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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과뒤]'통신 재벌' 프레임 앞에 무너지는 보편요금제 도입 저지선

서정근 기자

"규제개혁위원회 저지선은 뚫릴 수 있어 보이는데...설마 국회 통과까지 되겠습니까. 이런 법이 통과된다면 그야말로 '국격'의 문제지요."

지난달 11일, 규제개혁위원회가 통신 보편요금제 도입 심사를 진행하던 날 오전 이통사 관계자 A씨가 한 말입니다.

보편요금제는 문재인 정부 통신비 인하 정책의 '끝판왕' 입니다. 월 2만원대에 데이터 1GB, 음성통화 200분을 제공하는 요금제를 1위 사업자 SK텔레콤이 출시하도록 강제하는 것입니다.

이통업계는 "비유하자면 특정한 자동차를 세부 옵션까지 지정해 얼마에 팔라고 정부가 현대자동차에 강제하는 격인데, 이는 시장 경제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습니다.

'국격'까지 거론한 것이 좀 과하지만 A씨의 멘트는 업계의 정서를 반영한 것입니다. 이날 오후 규개위에서 해당 안건은 통과됐습니다.



선택약정할인율 25% 상향과 노령층 통신요금 1만1000원인하를 '속절없이' 받아들였던 이통3사는 "보편요금제만은 안된다"며 마지노선을 그어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KT가 내어 놓은 LTE 베이직 요금제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3만3000원에 유무선 음성통화와 문자를 무제한으로 제공하고 데이터 1GB도 함께 제공합니다. 선택약정할인을 선택하면 2만4750원에 이용 가능합니다.

KT 관계자도 "(음성,문자 무제한과 선택약정할인을 감안하면) 보편요금제보다 더 파워풀한 요금제"라고 언급할 만큼 소비자 입장에서 '가성비'가 좋습니다. 보편요금제 도입 입법 전쟁을 앞두고 KT가 보편요금제를 '넙죽' 받아버린 셈이지요.

이는 퇴진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황창규 회장의 '입장'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이통사 관계자 B씨는 "유플러스가 최고가 요금제 데이터 제한을 푸는 개편안을 내놨고 SKT가 멤버십 체계 개편, 로밍 요금 인하를 내걸었는데, 정부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며 "요금제 대응이 늦었던 KT가 내놓은 안은 고가 요금제 수요 고객들을 대상으로 한 개편에 더해 저가 요금제를 강화하며 '포인트'를 준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B씨는 KT가 '포인트'를 주며 사실상 보편요금제 도입 저지선에서 이탈한 것을 두고 "황 회장의 입지와 무관치 않았을 것"이라고 짚었습니다.

"KT의 요금제 개편이 보편요금제 도입 저지선에서 이탈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KT에 종사하는 C씨는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소비자 이용패턴을 분석해 내린 결정이지 이를 두고 '배신'이라고 볼 일은 아니다"며 "원래 통신요금으로 '담합'은 있을 수 없다"고 답했습니다.

때마침 과기정통부는 LTE 원가자료도 공개하겠다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대법원이 공개하라고 한 원가자료는 2G, 3G에 한정한 것인데 정부가 한 걸음 더 나간 것이죠. 자료 공개를 통해 이통3사가 요금인하 여력이 있음을 강조, 보편요금제 도입을 한층 더 압박하기 위한 포석으로 읽힙니다.

KT의 이탈이 SKT-유플러스에 미칠 영향, 정부의 4G 원가 공개의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반응도 있습니다.

업계 종사자 D씨는 "국회에서 언제 논의될지, 통과 여부도 불투명한데 미리 3만원짜리 요금제를 도입해 손해를 자처할 이유가 없고, 통과된다 해도 그 때부터 도입하면 되지 미리 3만원 짜리 내놔 손해 볼 일이 없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나 B씨는 "보편요금제 도입이 국회에서 부결되면 시민단체와 소비자 여론이 들끓을 것이고 정부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며 "자발적으로 협조한 KT와 그렇지 않은 곳에 대한 '구별'도 이뤄질텐데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2G, 3G 원가공개를 요구한 소송이 최초 제기됐던 당시엔 사용자 중 2G, 3G 이용자가 적지 않을 때였습니다. 법원의 공개 결정 취지를 감안하면 정부가 4G 원가공개를 결정한 것이 적절한 것이라는 평도 일부 있습니다.

B씨는 이러한 시각에 "대법원이 원가 공개를 결정하면서 판결문에 '2G, 3G는 오래된 것으로 정보공개에 대한 영업기밀 유출에 대한 부담이 적다'라고 명시했다"고 반박했습니다. 또 "판결문은 판결문대로 봐야지, 어느 정부가 판결문의 '행간'을 해석해서 정부 행정에 반영한단 말입니까"라고 불만을 표했습니다.

저렴한 가격에 이동통신 서비스 이용할 수 있게 해준다는데, 싫어할 사람 없습니다. 통신비 인하 정책과 관련해 여론이 정부 편인 것은 당연합니다.

이통3사에 대한 압박은 기본적으로 '통신 재벌' 프레임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1위 사업자 SKT의 사업출범 자체가 당시 현직 대통령의 딸이 재벌가에 시집가며 형성된 '혼맥'을 통해 이뤄졌고, 대기업 3사의 경쟁과 담합이 교차하며 공고한 진입장벽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가져가는 영업이익을 줄여서 서민들의 가계통신비 부담을 낮추고, 이를 통해 가처분 소득을 늘려간다는 것이 정부의 구상입니다. 큰 틀에서 보면 소득주도 성장과 맥을 같이 합니다.

보편요금제 도입이 현실화되면 영업이익 감소-투자위축-비용절감-인력감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원성'도 자자합니다만 정부는 "장사꾼이 밑지고 판다는 말을 어떻게 믿냐"며 요지부동입니다.

업계 관계자 E씨는 "선택약정할인이 25%에서 30%로 올라가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으며, 보편요금제가 도입된 후 '2만원에 1GB 너무 적어. 보편적이지 않아. 2GB는 줘야지'하면서 개편을 강제하지 않는다는 법이 없다"고 우려했습니다.



5G 주파수 경매가 산정에서 통신3사를 배려해 가격책정이 이뤄졌다는 평과 관련해선 "오름차순 경매방식이고 라운드가 수십 차례 이어질텐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라고 반문한 후 "더 용납하기 어려운 것은 과거 정권에서 현재 정책 토대를 만들고 운영해온 관료들이 정권 하나 바뀌었다고 얼굴 색 하나 안 바뀌고 이렇게 표변해서 정책을 집행하는 것"이라고 토로했습니다.

E씨는 "소비자들에게 주어지는 통신비 부담은 150만원이 넘는 애플의 최신폰, 100만원이 넘는 삼성폰의 할부금을 포함한 통합명세서인데, 원성은 통신사들한테만 쏟아진다"며 "선택약정 할인도, 어르신들 통신비 인하도 다 우리 돈으로 하지, 제조사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고 토로했습니다.

또 "실제로 이통사가 통신서비스 팔아서 소비자 1인에게 거두는 평균 매출은 3만원대"라며 "고가의 단말기는 '필요하니 비싸도 사야 하는 아이템'인데 필수재인 통신서비스는 비싸고 통신사는 악덕상인으로 치부된다"고 호소했습니다.

"장사치가 물건 밑지고 팔지 않는다"는 말은 거의 모든 사례에서 맞아 떨어지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장사치도 '밑지고 팔지 않기 위해' 해야 하는 고민들이 많습니다.

가계통신비 인하의 필요성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통신사들이 요금인하 여력이 없다고 단정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정부의 개별 정책들이 논란을 살 만한 요인이 있는 것 또한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과기정통부 관료들은 "기업 자율에 맡겨놨더니 시장 실패가 현실화됐고 이를 바로잡기 위함"이라고 설명합니다.

각종 통계에서 보여지는 우리 통신비와 단말기 판매가격은 비교적 높은 편이나 다른 나라에 비해 고도화된 통신 환경, 플래그십 모델에 쏠리는 소비자 선호도를 감안하면 '시장 실패'를 확증하기엔 섣부른 감이 있습니다.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습니다. '선한 의지'를 가진 정책이 혹여 실행 과정에서 부작용은 없을지, 포퓰리즘적인 성격은 없는지 등 여러 측면을 두루 고려해 현명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습니다.



[머니투데이방송 MTN = 서정근 기자 (antilaw@m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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