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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T거버넌스 기획] 끊임없는 조직 개편…날개없는 경쟁력 추락

강진규 기자

이명박 정부 들어 정보통신부가 해체되고 방송통신위원회(위)와 지식경제부(가운데)가 출범했다. 이어 박근혜 정부에서 ICT와 과학기술을 담당하는 미래창조과학부(아래)가 신설됐다.
(이명박 정부 들어 정보통신부가 해체되고 방송통신위원회(위)와 지식경제부(가운데)가 출범했다. 이어 박근혜 정부에서 ICT와 과학기술을 담당하는 미래창조과학부(아래)가 신설됐다.)


[테크M = 강진규 기자] 한국의 정보통신기술(ICT)과 과학기술 거버넌스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급변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정보통신부에 ICT 기능이 집중됐다가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정보통신부가 해체돼 관련 기능이 분산됐다. 또 박근혜 정부에서는 미래창조과학부라는 이름으로 ICT와 과학기술 업무가 통합됐다.

이처럼 계속되는 거버넌스 변화로 ICT와 과학기술 정책은 연속성 측면에서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잦은 변화는 미국, 일본, 중국, 독일 등의 선진국은 물론 신흥 강국들이 ICT 경쟁력을 강화할 때 한국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의 하나로 작용했다.

계속 낮아지는 한국의 경쟁력

한국은 ICT 및 과학기술 경쟁력 관련 조사에서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오히려 뒷걸음질 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과 유럽경영대학원(INSEAD)은 매년 개인, 정부, 기업의 정보기술 발전도와 경쟁력을 종합 측정한 네트워크 준비지수(Network Readiness Index)를 발표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네트워크 준비지수는 퇴보하고 있다. 2016년 조사에서 한국은 2015년(12위)에서 한 계단 떨어진 13위를 기록했다.

한국은 같은 조사에서 2008년에 11위, 2011년 10위를 기록했었다. 2016년 조사에서 1위는 싱가포르, 2위는 핀란드, 3위는 스웨덴이었고 미국이 5위, 영국이 8위, 일본이 10위였다. 다른 나라들이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는 사이 한국은 후진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의 통계 브리프 2016년 11호에 따르면, 한국은 스위스 경영대학원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의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지난해 29위를 차지했다. 2012년 22위에서 7단계나 하락한 수치다.



특히 과학자들이 느끼는 한국의 현 상황이 심각한 수준이다. 한국의 연구자, 과학자들이 국가에 매력을 느끼는 정도는 IMD 조사에서 2012년 23위에서 2016년 34위로 급락했다. 또 과학기술연구 관련 법률이 혁신을 지원하는 정도는 같은 기간 31위에서 34위로, 지식재산권 보호 정도는 31위에서 38위로 하락했다. 산학 지식전달 정도 역시 25위에서 34위로 낮아졌고 기업의 혁신역량도 13위에서 33위로 추락했다.

기술 인프라 평가의 세부 조사 결과 역시 마찬가지였다. 기업의 요구에 대한 통신기술의 충족도에서 한국은 2012년 4위에서 2016년 12위로 낮아졌다. 또 기술규제의 기업발전 및 혁신 지원 정도는 37위에서 43위로, 사이버보안이 기업에서 적절히 다뤄지는 정도는 23위에서 45위로 하락했다. 정보기술 사용 용이성은 35위에서 33위로 높아졌지만 크게 개선된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거버넌스, 정책 연속성 부재

이같이 한국의 ICT, 과학기술 분야가 뒷걸음질 하게 된 것은 정책의 연속성 부재와 철학 부재, 그로 인한 잦은 거버넌스 변화 등으로 꼽히고 있다.

반면, 미국의 연방통신위원회(FCC)는 1934년 설립돼 유지되고 있다. 내부 조직과 일부 업무가 조정, 개편되기도 했지만, 전문가들에 따르면 10여 년 이상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 역시 2001년 총무성이 IT 업무를 담당하고 문부과학기술성이 과학기술을 담당하도록 한 후 지금까지 그대로 거버넌스가 운영 중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보통신 업무는 1948년 설립된 체신부가 담당했으며, 과학기술 분야는 1967년 설립된 과학기술처가 맡았다.

1994년 김영삼 정부는 체신부를 정보통신부로 확대 개편하고 IT 업무를 전담하도록 했다. 김대중 정부는 전 정부의 정보통신부 체제를 승계하고 ICT 발전에 노력해 2000년대 초반 ICT 발전기를 열었다.

김대중 정부는 또 1998년 과학기술처를 과학기술부로 승격했다. 노무현 정부는 정보통신부와 과학기술부 체계를 그대로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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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연방통신위원회(FCC)는 1934년 설립돼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2008년 2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상황이 변했다. 이명박 정부는 정보통신부를 해체하고 방송위원회를 개편해 방송통신위원회를 신설했다.

정보통신부의 기능은 방송통신위원회, 지식경제부, 행정안전부, 문화체육관광부 등으로 분산됐다. 방송통신 관련 정책과 규제 등은 방송통신위원회가 담당하고 IT 산업 진흥과 연구개발은 지식경제부가, 전자정부 업무는 행정안전부가, 콘텐츠 관련 사안은 문화체육관광부로 이관됐다.

과학기술부 역시 교육인적자원부와 통합돼 교육과학기술부가 신설되면서 사실상 폐지됐다.

이명박 정부는 당시 ICT를 여러 관련 기관이 담당하도록 한 것이 각 분야에서 시너지를 내도록 하기 위한 것이며 과학기술과 교육도 시너지를 위해 조직을 개편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보다는 정치적 문제와 ICT에 대한 인식과 철학 부재가 컸다는 지적이다. 정보통신부가 김영삼 정부에서 만들어졌음에도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주목받으면서 미운털이 박혔다는 것이다. 건설회사 출신으로 전통산업을 중시하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의중도 반영됐다는 지적이 많다.

한 산업계 인사는 “VIP 행사에 참석했는데 이명박 전 대통령과 참모들이 IT가 발전하면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냐고 말하는 것을 듣고 놀랐다”며 “IT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어서 관계자들이 의견을 피력하거나 건의하기 어려운 분위기였다”고 회고했다.

이명박 정부 당시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 통신 정책에 중점을 두고 업무를 하다가 IT 전방위로 업무를 확대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지식경제부, 행정안전부 등과 여러 방면에서 갈등이 표출됐다. 중복된 정책을 추진하다가 부처들이 갈등을 겪는 상황이 나타났고 문제가 발생하면 자신들의 소관이 아니라고 발뺌했다.

지식경제부도 ICT 융합을 강조했지만 전체적으로는 녹색성장으로 대표하는 산업 부분에 더 주력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잘못된 인식으로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2009년 TV에 출연해 4대강 사업에 대해 설명하면서 첨단 로봇물고기가 수질을 감시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로봇물고기 개발이 추진됐고 57억 원의 예산이 투입됐지만 로봇물고기는 실제로 운영되지 못했다. 또 이 전 대통령은 일본 닌텐도 DS 게임기 인기와 관련해 “한국에는 닌텐도 같은 게임기를 개발할 수 없느냐”고 말해 ‘명텐도’ 논란을 일으키고 다시 게임 산업에 대한 이해 부족논란이 일었다.

과학기술 분야 역시 교육이라는 민감한 영역과 한 부처에 묶여 있어 장관이 과학기술 업무에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고 과학기술이 주목받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2년 대선 과정에서 이명박 정부의 이런 문제점을 지적하며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박근혜 정부는 2013년 3월 정부 조직을 개편해 각 부처에 분산된 ICT 업무를 모으고 교육과학기술부의 과학기술 업무를 통합한 미래창조과학부를 출범시켰다. 방통위와 행안부의 일부 업무와 지식경제부의 ICT 진흥 업무가 미래부로 넘어갔다. 또 과학기술 업무도 미래부로 통합됐다.

미래부 출범 당시 ICT 및 과학기술계에서는 정보통신부와 과학기술부가 다시 부활한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기대에 부합하지 못했다. 실패 사례의 하나로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이 꼽힌다.

휴대폰 보조금을 규제하기 위해 의원들이 발의한 단통법은 2014년 10월 시행됐다. 의원 입법이기는 하지만 미래부가 의뢰로 만들어졌다.

정부와 여당은 이 법이 과잉 경쟁을 방지하고 보조금 차별을 금지하기 위한 취지라고 설명했지만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보조금이 줄어 더 비싸게 휴대폰을 바꿔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고 시장이 얼어붙었다. 미래부, 방통위가 현실과 괴리된 정책을 펼쳤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아직도 높다.

말과 행동이 다른 모습도 보였다. 한편에서는 게임, 인터넷 산업 활성화와 창의적인 아이디어 구현을 주장하면서도 게임 규제 정책을 펴고 사이버 검열 논란을 일으켰다.

사이버보안에 대한 강조는 어느 정부에서 보다 강했고 사이버안보특보를 임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소리 소문 없이 사이버안보특보 자리가 폐지되고 한국수력원자력 해킹 사건, 국방부 해킹 사건 등 보안 사고가 연이어 발생해 체면을 구겼다.

여기에 과학기술 분야에서는 미래부에서 상대적으로 ICT 분야가 주목을 받으면서 소외감을 지적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미래부를 통한 ICT와 과학기술의 시너지를 강조했지만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대기업들을 종용해 사업을 진행한 것에 대한 비판도 있다. 박근혜 정부는 창업기업 육성과 중소기업 혁신, 지역특화산업 강화 등을 위해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만들었다. 2014년 9월 이후 전국 17개 지역에 18개 센터가 운영되고 있다.

센터의 취지는 공감을 받았지만 정부가 주도해 대기업들에게 각 센터를 담당하도록 하면서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다. 기업들이 혁신을 하고 창업을 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데 대기업을 동원해 보여주기 식으로 정책을 펼쳤다는 것.

이에 전문가들은 과거를 반성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거버넌스를 구성하고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난 2월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ICT·방송통신 분야 정부조직 개편방향 정책 토론회’에서 오병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바뀔 때마다 무조건 ICT 거버넌스를 바꾸는데, 헌법에 명시해 함부로 바꾸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며 “10년 간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반성하고 다시 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명호 공공연구노조 과학기술기술특별위원회 위원장도 “ICT 거버넌스와 관련해 결국 정치적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각 영역별로 전문화된 체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테크M = 강진규 기자(viper@techm.kr)]

<본 기사는 테크M 제47호(2017년 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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