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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폐한다고 3600원에 팔았더니, 배당만 4311원

'장내' 자본시장 푸대접 노골적..개선 없이는 3천시대 요원
유일한 기자

지난 3일 코스피지수 2천선이 작년 10월에 이어 다시 붕괴됐다. 지독한 부진이다. 코스피 3천까지 딱 50% 올라야하는데, 까마득하다.
작년말 한 증권사가 정리한 코스피지수 PER은 8배, PBR은 0.83배였다. 12개월 뒤의 예상 실적을 고려한 수치이다. 각각 14배와 2.6배를 넘는 미국을 들먹일 것도 없다. 중국이 9.9배, 1.31배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전쟁 위험이 한층 줄어듦에 따라 우리증시의 만년저평가 해소에 대한 기대가 일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아니었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지금은 상장폐지되고 잊혀진 한 상장사의 사례를 통해 우리 자본시장이 이렇게 철저하게 푸대접 받는 우리안의 실상을 들여다본다.

O 들어가며=동일제지라는 상장사가 있었다. 태림포장 그룹에 속한 골판지 원지 생산업체다. 이 원지를 태림포장이 가져다 가공해 박스 등에 쓰이는 포장용지를 만든다. 지금은 이름을 태림페이퍼로 바꾸었다. 경기도 안산과 경남 의령, 마산에 어마어마하게 큰 원지 생산라인이 있어 한해 100만톤이 넘는 원지를 생산하고 있다. 사업보고서를 보고도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숫자다. 전자상거래의 폭발과 함께 지금 원지 산업은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이다. 중국이 폐지 수입을 제한하면서 마진율도 유례없이 좋아졌다. 지난해 3분기까지 3,653억원의 매출에 701억원의 영업이익, 648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상장폐지 되지 않았다면 주주들은 큰 이익을 누렸을 게 분명하다. 30% 넘는 지분을 들고 있었던 태림포장과 그 주주들 역시 유례없는 혜택을 입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 부질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발단=‘사건’의 시작은 3년 여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태림포장그룹의 최대주주였던 정동섭 회장이 돌연 지분을 사모펀드 IMM PE에게 매각한다. 갑작스럽게 공개된 정 회장의 상속 포기 결정에 업계는 크게 놀랐고, 뒷말이 무성했다고 한다. 2015년 7월에 지분변경이 완료된다. 놀라움도 잠시 곧이어 더 큰 충격이 뒤따랐다. 경영권을 쥔 IMM이 불과 2개월 뒤 상폐를 위한 자사주 공개매수를 결정한 것. 주당 3,600원에 소액주주가 보유한 지분(발행주식의 27.64%인 1,097만주)의 대부분을 사겠다고 전격 선언한 것이다. 당시 매수가는 공시일 종가보다 32%, 1개월전 평균가 보다 41% 정도 높았다. 그래봤자 장부상의 순자산가치에는 한참 미치지 못했지만.
계획대로 지분을 확보하자 2016년6월 IMM은 이사회를 열어 상장폐지 신청을 최종 결정했고, 한달 뒤 열린 주주총회에서 상장폐지는 일사천리 완료됐다. 자사주 매입 등을 통해 최대주주가 95.12%(소액주주 193만주, 4.88%)를 확보한 상태였으니 주총 승인은 누워 떡먹기였다. 한국거래소 규정상 최대주주가 ‘자사주를 포함해’ 95% 이상을 확보하면 상폐 요건에 해당한다.

◇전개=정리매매를 거쳐 2016년8월11일 상폐는 최종 완료된다. 그러나 상폐가 되었다해도 모든 게 다 끝난 게 아니었다. IMM의 상폐 기획에 응하지 않고 정리매매를 넘어서까지 버틴 소액주주들이 적지않았던 것이다. 이때 남은 소액주주의 지분율은 대략 34만7천여주(0.8%)로 추정된다. IMM은 급기야 2017년10월 ‘최대주주의 주식매도청구권 행사 승인의 건’을 임시주주총회에 상정한다.(상법 360조의24) 지분율이 95% 넘는 지배주주로서 잔류한 소액주주들의 지분을 다 사겠다는 것. 국내 유수의 회계법인이 평가를 담당했는데, 이때도 매도청구가는 3,600원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최초 공개매수 이후 1년이 지나는 동안 태림페이퍼는 주당 1,460원 상당의 순이익을 냈다.

어쨋거나 IMM은 주총 결의대로 2017년11월 남은 소액주주에게 매도청구권을 행사할 것이라는 취지의 내용 증명을 전달했다. 상법에 따르면 소액주주가 매매금액(3,600원)을 수령하지 않더라도 지배주주가 이 금액을 공탁하기만 해도 주권은 무효가 된다. 소액주주들은 또 매도청구권 행사에 따라 2개월 이내에 지분을 팔아야한다. 그 가격은 지배주주와 소액주주 둘의 협의로 결정한다. 협상은 순조롭지 않았고 결국 공은 법원으로 넘어간 상태다. 소송은 2018년2월에 시작됐는데, 6월 께 사측이 8,000원이 넘는 가격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액주주들은 이 가격마저도 거부한 상황이다. 상법은 이경우 “법원은 회사의 재산상태와 그 밖의 사정을 고려해 공정한 가액으로 산정해야한다”고 못박고 있다.(Appraisal Rights) 소송에 참여한 한 소액주주는 “정리매매 이후에도 상당수 주주들이 이탈한 것으로 안다”면서도 “가격 협상이 늦어지면 지배주주가 부담해야하는 이자비용도 증가한다. 급하게 서두를 이유가 없고, 소송에서 제값을 받아 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절정= 사실상 지난해 6월말 IMM은 소액주주 지분 전부를 매입해 최대주주 지분율을 100%로 끌어올렸다. 자신들의 의도대로 소액주주 배제에 완벽하게 성공한 것. 클라이맥스는 바로 이 시점에서 등장했다. 작년 3분기 결산과 함께 주당 4,311원의 배당을 결정한 것. 이는 자사주 공개매수가(3,600원)를 훌쩍 넘는다. 그때까지 벌어들인 순이익의 92.5%(배당성향)인 600억원을 배당했고 이 돈은 모두 IMM에 넘어갔다. 지독한 쥐꼬리 배당으로 악명을 떨쳤고 그 덕에 PBR 0.5배조차 버거웠던 회사가 소액주주 제로(0) 상태에서 폭탄 배당을 터뜨린 것. 2013년과 2014년 배당성향은 각각 12.3%(25원), 17%(30원)에 그쳤으며 2015년에서 2017년까지 아예 배당이 없었다.
참고로 IMM이 정 회장에게 지분을 사온 가격은 주당 5,334원이었다.

◇결말(?)=물론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래도 잠정적인 이해득실은 따져볼 만하다. 먼저 최대주주 IMM의 이익이 단연 돋보인다. 저평가받고 있는 알짜 상장사의 자진상폐가 지닌 매력을 일찌감치 터득한 과실을 마음껏 누리고 있다. 소액주주 모두를 배제한 터라 이익의 크기를 마음껏 좌우할 수도 있다. 이미 배당금으로 배가 부를 만큼 부르지만 향후 매각(M&A) 과정에서 이익은 더 커질 전망이다. 한솔그룹을 비롯 여러 인수자들이 하마평에 오른다. 경쟁사인 아세아제지를 두고 있는 아세아그룹측의 동향도 심상치 않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서두에 말했듯 단군 이래 최대 업황이다. 매도자가 위너인 M&A 게임일 가능성이 높다. 반면 IMM의 일방적인 상폐 결정과 통보에 겁먹고 화나고 스트레스 받아 주당 3,600원에 지분을 넘긴 소액주주는 그야말로 루저(loser) 신세가 되고 말았다. 항복하고 투항한 결과 치고는 너무 비참할 뿐이다.

끝까지 버틴 소액주주는 대주주의 주식매도청구권 행사에 따라 이미 3,600원(공탁금)은 확보해둔 상황이다. 최종 매각가와 3,600원과의 차이에 대해서는 매각이 완료되는 기간 만큼 이자가 붙는다. IMM이 소송중에 제시한 8,000원대라는 가격은 추가 인상될 여지가 있다. 현 시점에서 소액주주에게 분기 배당금(4,311원)에 대한 권리가 있는지는 논란이 있지만 소유권이 완전히 넘어간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자격이 있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마지막 까지 남은 극소수 주주는 결국 3천600원을 포함한 대주주의 매도청구가격에 배당금 그리고 이자까지 받을 수 있게 되는 셈이다. 매도청구가를 최소 8천원으로 가정했을 때 1만2천원이 넘는 금액이다. 비교할 수 없이 투명하고 공정해서 한층 우월한 지위로 인정받는(정부와 한국거래소, 학자들, 그리고 소액주주 대다수가 이구동성 인정하고 있는) 장내시장 가격이 장외시장 가격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김봉기 밸류파트너스자산운용 대표는 "장내시장의 소액주주들이 구조적으로 배제되고 그래서 당연히 누려야할 이익을 얻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며 "이런 틀을 바꾸지 않으면 글로벌시장에서 소외될 수 밖에 없다. 이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PS. 범정부(청와대 기재부 금융위 검찰 금감원 한국거래소 등등등)가 일치단결 지향하는 공정하고 투명한 시장( 여기서 시장은 물론 장내시장이다)에 소수의 대주주와 함께 기관 외국인 개인은 물론 국민연금을 비롯한 연기금이 섞여 살고 있다. 소수의 대주주가 주역을 맡고 있는 장외시장은 ‘그들만의 리그’로 볼 수 있다. 당장 자본시장법도 장외시장은 논외로 친다. 그런데 태림페이퍼의 상폐 사건을 보면 장내시장의 소액주주들이 철저하게 소외받는다는 사실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시장에서의 소외는 가치의 상실에 따름 아니다. 이런 구조를 바꾸지 않고서 우리시장의 저평가 극복을 논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아트라스BX, 부산도시가스 등 일부 알짜 기업들의 대주주가 상폐를 꾀하는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참고로 다함이텍이라는 회사는 연매출 50억원을 2년 연속 애써(?) 채우지 않아 2013년 상폐됐는데 그 직후 어마어마한 부동산재벌로 탈바꿈했다. 그 과실은 소수의 대주주 일가가 누리고 있다. 상폐되지 않았다면 소액주주들과 같이 누리고 있을 게 뻔(!)하다. 대안을 하나둘 적어본다. 각자가 서로 맞물려 영향을 주고 받는 이슈들이다.

1 자진 상폐시 회사가 보유한 자사주를 ‘소각’하도록 하자
-회사가 보유한 자사주 탓에 회사의 가치에 비해 시장 가격이 크게 하락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자사주가 소각된다면 나머지 지분의 가치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게 된다.
-거래소 규정에 상폐 지분은 95%이상인데, 지금처럼 자사주를 최대주주 지분에 합산하는 방식은 지나치게 불공정하다.
-무엇보다 대주주는 단 한푼도 들이지 않고 전적으로 회사의 돈으로 소액주주가 헐값에 주식을 처분하고 결과적으로 배제되는 사태를 유도할 수 있다. 이렇게 헐값에 이탈한 소액주주의 몫은 대주주로 부당하게 귀속된다.
-보다 근본적으로 자사주는 주가 안정과 제고를 위한 수단이다. ‘보유’보다는 소각이 자사주 매입의 취지에 부합한다.

2 자진 상폐 기업에 한해 금융위에서 외부감사인을 지정해 최근 수년간의 재무제표를 다시 감사하도록 한다
-자진 상폐를 시도하는 기업의 대주주는 비용의 최소화를 위해 재무제표에 손을 대 이익을 축소하려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보는 게 상식적이다. 회계 기준을 과도하게 어기지 않고도 이익을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은 한둘이 아니다.
-상폐 이후의 회계 투명성을 감시할 수 있는 수단은 크게 위축된다. 이에따라 상폐 이전에 회계 투명성을 제고하는 장치가 꼭 필요하다.

3 자진 상폐를 위한 공개매수 가격은 장내시장에만 의존해서는 안된다. 대주주 뿐 아니라 소액주주들이 인정하는 공정한 가격 산정을 위해 자산가치와 수익가치, 미래가치가 적절하게 고려되어야하며 이런 가격 계산의 주체는 객관성이 보장되는 제3의 전문기관이 되어야 한다
-주식시장 상장시 대주주가 원하는 공모가는 제3 전문기관의 가치평가를 통해 계산되고, 다수의 기관들이 참여하는 수요조사까지 거친 후 최종 확정된다. 다수 대중이 언제든지 투자할 수 있는 주식의 등장은 그만큼 조심스럽고 민감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퇴장은? 등장할 때와 마찬가지로 공정해야한다. 그런데 지금 상폐는 태림페이퍼처럼 매일 거래되는 시장가격만 믿고 의존한 채 결정된다. 시장가격이 공정하고 투명하다고 아직도 믿는가?
법무법인 한누리 등에 따르면 미국의 델라웨어형평법원(Chancery Court)은 2013년 델컴퓨터의 상폐에 반대해 주식매수 가격 결정을 청구한 소액주주들의 손을 들어주며, 당시 사측이 제시한 시장가격에 기초한 공개매수가격이 델의 공정한 가치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결정을 내렸다.(2016년5월) 그간 미국에서도 시장주가는 절대선(善)처럼 인식돼 법원은 이에 기초한 공개매수가에 별다른 반대를 하지 않고 사측의 손을 들어주곤 했다. 인식의 대전환이 이뤄진 것이다.

지난 10년간 이어진 미국 자본주의의 유례 없는 호황은 이런 전향적인 시장환경과 시스템의 뒷받침이 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하는 심증이 든다. 시장 가격은 대주주(또는 경영진)의 의사에 따라 매우 크게 좌우된다. 일례로 대주주가 오래오래 무배당을 지속한다면 해당 기업의 주가가 우상향할 수 있을까. 아니 버틸 수 있을까. 상속을 앞둔 대주주 일가가 무배당을 넘어 작심하고 이익을 줄이려 든다면? 사실 우리의 경우 자진 상폐 시의 자사주 매입 가격 뿐 아니라 계열사와 관계사간 합병 비율, CB(전환사채) BW(신주인수권부사채)의 전환가격 결정 역시 전적으로 시장에서 형성된 주가에 기초에 이뤄지는데, 근본적인 손질이 필요한 상황이다. 시장 가격이 공정하지 않게, 소수의 의도대로 얼마든지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정한 가격 결정을 위한 시스템이 정비되면 삼성물산과 에버랜드의 합병비율 논란 같은 노이즈가 재발될 가능성도 줄어들 것이다.


O 다시 처음으로...
코스피지수 3천시대를 얘기하기 시작한지 10년을 지나 20년을 향해가고 있다. 그런데 준비도 하지 않은채 꿈만 키운다고 그 꿈이 실현될까. 코스피지수가 3천을 가려면 이익이 그대로라고 가정할 때 지금보다 PER과 PBR이 50% 높아져야한다. 그만큼 밸류에이션이 개선되어야한다. 12배는 전세계시장의 평균PER와 같다. 남들처럼만 대접받아도 코스피 3천이다. 어려운 게 아니다. 장내시장의 위상에 맞게 법과 제도, 규정을 뜯어고쳐 3천에 부합하는 환경을 조성하는데서 출발해야한다. 대주주가 중심이 되고 주도하는 시장이 아니라 대주주와 소액주주가 공정하게 참여하고 대접받는 시장으로 바꿔야한다. 상장사들의 지배구조도 코스피 3천에 부합하도록 유도해야한다. 그렇지 않고선 우리나라 증시의 만년 저평가는 더 견고해질 수 밖에 없다. (한쪽으로 치우친 자사주 매입도 알고보면 낙후된 기업지배구조에서 비롯된다. 이 문제는 추후 별도로 언급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머니투데이방송 MTN = 유일한 기자 (onlyyou@m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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