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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칼럼] 태초에 '투기'가 있었다.

글로벌인베스트 김동희 대표 증시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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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미국의 거상이었던 케네(R.kene)는 ‘인생은 투기이고, 투기는 인간과 함께 탄생했다’라고 했다. 그만큼 인간의 투기적인 성향은 본능에 가까운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아마도 이러한 투기적인 성향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이 주식시장인 것 같다.

그러나 사실 투기와 투자의 경계는 모호할 때가 많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어니스트 카셀은 이러한 모호성을 비꼬아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다. “내가 어렸을 때 사람들은 나를 도박꾼이라 불렀고, 판돈이 커지자 투기꾼이라 했다. 그리고 지금 나를 은행가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같은 일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자들이 ‘투기의 원조’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1630년대에 있었던 네델란드의 ‘튤립투기’사건이다.

1630년대 네델란드는 투기에 딱좋은 환경이었다. 초호황이 이어지면서 동인도회사의 주가는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고, 부동산 가격은 폭등했다. 넘치는 돈을 가지고 새로운 투자의 대상을 찾던 사람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튤립이었다. 네델란드인들은 유난히 꽃을 좋아하고 특히 이중에서도 튤립을 최고로 쳤는데 그것이 투기의 대상이 된 것이다.

일단 튤립이 투기의 대상이 되자 천정부지로 가격이 뛰기 시작했다. 당시 네델란드 노동자의 1년 임금이 평균 300길더 정도였는데 20길더에 거래되던 평범한 튤립 1뿌리 값이 2500길더 이상 치솟아 오른다. 튤립 한 뿌리 값은 호화주택 한채와 맞먹었고 50톤의 호밀을 살 수 있었다고 하니 당시의 광기 어린 열풍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겠다.

중요한 것은 당시 동인도회사와 같은 블루칩 주식들이 주로 부유층의 투자 대상이었다면 튤립투기는 서민층까지 광범위하게 침투했다는 것이다. 직공, 구두장수, 농부에서 하인들에 이르기까지 모두다 튤립 매매의 광기에 취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적정가격을 알려하지 않는 광기어린 투기는 버블을 만들고 돼지의 방광처럼 부풀어 오른 버블은 작은 바늘 하나에 뻥하고 터져버리게 된다.

1637년 2월 3일 마침내 튤립투기라는 역사적 버블은 터지게 된다. 갑자기 매수세는 실종되고 가격은 급락했으며 더 이상 아무도 튤립을 사고자 하지 않았다. 이러한 폭락은 무려 1년간 지속됐으며 네델란드 정부가 매매가격의 3.5%만 지급하고 채권, 채무를 정리하게 하는 극약처방을 내린 이후에야 시장은 진정 될 수 있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집과 가재도구를 저당 잡히고 일확천금을 노렸던 서민들이 대부분 회복할 수 없는 손실을 입고 비극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한 유명한 화가는 튤립 한뿌리를 구입했다가 가격이 폭락하는 바람에 남은 20년의 여생을 비참하게 살다 마감해야 했다. 폭락으로 이어지지 않는 호황은 없으며 그 결말은 항상 끝자락을 잡았던 투자자들의 몰락이었다.

최근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같은 가상화폐의 매매가 가희 열풍적이다. 몇 배가 올랐느니, 미래 금을 대신할 것이라느니, 채굴을 위한 컴퓨터를 구매하는데 반년이 걸린다느니 하는 뉴스들이 연일 기사거리로 나온다. 그러나 이것이 정말 제2의 황금이 될 것 인지, 아니면 21세기의 튤립투기로 끝날 것인지는 지켜봐야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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