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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N현장+] 정유년 국민연금 지배구조 대수술 마지막 기회

국민연금 관리와 운영을 복지부 전담하는 문제점 노출
이충우 기자

[머니투데이방송 MTN 이충우 기자]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 특별수사본부 관계자들이 지난해 11월 23일 오후 서울 강남구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에서 압수수색을 마친 뒤 압수품을 옮기고 있다. 검찰은 이날 삼성물산 합병 당시 국민연금이 삼성 로비에 의해 찬성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기금운용본부를 압수수색했다. /출처 : 뉴스1>



#1
"앞으로 삼성을 비롯해 대기업 지배구조 개편이 이어질 것인데 (기업 경영권 승계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는) 국민연금 의결권 전문위원회에 권한을 주려고 하겠나"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기 전부터 복지부(정부)와 대기업간 유착관계 의혹을 강하게 제기하며 의결권 전문위원회 의원이 기자에게 한 말입니다.


의결권 전문위는 재계와 노동계, 시민단체 인사로 구성된 국민연금 자문기구입니다. 현행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지침에는 자체적으로 판단하기 곤란한 안건은 의결권 전문위에 위임하도록 돼있습니다. 일례로 재작년 6월 SK와 SK C&C 합병건은 의결권 전문위가 위임받았는데 합병비율이 부적절하다는 이유로 반대했습니다.


그런데 삼성물산 합병건으로 재작년 7월 의결권전문위원회와 국민연금 투자위원회가 충돌했습니다. 투자위원회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결정을 내린 뒤입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에 밀접한 사안입니다. 당시 미 헤지펀드 엘리엇은 지분을 보유한 삼성물산에는 삼성 측이 제시한 합병비율이 불리하다며 반대해 표대결이 있었고 삼성물산 단일 최대주주국민연금이 주총 캐스팅보트 역할을 했습니다.


의결권전문위원회는 이 같은 중대한 안건을 의결권전문위에 넘기지 않고 찬성 결정을 내리는 것이 맞는 것인지 절차를 따져보겠다며 긴급 회의까지 소집했습니다.


긴급회의에 당시 국민연금 최고투자책임자인 홍완선 전 기금운용본부장을 불러 삼성합병과 닮은 꼴인 SK합병안은 국민연금 의결권전문위원회에 위임하고 삼성합병은 자체 결정한 이유를 따져물었습니다.


하지만 회의결과 기금운용본부가 판단하기 곤란한 안건은 전문위에서 결정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지만 역으로 투자위가 안건을 전문위에 넘기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문제삼을 수 있는 규정은 없다며 한 발 물러섰습니다.


대신 교통정리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선 공감하고 전문위와 국민연금 투자위의 권한조정을 명확히 하기 위한 안건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전문위가 이 안건을 확정한 것은 지난해 12월입니다. 이후 주무부처인 복지부 간사를 통해 국민연금 최고 의결기구인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에 상정해달라고 전달했지만 감감무소식입니다. 전문위원들의 불만은 극에 달하고 있는데요. 삼성 합병건을 계기로 문제제기를 시작한 것부터 따지면 1년이 넘도록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
진정 복지부는 대기업과의 이해관계 때문에 안건상정을 미루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요즘 의혹처럼 대기업쪽 말고도 정권의 눈치를 보고 있는 걸까요.


#2
"외부 인사들로 구성된 국민연금 의결권전문위에 권한을 더 줬다가 문제가 생기면 누가 책임을 집니까. 의결권전문위원들은 임기가 2~3년이면 교체되는 분들인 점도 고려해야 합니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후 복지부 관계자가 기자에게 한 말입니다. 삼성이 최순실 씨 모녀를 지원한 대가로 국민연금을 통해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 도움을 받았다는 의혹이 불거졌습니다. 이렇다보니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체계를 재점검해야한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개선안이 여러가지 있겠지만 우선 의결권전문위원회가 지난해 의결권행사 개정 지침안을 올려달라고 요청한 만큼 이 부분에 관심이 먼저 쏠렸습니다. 그동안 복지부는 해외 사례를 더 조사해야한다는 이유로 논의를 미뤄왔습니다.


의결권 전문위원회는 복지부 소속 위원이 간사를 맡고 있는데 좀처럼 의결권전문위원회 회의도 소집 않아왔습니다. 전문위 소집이든 기금위에 권한조정 안건을 상정하는 것이든 더이상 미룰 핑계가 없는 상황에서 '책임론'이 나온 것이죠.


복지부 주장은 의결권전문위가 요청한 것이 과하다는 것입니다. 의결권 전문위 요청사안 중 핵심은 의결권전문위가 특정 주총안건을 중대안건이라고 판단해서 위임을 요구하면 투자위가 찬반 결정을 전문위에 넘겨야한다는 것인데 권한과 책임의 불일치가 생긴다는 설명입니다.

국민연금 CIO 임기는 의결권 전문위원과 마찬가지로 적게는 2년에서 길게는 3년입니다. 그런데 이번 논쟁에서 의결권전문위와 대치되는 국민연금 투자위원회에 들어가는 실장급 인사들의 경우 회전문 인사라고 불릴 만큼 CIO나 의결권 전문위원들보다는 재직기간이 긴 편입니다. 이런 근거를 내세워 국민연금 내부에 있는 투자위원회 위원들은 자신들이 의결권전문위원들보다 책임있는 투자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3
이후 복지부가 주장한 책임론은 점차 현실로 다가 오고 있습니다. 국민연금 투자위가 의결권을 행사한 과정에 문제가 있어 법적책임을 질 수도 있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특검 수사 과정에서 쏟아지는 새로운 의혹들은 보면 문제가 심각해보입니다.


우선 당시 책임자인 홍완선 전 기금운용본부장은 기금 손실을 무릅쓰고 삼성 합병에 찬성했다는 업무상 배임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삼성물산 주가하락이라는 결과만 두고 배임죄를 적용하는 것은 무리다', '삼성 합병이 무산됐으면 주가가 더 떨어져 기금에 더 큰 손실이 왔을 수 있다'면서 사법처리에 따른 국민연금의 투자위축을 우려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애초에 주가 예측을 따지기 애매한 상황에서 삼성 측이 제시한 합병비율마저 불리하다고 판단했으면 전문위에 의견을 물었어야 한다는 반론도 거셉니다.


국민연금은 자체적으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적정 합병비율이 1대 0.46으로 삼성 측이 제시한 합병비율(1 대 0.35)가 불리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렇게 판단하고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의 면담 후 합병비율의 불리함을 뒤집을 수 있는 합병 시너지가 예상된다며 찬성 결정을 내린 바 있습니다.


'삼성 합병은 원칙대로 했다'는 주장과 '문제가 있었다'는 반론이 맞서는 가운데 결국 홍완선 전 본부장이 이미 삼성 합병과정에서 복지부의 외압이 있었다는 점을 털어놓았고 문형표 국민연금 이사장도 보건복지부 장관 재직시절 외압을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문 이사장은 직권남용 혐의로구속되고 새로운 의혹들이 나오면서 '삼성 합병은 원칙대로 했다'는 주장은 힘을 잃어가는 모습입니다. 문 이사장에 대해서는 의결권전문위로 삼성 합병 안건을 넘겼을 때 안건이 부결되는지 여부를 따져보기 위해 의결권 전문위원들의 성향까지 미리 파악했다는 치밀함을 보였다는 의혹도 나왔습니다.


재판결과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현재까지 기정사실화된 의결권 행사체계 문제만봐도 개선이 시급합니다. 물론 의결권 전문위가 요구한대로 권한을 위임하는 것이 능사는 아닙니다. 전문위에는 실제 기금을 운용하는 국민연금 임직원들이 포함이 안돼있고 전문성을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그럼에도 지난해 삼성합병건에서 불거진 의결권 행사체계 개편안을 일찌감치 논의의 장에 올렸어야 하는데 의도적으로 미뤄왔다는 의혹이 최순실 게이트 수사결과와 맞물려 더 커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의결권 행사개편 논의는 국민연금 최고의결기구인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이뤄집니다. 최근 기관투자가 주총거수기 논란을 해소하기 위한 취지로 의결권행동강령, 스튜어드십코드도 최종안이 확정됐습니다.

여러 대안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복지부는 특검 수사를 이유로 이를 논의할 수 있는 기금운용위원회 개최를 연말에서 내년초로 재차 미뤘습니다. 삼성 합병건을 계기로 의결권 행사체계 개편 논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이 지난해 7월입니다. 앞서 복지부는 의결권전문위 요청사안을 전달받고 1년 가까이 묵힌 전례가 있습니다. 이번에도 재판결과까지 지켜봐야한다며 차일피일 미뤄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는 대목입니다.

요즘 누리꾼 댓글로 본 국민연금에 대한 여론은 심상치 않습니다. '그동안 낸 돈을 돌려달라', '앞으로 내기 싫다' 등 국민연금 제도 전반으로 불신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런 불신의 계기로 작용한 이번 사태의 근본원인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투자결정을 투명하게 하고 선진화시켜는 것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최고 의결기구 회의를 올해 중순으로 한차례 연기했으니 이로 인해 생긴 여유기간동안 어떤 실효성있는 대안들이 논의되고 있는지 관심있게 지켜봐야겠습니다.

국민연금 기금 규모는 500조원을 넘어 해마다 불어나고 있습니다. 여러 이론이 있지만 2030년에는 2,000조원에 육박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이렇게 막대한 국민들의 노후 자금을 제대로(전문성, 투명성, 안정성, 사회성을 두루 갖춰) 운용하고 관리하도록 인적 물적 시스템을 정비하는 일은 당장의 대통령 탄핵만큼 훨씬 중요한 일이 아닐까요.



[머니투데이방송 MTN = 이충우 기자 (2think@m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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