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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N현장+]한화투자증권 임직원들은 주진형의 '사이다'가 덜 시원했다

최종근 기자

<사진=뉴스1>



[머니투데이방송 MTN 최종근 기자] "우리나라 재벌이 다 그렇지만 조직폭력배 운영 방식과 같아서 누구라도 거역하면 확실히 응징한다는 논리가 있다." "증권사들까지 다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옹호하는 보고서를 쓰는 걸 보고 한국인으로서 창피했다."

지난 6일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1차 청문회에서 나온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사장의 발언이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바로 뒤에 앉아선지 주 전 사장의 메시지는 더욱 뚜렷하게 들렸다.

한화투자증권은 주 전 사장이 근무했던 지난해 6~7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진행과 관련해 국내 증권사 중 유일하게 부정적인 보고서를 발표해 화제를 모았다. 주 전 사장은 지난 6일 청문회에서 "삼성과 한화로부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부정적인 보고서를 쓰지 말라는 압력을 받았다"면서 국내 대기업들의 문제점을 조폭에 비유해 꼬집기도 했다.

증인으로 나선 대기업 총수들은 청문회에서 '모른다' 또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라는 말만 되풀이 했고, 이런 와중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주 전 사장의 거침없는 발언은 시원했다. 다수의 국민들이 박수를 보냈다. 인터넷에선 이른바 '사이다'와 같은 속 시원한 이야기였다는 호평이 꼬리를 물었고, 주 전 사장은 오랜기간 주요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다.

이번 주 주 전 사장의 청문회 출석은 한화투자증권 내부에선 더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왜 아니겠는가. 2013년부터 올해 초 까지 3년 가까이 한화투자증권을 이끌었던 최고경영자(CEO)였으니.

그런데 주 전 사장을 모시던 적지않은 임직원들은 청문회를 보면서, 또는 보고 나서 '어디론가 숨고 싶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사이다라고 외치는 시민들 속에서 내부자였던 임직원들은 왜 마냥 환호할 수 없었던 것일까.

주 전 사장은 취임 직후 리서치센터의 애널리스트가 '매도' 보고서를 적극적으로 내도록 하겠다고 천명했다. 투자자의 기본 지침서라고 할 수 있는 보고서가 '매수' 일색이고 이런 관행이 고객과 투자자 보호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소신이었다. 그동안 매도 보고서에 대한 문제 의식은 있었지만 사장이 앞장서 매도 보고서를 발간하겠다고 나선 증권사는 없었다.

사내에 기자 출신을 영입해 편집국을 설치한 것 역시 신선하게 받아들여졌다. 증권사에서는 애널리스트 보고서와 투자설명서 등 매일 방대한 문서를 쏟아내지만 과도한 전문용어 사용 등으로 고객들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울 뿐 만 아니라 근거가 미약하거나 어법에 맞지 않은 글이 너무 많다는 점을 지적해왔다.

또한, 주식 매매회전율이 높아질수록 수익률이 하락한다는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내고, 임직원 과당매매 금지를 선포하거나 고위험등급 주식 선정 등 여러 신선한 실험을 펼쳤다.

하지만 이런 실험적인 선언과 정책의 변화 말고 주 전 사장이 이룬 경영적 성과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지 않다. 물론 3년이라는 재직 기간을 감안해야한다는 시각이 있지만 그가 떠난 한화투자증권은 지금 이를 배려할 여유가 없을 정도로 체력이 떨어진 상태다.

주 전 사장이 취임한 직후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조직을 '슬림화' 하는 구조조정이었다. 직원을 줄여 인건비 부담부터 가볍게 하겠다는 취지였다. 그결과 2013년 6월말 1,451명(반기보고서 기준)이던 정규직 직원수는 지난해말 917명으로 줄었다. 530여명이 회사를 떠난 것이다.

최근 증권사들의 돌발 악재로 떠오른 주가연계증권, ELS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한화투자증권은 주 전 사장 재직 시절인 지난해 상반기부터 ELS 발행을 급속도로 늘렸다. 특히 위험성은 크지만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작년 자체헤지 ELS 발행 잔고를 1조9,000억원까지 확대했다. 너무 위험한 영업 드라이브가 아니냐는 우려가 컸다. 운명처럼 한화투자증권의 ELS 베팅이 이뤄진 직후 대부분의 기초자산인 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HSCEI·홍콩H지수)가 급락하면서 ELS 자체헤지 부문에서 큰 손실을 기록했다.

대규모 구조조정은 온데간데 없고 결국 한화투자증권은 올해 1분기 영업손실 912억원, 당기순손실 659억원을 기록해 적자를 냈다. 이 여파는 2분기에도 이어져 당시 영업손실 1,001억원, 당기순손실은 738억원을 기록했다. 다른 증권사들의 실적이 개선될 때 쯤 한화투자증권은 '어닝쇼크'를 기록한 것이다.

이 때문에 한국신용평가는 최근 한화투자증권의 신용등급을 기존 A+에서 A로 하향 조정했다. 한신평은 "과거 구조조정 과정에서 지점 수가 축소되며 위탁매매 및 펀드판매 등 관련 부문의 시장점유율이 하락하고 있다"면서 "3분기 누적 영업손실은 1,856억원으로 지난해 하반기 이후 ELS 헤지운용 부문의 손실 영향이 계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재무구조가 급속히 악화되면서 한화투자증권은 올해 여의도 사옥 일부를 한화손해보험에 매각했고, 2,000억원 규모의 액면가(5,000원) 미달 유상증자를 단행해 주주들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이 회사의 주가는 지난 8일 기준 2,025원으로 업계 최저다.

한화투자증권의 한 직원은 "주 전 사장은 고위험 상품인 ELS 발행을 급속히 늘리도록 해서 회사 실적을 엉망으로 만든 책임이 있다"며 "그 부담은 모두 남아있는 직원들이 떠안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새로운 정책들이 도입되는 과정에서는 직원들의 반발이 이어졌었다. 내부 직원들과 충분한 논의가 없었다며 불만이 제기된 것이다. 한 예로 지난해 '서비스 선택제' 도입을 앞두고 한화투자증권 지점장 50여명은 이 제도를 유보해 달라며 연판장을 돌리기도 했다.

또 다른 한화투자증권 관계자는 "재직 당시에도 말만 들어보면 이상적인 것처럼 들리지만 정작 회사 내부 직원들과는 소통 없이 일방적인 지시로 업무가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소회를 밝혔다.

소수지만 주 전 사장에게 좀더 많은 시간이 주어졌다면, 외부의 이런저런 간섭이 없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금융투자업계에 꼭 필요한 변화가 싹을 틔우다 말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시 시계를 최순실 청문회와 그 이후로 돌려보면, 한화투자증권의 임직원들은 주 전 사장의 발언을 분명히 사이다라고 부르지 않았다. 막대한 적자의 고리를 끊기 위해 최소의 비용으로 이익을 내기 위해 거친 현실속에서 발버둥칠 뿐이다. 그룹의 상층부를 '조폭'이라고 표현한 주 전 사장 역시 자신이 떠난 뒤 남겨진 회사와 구성원들의 이런 현실을 외면해선 안될 것이다.




[머니투데이방송 MTN = 최종근 기자 (cjk@m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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