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N NEWS
 

최신뉴스

[뉴스&해설]'3조+3조 패키지' GM이 쏜 2개의 화살…협상 전략 꼬인 한국 정부

억지로 협상 테이블에 끌려온 한국 정부
권순우 기자



[머니투데이방송 MTN 권순우 기자] GM이 한국 정부와 노조를 향해 쏜 2개의 화살이 윤곽을 드러냈다. 20일 국회 여야 원내대표단을 만난 배리엥글 GM 해외사업부문 사장은 “자구 계획안을 준비했으며 그 안에는 상당한 투자계획, 지난주에 있었던 구조조정 발표도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와 노조를 압박하며 희생을 요구한 GM의 2개의 화살은 그동안 주도권을 뺏기지 않으려는 정부의 협상 전략에 따라 수면 아래에 있었다. 20일 엥글 사장은 국회 방문을 통해 정부가 지원하면 10년 먹거리를 제공하겠다는 2개의 안을 공개함으로써 정부에 압박이 가해지도록 하는데 나름 일견 성공했다.

1월 중순경 GM이 정부에 제시한 안은 ‘3조원+3조원 투자 패키지’다. 앞에 3조원은 향후 10년간 GM의 먹거리가 될 28억 달러 규모의 신규 투자 계획이며 뒤에 3조원은 과거 부실을 정리하기 위해 투입될 27억 달러 규모의 재무구조 개선 방안이다.

텅빈 한국지엠 군산공장

◆ 첫 번째 화살: 한국지엠의 미래 10년이 걸린 28억 달러 신규투자

엥글 사장은 지난 13일 군산공장 폐쇄를 결정하며 “중대한 결정을 내리는 2월말까지 이해 관계자와의 지속적인 논의를 통해 의미있는 진전을 이뤄내야 한다”고 말했다.

2월말 '중대한 결정'이란 신차 배정이다. 엥글 사장은 여야 원내대표단을 만난 자리에서 2종의 신차 배정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신차 배정은 부평, 창원공장에 미래 먹거리가 달린 문제다.

현재 부평, 창원 공장에서 생산중인 트랙스, 스파크는 4년 이내에 단종이 된다. 만약 이번에 신차를 배정 받지 못하면 부평, 창원 공장도 군산 공장처럼 폐쇄될 가능성이 있다. GM은 호주에서 2013년 철수를 선언하고 2017년 완전 철수를 한 전력이 있다. 신차를 배정할 것이냐 말 것이냐는 중대한 결정의 메시지는 완전 철수 선언 가능성도 포함하는 강력한 압박인 것이다.

만약 한국GM이 받으면 트랙스, 스파크 단종 이후에 신차를 약 2028년까지 생산하며 존속할 수 있다. 이번에 배정될 신차는 트랙스 후속 모델 프로젝트명 ‘9BUX'와 신형 글로벌 아키텍처 CUV다. 각각 25만대 정도 규모로 부평, 창원 공장은 연간 50만대 생산 배정을 받아 운영될 수 있다.

다만 GM의 3조원 신규 투자 계획은 공짜가 아니다. GM의 전 세계 공장 중 한국지엠 공장의 경쟁력을 전제조건으로 깔고 있다. 이를 위해 가동률이 20%까지 떨어진 군산공장의 폐쇄를 결정했다. 이에 더해 임금교섭을 통해 약 3천억원의 비용을 절감하려고 한다. 직원을 줄이기 위해 전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고 있고 임금교섭에서 인건비 관련 모든 비용을 협상 테이블에 올린 것도 이런 차원으로 해석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GM은 정부의 지원도 신차 배정의 전제조건으로 달았다. 엥글 사장은 "이런 계획을 위해 모든 이해 관계자로부터의 협조와 지원을 바란다"고 말했다. 즉, 정부가 돈을 내야만 신규 투자를 하겠다는 의미다.



◆ 두 번째 화살: 한국지엠의 과거를 정리하는 27억 달러 재무구조개선

수년간 적자를 이어온 한국지엠의 결손금은 2016년 말 기준으로 1조 3천억원에 달한다. 남은 자본총계는 87억원에 불과하다. 매년 본사에 지급해야 할 차입금 이자(약 1300억원)도 갚지 못할 수준이다. 재무구조 개선을 하지 않고서는 지속이 불가능하다.

GM은 한국지엠의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3조원 가량의 증자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를 위해 자신들이 약 2조 5천억원을 투입하고 2대 주주인 산업은행이 약 5천억원 규모로 증자에 참여할 것을 요구했다.

홍영표 환경노동위원장은 엥글 사장과 면담한 뒤 "GM이 '출자전환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고 말했다. 또 "GM이 출자전환하면 정부와 산업은행은 현재의 지분율 유지를 위해 함께 신규 출자를 해야 할지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GM은 새로운 현금 투입을 하지 않고 자신들이 가진 2조 5천억원 가량의 채권을 출자전환하는 방식으로 증자에 참여할 계획이다. 16년 말 현재 차입금은 2조 9천억원인데, 그 중 4천억원은 이미 지난달 본사에서 빼갔다. 출자전환이 이뤄지면 한국지엠은 빚이 없어졌으니 부채비율을 대폭 낮출 수 있고 매년 본사로 1천억원 넘게 나가는 이자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

문제는 산업은행의 5천억 참여다. 산업은행은 2100억원을 주고 취득한 한국지엠 지분 17%의 가치를 0원으로 평가했다. 부실이 워낙 심한데다 배당도 없고, 심지어 팔 수도 없는 주식이기 때문이다. 가치를 0원으로 평가하는 회사에 또다시 5천억원을 투입하라는 것은 말 그대로 ‘생 돈’을 넣으라는 의미다. 이와 더불어 GM은 법인세를 감면 해주는 외국인투자기업 지정 등 세제 지원 및 금융지원 등 도합 약 1조원의 지원 패키지를 요구했다.

신차를 만드는 것은 자동차 회사인 GM의 고유 업무다. 신차를 만들 테니 한국 정부가 돈을 내라는 것은 억지다. 하지만 15만개의 일자리가 달린 문제라 정부도 아예 거부하지는 못하고 있다.

카허카젬 한국지엠 사장/배리엥글 GM 해외부문 사장

◆ 15만 일자리를 건 정부와 GM의 벼랑 끝 치킨게임의 승자는?

GM이 ‘3+3 구조조정 패키지’를 제안한 후 정부는 “구체적인 지원 요청은 없었다”며 제안을 받은 사실을 부인했다. GM측 관계자는 “그런 제안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없었던 것으로 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정부가 GM의 제안을 못 들은 체 한 것은 GM이 신차 배정을 카드로 정부 지원을 압박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자신의 사업인 신차 배정을 하면서 한국 정부에게 돈을 내라는 것은 일자리 정부를 자처하는 문재인 정부의 약점을 파고 드는 협상 전략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지원을 해주면 투자를 할 테니 믿으라고 하지 말고 먼저 투자를 해놓고 나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수순”이라며 “신뢰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행동하지 않음으로써 협상을 주도했던 것처럼, 산업은행도 손을 놓고 있지 않았다. 산업은행은 2대 주주로서 GM의 책임을 요구해왔다. 산업은행이 2월 작성한 ‘한국GM 사후관리 현황’에 따르면 산업은행은 흑자전환 대책, 자본잠식 해소방안, 본사 대출금 금리 인하, 소수 주주권 강화 등 8가지 사항을 GM에 요구했다. 2대주주로서의 권한을 강화하고 GM이 한국지엠에서 지나치게 많은 돈을 빼가지 못하도록 견제하는 장치들이다. 이에 대해 GM측은 답하지 않았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어떤 기업도 자기 회사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일자리를 무기로 정부를 협박하는 기업은 없다. 기업은 자신의 수익을 위해 고용을 하고 사업을 한다. 국가 경제적 필요에 의해 정부가 지원을 할 수는 있지만 대량 실업이라는 공포를 조성해 압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종국에 가서 지원을 하더라도 신규 투자 계획을 GM이 먼저 실행을 한 후에 협상을 하는 것이 정부의 협상 전략상 유리하다. 투자가 결정된 후에 협상에 임하면 이미 진행된 투자 외에 GM이 한국 경제에 더 많은 기여를 하도록 양보를 얻어낼 수 있다.

하지만 투자계획이 공개가 됨으로써 일자리에 불안감을 느끼는 지역 사회와 정치권 등이 GM이 원하는 대로 정부가 해주라는 압력이 생겼다. 금융권 관계자는 "자기들이 사업을 하다가 부실해진 것을 마치 정부가 지원을 안해서 일자리가 사라진 것처럼 유도하고 있다"며 "정당하지 않은 요구가 마치 정당한 것처럼 비춰지게 됐다"고 말했다.




‘2월말 중대한 결정’을 언급하며 공세를 펴던 배리엥글 사장은 20일 국회에서 이전보다 훨씬 우호적인 태도로 “한국에서의 사업을 지속하고 한국 경제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자 한다”며 “모두 함께 이뤄낼 성과에 대해 긍정적인 확신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GM은 스스로의 역할을 할 준비가 되어 있고, 정부와 노조가 역할을 해줄 것을 요청했다”는 말이었다. 일자리를 지키고 싶다면 한국이 먼저 양보하라는 압박은 달라지지 않은 셈이다.

엥글 사장의 20일 국회 방문은 GM 입장에서는 성공적이었다. 일자리를 위해 정부가 양보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이날 자리를 주선한 민주당 한국지엠대책 TF 홍영표 위원장은 21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한국GM이 직접 고용만 1만 6천 명이고 특히 한국 자동차 부품 회사들이 GM 본사에도 많이 납품하고 있어, 여러 가지로 종합적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다"면서 "세제 혜택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홍영표 의원은 GM에 인질로 잡혀 있는 부평을 지역구로 하고 있다.

신규 투자가 결정되는 3월초까지 협상 테이블에 앉지 않음으로써 협상의 주도권을 잡으려 했던 정부는 어쩔 수 없이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게 됐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22일 배리 엥글 사장과 만난다. GM은 처음 제시한 안에서 아무런 양보도 하지 않고도 정부를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였다.

머니투데이방송 권순우(soonwoo@mtn.co.kr)


[머니투데이방송 MTN = 권순우 기자 (progres9@naver.com)]

머니투데이방송의 기사에 대해 반론·정정추후 보도를 청구하실 분은 아래의 연락처로 연락주시길 바랍니다.

고충처리인 : 콘텐츠총괄부장 ombudsman@mtn.co.kr02)2077-6288

MTN 기자실

경제전문 기자들의 취재파일
전체보기

    Pick 튜브

    기사보다 더 깊은 이야기
    전체보기

    엔터코노미

    more

      많이본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