 통상은 채권 비율대로 신규 자금을 투입합니다. 받아야 할 돈을 못 받은 것만으로도 도산위기에 처할 수 있는 작은 중소업체들에게 추가로 돈을 빌려주라고 하면 버티기가 어렵습니다.

결국 기촉법에 따른 신규자금 지원은 은행이 돈을 내서 일반 상거래채권자에게 빚을 갚아 주는 특혜적인 성격이 있습니다. 중소, 협력업체들의 연쇄도산을 막고 경제에 미치는 파급을 줄이기 위해 은행이 희생을 하는 구조입니다.

채권단 중심의 구조조정은 이론적으로는 채권 회수 극대화를 목적으로 이뤄집니다. 당장 빚을 떼이고 말 것인지, 추가로 돈을 넣어서 기업이 살아나면 못 받은 돈까지 받아낼지가 가장 중요한 기준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채권은행은 떼이더라도 기업을 죽이는 선택을 할 유인이 큽니다. 보수적인 성향의 은행은 부실 기업에 돈을 빌려주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또 대부분 은행들은 담보로 잡고 대출을 해줍니다. 담보채권은 법원에 가서 빚잔치를 하면 우선 변제를 받을 수 있습니다.

회사가 법정관리에 가면 상대적으로 더 피해를 보는 것은 아무래도 상거래채권자입니다.

결국 경제 관료들의 선한 목적의 '관치'가 한국형 기업구조조정의 핵심입니다.

‘약자’를 구제하기 위해 은행(예금자, 납세자)의 희생을 기반으로 하는 구조조정을 추진할 때 속으로 웃는 ‘강자’가 있습니다. 바로 대주주입니다.

본인의 경영 실패로 회사가 망하게 생겼는데 은행 돈으로 살려주면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살아난 회사에서 대주주는 다시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하며 가장 큰 수혜자가 됩니다.

구조조정은 이해관계자들의 동일한 희생을 전제로 합니다.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이를 정치적, 정책적으로 일부 보완한 것이 기촉법에 근거한 한국형 기업 구조조정입니다. 그런데 약자 뒤에 숨어 재벌 일가가 가장 큰 수혜자가 되는 것은 묵과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때 대주주가 수혜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는 방식이 사재출연입니다. 대주주는 일부 희생을 통해 더 큰 자산인 회사를 지킬 수 있습니다. 정서적인 측면보다 이성적인 판단입니다.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은 동부제철, 동부건설 구조조정 과정에서 채권단으로부터 금융계열사 지분을 담보로한 사재출연을 요구받았습니다. 김준기 회장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동부제철, 건설을 살리는 것보다 금융계열사를 지키는 것이 이득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한진해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조양호 회장은 비용을 지불하고 자산을 보전하기 보다 이쯤에서 한진해운을 포기하는 것이 이익이라고 판단했고, 그래서 한진해운은 법정관리에 가게 됐습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대주주에게 무한 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권리에 비해 과도한 권한을 누리는 현실에 대한 면피가 됩니다. 이 뫼비우스의 띠는 언젠가 끊어야 할 것입니다.

권리와 의무의 괴리. 대주주가 가진 법적 권리에 비해 너무나 많은 것을 누리고 있는 현실은 제도적, 문화적으로 개선해야 할 한국 사회의 과제입니다. 그렇다고 너무나 많은 것을 누려온 그들이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제도의 가장 큰 수혜자가 되는 것은 용납되기 힘듭니다.

머니투데이방송 권순우(soonwoo@mtn.co.kr)

머니투데이방송의 기사에 대해 반론·정정추후 보도를 청구하실 분은 아래의 연락처로 연락주시길 바랍니다.

고충처리인 : 콘텐츠총괄부장 ombudsman@mtn.co.kr 02)2077-6288

MTN 기자실

경제전문 기자들의 취재파일
전체보기

    Pick 튜브

    기사보다 더 깊은 이야기
    전체보기

    엔터코노미

    more

      많이본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