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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역사의 현장에서 오늘의 현실과 만나다①] 여주 영릉, 신륵사, 명성황후 생가

신효재 기자

성주재단(대표 추애주)에서 진행하는 역사탐방 ‘역사와 역사의 현장에서 오늘의 현실과 만나다’ 프로그램에 4회를 동행 취재하며 한국의 역사 현장을 소개하고자 한다. 특별히 이화여대 13대 총장을 역임하고 현재 문화재청 세계유산분과위원장인 이배용 위원장이 역사의 현장을 추천하고 설명을 맡는다.
'역사와 역사의 현장에서 오늘의 현실을 만나다' 주제를 가지고 시작된 역사탐방의 첫 장소는 여주 세종대왕릉과 신륵사, 명성황후 생가다.

역사는 현실의 거울과 경계의 역할을 한다고 한다. 새로운 각오까지는 아니어도 자신이 발딛고 서 있는 대한민국 5000년 역사를 통해 뿌리를 찾아 시간여행을 떠나본다.
(사진=신효재 기자)여주 세종대왕릉

◆평등과 애민의 삶을 살다 간 ‘세종대왕’ 릉

비바람이 언제 불었냐는 듯이 가을 햇살이 따사로운 주말 마주한 세종대왕문화관에는 가을단풍과 함께 역사의 현장을 방문한 관람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었다.

한글탄생 과정을 볼 수 있는 문화관에서 10여분 차로 이동하면 세종대왕릉이다. 산뜻한 가을바람과 함께 붉게 물들은 가을 단풍은 세종대왕이 얼마나 애틋하게 백성을 사랑했는지 그 열정을 보여주는 것 같다.

영릉은 조선 제4대 왕인 세종과 왕비 소헌왕후의 합장릉으로 조선 전기 묘제의 기본이 되기도 한다.

영릉은 본래 서울 헌릉 서쪽에 있었지만 예종 즉위년(1469)에 여주로 옮겨왔다. 현재 위치하고 있는 여주 영릉의 세종대왕릉은 소나무들이 빙 둘러 호위하고 있으며 햇살이 밝게 내리쬐어 릉 곁을 서성이기만 해도 그 기운이 느껴진다.

현재 세종대왕릉의 모습은 1975년 세종대왕의 위대한 업적을 길이 숭모하고 그 위업을 오늘에 이어받아 민족문화 창조의 기틀로 삼고자 영릉 보수 정화사업을 추진해 1977년 세종전을 새로 고치고 경역을 정화해 이룬 것이다.

이배용 문화재청위원장은 “5월15일 우리가 스승의 날로 기념하고 있는 날은 본래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탄생일이다. 한글은 유네스코에 기록유산으로 등재돼 있을 만큼 그 뛰어남이 입증되고 있다. 한글을 창제한 스승의 의미를 담은 날이다”며 “세종대왕은 애민의 왕이다. 옥에 갇힌 백성이 글을 몰라 본인 판결문이 어떻게 써있는지도 모르고 벌을 받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움에 한글을 만들게 된 것”이라고 했다.

이어 “역사는 미래를 밝히는 등불이다. 우리가 걸어갈 내일의 빛을 비춰주는 나침반이 되어준다. 그것이 역사의 현장을 찾는 이유다”며 “세종대왕은 노비들의 출산휴가를 주기도 했다. 또 육아휴가를 남편에게도 줄만큼 약자에 대한 배려와 애민의 마음으로 나라를 다스렸던 왕이다”고 말했다.

마지막 가을 단풍과 돌아본 세종대왕릉은 갈길 몰라 방황하는 우리네의 인생에 서로 사랑하고 배려하고 평등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방향을 안내해주는 것 같다.
(사진=신효재 기자)세종대왕릉과 영릉 방향표시
(사진=신효재 기자)효종릉에 들어서기 위한 홍살문

세종대왕릉과 불과 400m여 떨어진 효종릉은 홍살문이 먼저 마중을 나온다. 화살문양은 영혼이 올라간 곳이라는 것을 알려주듯 하늘을 향해 솟았고 길게 늘어선 신주길은 새삼 뿌리깊은 민족의 조상들을 향한 효심이 느껴진다.

조선왕릉 40기는 올해가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지 9주년이 되는 해다. 조선왕릉 40기 중 서울지역에 8기, 경기도 일원에 32기가 18개 지역으로 나눠 분포돼 있다.

특히 조선왕릉은 유교와 동양 전통사상의 조화속에서 발전해 온 역사적, 정신적인 유산이다.

또한 자연 친화적인 독특한 장묘로 전통이 보존돼 있다.

조선왕릉은 인류역사의 중요한 단계를 잘 보여주는 능원조성과 기록문화의 보고로 1408년부터 1966년까지 500년 이상 지속해 만들어져 당대의 시대적 사상과 정치사, 예술관을 압축적으로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이뤄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어줘 지속가능한 중심공간으로 의미가 크다.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오른 길이라서인지 배꼽시계가 요란하다.

한국관광공사에서 깨끗하고 맛있는 집으로 선정한 여주 한정식 전문점을 찾아 무공해 여주쌀밥과 직접 담근 된장으로 만든 된장찌개에 계절별 나물이 그득한 점심으로 배를 불렸다.

◆영·혼·육의 다리가 되어주는 신륵사
(사진=신효재 기자)신륵사 다층석탑

신륵사는 신라때 창건된 후 고려 우왕 때 나옹선사가 돌아가신 곳으로 유명하다.

임진왜란 당시 대부분 건물이 불에 탄 후 현종 12년(1671)무렵부터 다시 일으켜온 것이 오늘날의 신륵사다.

봉미산 기슭에 위치한 신륵사 뒤로는 숲이 우거지고 왼쪽으로는 안택이 자리하고 있으며 마당 앞에는 여강이라 부르는 남한강이 유유히 흐른다.

신륵사에는 7점의 보물과 유형문화재 1점이 있으며 풍경이 아름다워 지친 심신을 힐링 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신륵사 내 정자에 올라 흐르는 남한강을 바라보고 서 있다보니 무상무념속으로 빠지게 된다.

특히 다층석탑에 새겨진 문양들은 너무나 세밀해 마치 바로 튀어나올 것만 같다.

◆대한민국 자존심을 지킨 국모 '명성황후' 생가
(사진=신효재 기자)명성화후 생가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을 뒤로 하고 발길을 옮겨 명성황후 생가를 찾았다.

영리한 조선의 국모였던 그녀가 파란만장한 삶의 현장에서 어떻게 자랐는지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특히 고종이 명성황후를 위해 세운 비에는 그 사랑의 애틋함이 묻어난다.

조성왕조 27대 왕비 41명 중에서 가장 총명한 왕비로 꼽히는 황후다.

명성화후는 일본이 시해하고 그 명분을 찾기 위해 비하시켜 잘못 알려진 역사로 얼룩져 있지만 그 시대 둘도 없이 지혜가 뛰어나고 영민한 여성이었다. 1851년 태어나 1895년 10월8일 일본의 자객에 의해서 꽃잎이 떨어지기까지 조선의 국모로 역할을 다했다.

1863년 고종이 12살에 즉위했을 때 1866년 대원군이 직접 여흥 민씨인 명성화후를 간택했다.

여주에서는 지난 17일 명성화후 탄신 167주년 기념식을 갖고 작헌례와 양로연, 명성화후 뮤지컬 갈라쇼 등으로 명성화후의 드높은 지혜와 강인한 의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녀의 삶이 시작된 생가에서 명성황후의 나라를 위한 투쟁과 저항의 정신을 되새기며 발길을 돌렸다.
(사진=여주)명성화후탄신 167주년 기념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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