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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N현장+] 골판지업계 가격 담합…벼랑 끝 내몰린 영세업체

박수연 기자

[머니투데이방송 MTN 박수연 기자] "대형업체들이 박스원재료인 원지와 원단 가격을 최대 30%나 한꺼번에 올려버리니 저희로선 사실상 인건비도 나오지 않는거죠. 29년동안 작지만 꾸준하게 골판지박스 사업을 해왔는데, 경영 자체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A 박스포장업체 대표)

아세아제지, 신대양제지 등 대형 원지업체 12곳은 6년간 9차례에 걸쳐 가격 인상을 담합해 올해 초 공정위로부터 과징금 처분을 받았습니다. 이후 5대 메이저 업체 계열사를 포함한 약 13곳의 원지업체들은 지난 7월 거의 동시에 20%에서 최대 40%까지 골판지 원지 가격을 올렸습니다. 원지업계 측은 지난 여름 발생한 신대양제지의 화재 사건에 따른 수급 불균형으로 인한 가격인상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 원지업계가 현재 만성 공급과잉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또 원자재인 폐지와 펄프 가격이 그동안 하락 혹은 보합세이었던 점을 보면 사실상 과징금을 벌충하기 위한 '꼼수인상'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약 2000개에 달하는 영세한 골판지 박스 업계의 경영난은 가중되고 있습니다.

골판지업계의 가격 인상 담합은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닌 수년간 이어져온 업계의 뿌리깊은 관행입니다. 2000년, 2004년, 그리고 올해까지 2000년대에 들어서만 세차례 당국에 적발됐습니다. 이들은 골판지 원지 가격 하락을 막기 위해 조업을 단축하고 각 대표 이사 사장단이 모여 구체적인 가격 인상 폭과 시기까지 확정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골판지 원지 시장은 대표적인 과점 시장 체제로 이뤄져 있습니다. 2조원대의 골판지 원지시장에서 메이저 5개사를 포함해 최근 담합 과징금을 받은 12개사의 점유율은 80%에 달합니다.

특히 2006년 인수합병(M&A) 붐을 통해 자본력을 갖춘 대형사 위주로 업계가 재편되면서 소수업체의 시장 독식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의 기업 내에서 폐지 구입부터 원지 생산, 상자 공급까지 일괄체제를 통한 수직 계열화 구조를 만들어 카르텔을 형성해왔습니다. 이를 통해 가격을 담합해 경쟁없이 시장을 지배하는 관행이 가능해졌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이같은 불법행위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불과해 사실상 효력이 미미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공정위는 수년간의 조사를 통해 올해 12개 제지업체에 9500억 원 규모의 과징금을 담은 심사보고서를 보냈지만 실제 부과된 과징금은 1184억 원에 그쳤습니다. 이는 지난 5년간 이들의 매출액의 2%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관행처럼 악용되는 '리니언시(자진신고자 감면)' 제도도 담합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동일제지의 경우 리니언시를 통해 163억원의 과징금을 전액 감면받기도 했습니다. 쥐꼬리 과징금을 받고 담합을 통해 막대한 이득을 취하는 업계의 불법행위가 만연한 이유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각지대로 밀려난 중소업체들의 입지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습니다. 한국골판지포장공업협동조합에 따르면 원지를 통해 골판지를 생산하는 판지사는 1990년대 160여 곳에 달했지만 지난해 기준 109곳으로 줄었습니다. 최재한 한국박스산업협동조합 전무이사는 "당장 내년 입찰 시기를 앞두고 대책이 서지 않는다"며 "영세업체들의 시장 참여율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그마저도 시장을 뺏기는 상황"이라고 우려했습니다.

최소한의 업계 자정능력이 이뤄지지 않는 이상 가격 인상 담합이 사라지기는 어려워보입니다. 문제는 골판지 원지 가격이 곧 소비재 인상으로 이어지고 소비자 피해까지 연결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뿌리깊은 불법행위를 근절하기 위한 공정위의 영업정지, 검찰 고발 등 보다 강력한 제재가 필요해보입니다.



[머니투데이방송 MTN = 박수연 기자 (tout@m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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