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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취재]1인당 1억원짜리 로또 기아차 통상임금…관건은 '신의칙'

권순우 기자



[머니투데이방송 MTN 권순우 기자] 기업은 매년 근로자와 임금협상을 맺는다. 1988년 노동부 지침에 따라 대부분 기업들은 매달 주는 임금을 통상임금으로 간주하고 추가 근로에 대해 150%의 수당을 지급해 왔다. 월급이 100만원이라면 휴일 수당은 150만원이 된다. 그러던 어느날 법원은 추가 근로 수당의 기준이 되는 통상임금에 정기 상여금을 포함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장기상여금이 100만원이라고 하면 휴일 수당은 200만원의 150%, 300만원이 됐다. 또 근로자는 3년치를 소급해서 받을 수 있게 됐다. 법원의 뒤늦은 판결로 근로자들은 연이어 추가 임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그렇게 38조원 규모의 통상임금 소송은 막을 올렸다.

- 기아차 정기상여금, 통상임금 인정 가능성 높아

이중 가장 규모가 큰 기아차 통상임금 소송에 대한 판결이 17일 내려진다. 서울중앙지법은 3조원 규모의 기아차 통상임금 소송에 대한 1심 판결을 내린다. 기아차 노조는 2011년과 2014년 추가임금 청구 소송을 진행했다. 추가 임금 청구 소송은 최대 3년치가 소급 적용 된다. 2008년부터 2010년까지, 2011년부터 2013년까지의 임금에 대한 소송이 진행중인 것이다. 만약 이번 소송에서 근로자측이 승소할 경우 2014년과 15년 16년에 대한 추가 임금 청구도 진행될 전망이다.

기아차의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으로 인정 받을 가능성이 높다.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정기적, 일률적, 고정적으로 지급돼야 한다는 통상임금의 기준을 제시했다. 이후 현대차 노조가 제기한 소송에서 법원은 현대차 정기상여금에 고정성이 없다는 이유로 사측 승소 판결을 했다. 현대차 사규에는 15일 미만 근로자는 상여금을 받을 수 없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근무 일수에 따라 지급 여부가 달라지는 임금은 고정성을 갖춘 통상임금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현대차 사규와 거의 비슷한 기아차 사규에는 이같은 규정이 없다. 기아차의 정기 상여금이 통상임금으로 인정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 법조계 안팎의 평가다.

- 서로 믿고 계약한다면 지켜야 한다. ‘신의 성실의 원칙’

기아차는 ‘신의성실의 원칙’을 적용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신의성실의 원칙, 신의칙은 양 당사자가 권리와 의무를 행사할 때 신의와 성실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는 대원칙이다. 임금 계약의 당사자가 서로 믿고 계약을 맺었다면 이행돼야 한다는 의미다.

만약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는 것을 협상 당시 알았다면 기본급에 대한 인상 폭은 낮아졌을 것이다. 다른 모든 임금 계약은 유지한채 뒤늦게 정기상여금만 통상임금에 반영하는 것은 사회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 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이다.

대법원이 통상임금에 신의칙을 적용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근로기준법은 양 당사자간 합의 여부와 상관없이 적용되는 ‘강행 규정’이다. 설사 노사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겠다는 합의를 했더라도 인정되지 않는다. 대법원이 정기상여금에 대해 ‘신의칙’을 적용한 것은 그만큼 통상임금 소송이 비상식적이라는 것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신의칙 적용 원칙을 정했다. 1)정기상여금의 경우, 2)노사가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 것을 토대로 임금을 정했는데 근로자가 추가 임금을 청구할 경우, 3)그로 인해 기업에게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한다면 추가 임금 청구는 허용되지 않는다.

기아차 사건의 경우 신의칙에 해당할 수 있는 2가지 조건은 충분히 갖췄다. 정기상여금이고,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임금 계약을 진행했다. 기아차는 고정적으로 특근과 잔업을 하고 얼마나 할지도 협상을 한다. 추가 근무를 통한 수당 총액도 협상의 대상이다. 기아차의 경우 월평균 20~50시간의 가량 초과 근무가 이뤄진다. 초과근무가 많은 만큼 그 기준이 되는 통상 임금에 대한 인식은 당연히 공유가 됐고, 공유된 인식에 정기상여금은 없었다.

또 정기상여금은 초과 근로 수당에 포함되지 않는 만큼 기본급의 750%나 지급을 했다. 만약 다른 임금 계약이 유지된 상태에서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할 경우 실질 임금 인상률은 20%가 넘는다. 과거 교섭 당시 인상률 3~4%에 비해 5배다. 기아차근로자의 1인당 연 평균 급여는 9600만원으로 중소기업 평균 연봉 3400만원의 3배나 된다. 통상임금 소송에서 승소할 경우 1인당 약 1억 1천만원의 추가 임금을 받을 수 있다. 로또소송, 대박소송으로 인식되는 이유다.

2013년 신의칙 적용의 계기가 된 갑을오토텍 통상임금 소송 당시 상여금은 600%였다. 통상임금을 상여금에 포함시킬 경우 실질임금 상승률은 2배 수준이었다. 또 추가 임금을 모두 지급할 경우 전년 당기순익의 99.8%를 추가로 지급함으로써 경영상의 중대한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상황만 보면 기아차는 더 안좋은 상황이다.

- 통상임금 소송 패소시 기아차 경쟁력 약화 우려

기아차의 올해 경영상황은 순탄치 않다. 지난해 기아차의 영업이익은 2조 7천억원으로 추가로 청구된 3조원의 임금보다 적다. 올해는 더욱 상황이 악화돼 상반기 영업이익은 7870억원로 44%나 급감했고 영업이익률은 2012년 7.5%에서 3% 수준까지 떨어졌다. 패소할 경우 즉각 적자 전환이 불가피하다.

기아차는 “사드 보복이후 차입 경영을 하고 있는 기아차가 적자까지 맞게 되면 심각한 경영 위기를 겪게 될 것”이라며 “투자여력 감소로 미래 경쟁력이 약화되면 일자리 창출 동력도 상실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법원은 대기업이라고 하더라도 경영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에 대해 신의칙을 적용한 바 있다. 현대중공업, 아시아나항공은 2심까지 신의칙을 적용해 추가 임금 청구가 무산됐다. 당장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지는 않은 기아차가 경영상의 어려움을 이유로 신의칙을 인정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다만 기아차의 경영상의 어려움을 판단하는 법원의 잣대는 향후 통상임금 소송에 중요한 가이드라인이 될 것은 분명하다.

- 극단적 노사 갈등 유발하는 통상임금 소송 어떻게 해결하나

기아차 노사의 통상임금 갈등은 판결 이후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2013년 이전까지의 정기상여금은 신의칙이 적용돼 추가 임금 청구가 거부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2014년 이후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는 것을 몰랐다고 주장할 수 없다.

2014년 이후 추가 임금은 여전히 갈등의 불씨로 남아 있다. 대부분 완성차 업체들이 통상임금을 어떻게 설정할지 노사 합의를 통해 정리를 했지만 기아차 노사는 아직도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추가 임금 청구 가능 금액, 갈등의 불씨는 커지고 있다.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 시킨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GM 노사는 2014년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는 안을 합의했다. 이후 회사는 추가로 약 1300억원의 추가 인건비를 지급했다. 한국GM은 이후 2015년 9930억원, 2016년 6194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지속적인 적자 누적으로 GM의 한국 철수 가능성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특히 올해 10월 산업은행이 한국GM 철수에 대한 거부권 행사 기간이 만료되면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2015년 르노삼성은 대승적 차원에서 통상임금에 다른 수당을 넣는 대신 상여금을 과감하게 빼기로 합의했다. 르노삼성의 추가 임금 부담은 순익의 60% 수준으로, 상여금을 모두 포함할 경우 치명적인 타격이 불가피했다. 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합의한 르노삼성은 올해 완성차 업체 중 유일하게 안정적인 실적을 거두고 있다. 삼성전자는 2015년 통상임금에 상여금을 포함하기로 합의했다. 대신 기본급을 동결해 회사측의 부담은 덜면서 일반적인 경우보다는 실질임금이 인상되도록 합의를 했다.

통상임금 소송은 복잡한 임금체계와 그에 대한 법원의 판결로 인해 발생한 '사고'다.

그동안 기업들은 기본급 외에 상여금, 체력단련비, 김장 보너스, 월동 준비금, 문화활동비, 피복비 등 각종 명목의 수당을 만들어 임금을 지급했다. 통상임금을 줄이려는 목적도 있었고 시혜적 성격을 띈 임금을 지급함으로써 근로자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한 측면도 있다. 통상임금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복잡한 임금 체계를 단순화함으로써 투명성을 높이고 노사간 형평성을 제고한 측면이 있다.

다만 지금까지 노사가 서로 믿고 결정한 임금 협상을 한 주체의 일방적인 잘못이라고 책임을 묻는 것은 사회정의 상 바람직하지 않다. 만약 반대로 사측이 법적 기준 이상의 임금을 지급했다는 판단이 있었고 근로자가 3년치 추가 임금을, 1억원씩 반납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이를 순순히 인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대법원 역시 “노사 모두가 임금 협상을 할 당시에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사유를 내세워 예상외의 이익을 얻으려 하다가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해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되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라며 “정의와 형평의 관념에 비춰 도저히 용인될 수 없음이 분명하다”고 명시했다.

결국 통상임금은 소송 자체도 중요하지만 이후 노사가 서로가 용인할 수 있는 수준에서 과거의 임금을 합의하고 향후 서로 신뢰할 수 있는 투명한 임금 체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신동헌 노무법인 종로대표는 “노조는 통상임금 이슈에서 유리한 입장이기 때문에 회사의 경영상의 위기를 감내하는 모습을 보이며 같이 고민할 수 있는 여지가 커진다”며 “커진 협상력을 바탕으로 임금 인상만 요구하기보다는 대승적인 차원에서 문제 해결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머니투데이방송 권순우(soonwoo@mtn.co.kr)


[머니투데이방송 MTN = 권순우 기자 (progres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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