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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투증권, 발행어음 부당대출 몰랐을까…살얼음판 걸은 이유

문제의 'SPC' 정무적 판단 미흡
발행어음 취지 무색 괘씸죄 걸려
운용마진 높이려다 화 자초한 듯
전병윤, 이수현 기자


한국투자증권이 지난 4일 금융감독원(제재심의위원회)으로부터 '발행어음 부당대출'에 대해 '기관경고'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한국투자증권은 심의기간인 4개월간 전사적 힘을 쏟아 부으며 위법성이 없음을 강변했으나 끝내 징계를 피하진 못했다. 민간위원으로 구성된 제재심의위원회가 당초 금감원이 요구한 징계 수위보다 한 단계 낮췄다는 점(영업정지 1개월, 임직원 직무정지 권고→기관경고, 임직원 주의 및 감봉)이 한국투자증권으로선 위안거리다. 다만 이번 사태에서 한국투자증권의 리스크 관리에 허점이 드러났다는 건 아픈 대목이다.

◆'발행어음→SPC→TRS' 고리의 본질이 핵심= 이번 제재 과정의 핵심 쟁점은 한국투자증권이 발행어음을 통해 조달한 자금을 개인대출로 활용했는지 여부다. 발행어음은 자기자본 4조원 이상 증권사인 '초대형 IB(투자은행)'로 지정된 곳 중 대주주 적격성 심사 등을 통과하면 허용하고 있는 사업이다. 자기신용을 토대로 한 어음을 자기자본의 최대 2배까지 발행할 수 있다.

이 발행어음을 투자자에게 약정 금리를 제시하고 팔아 조달한 자금은 기업대출이나 회사채 인수, 지분 매입과 같은 기업금융에 50% 이상을 써야 하고 부동산 금융에는 30% 이하만 활용해야 한다.

금융당국은 초대형 IB에 편리하고 매력적인 자금 조달 수단을 허용해준 만큼, 사용처를 기업금융으로 제한했다. 기업의 원활한 자금공급 기능을 담당토록 유도한다는 취지기 때문에 발행어음 자금을 개인대출로 돌리는 건 금지하고 있다.

금감원은 이번 한국투자증권의 사례를 개인대출로 본 것이다. 구조가 복잡하지만 간략화하면 한국투자증권이 지난해 2월 서류상 회사인 SPC(특수목적회사) '키스아이비제십육차'(이하 SPC)에 SK실트론 지분 19.4%를 매입하려는 자금인 1,673억원을 빌려줬다.

이 SPC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SK실트론 지분 매입 자금을 빌려주기 위해 설립한 회사로 최 회장은 TRS(총수익스와프) 계약을 맺었다. TRS란 총수익매도자(증권사 등)가 해당 주식에서 발생하는 이익과 손실을 총수익매수자(차입자)에 넘겨주고 그 대신 약정이자를 대가로 받는 장외파생거래다.

따라서 SPC는 최 회장으로부터 약정이자를 받고 SK실트론 주식 매입자금을 빌려준 셈인데, 한국투자증권이 해당 SPC에 대출을 해줬기 때문에 발행어음 자금이 일종의 개인 주식매입자금대출로 쓰였다는 게 금감원의 판단이다.

물론 해석 과정에서 법리적 이견이 충돌했고, 역시 개인대출을 할 수 없는 펀드의 경우엔 유사한 구조의 SPC가 발행한 채권에 투자했음에도 문제삼지 않아 형평성 논란이 불거졌다. 한국투자증권의 반박 논리 역시 이에 근거한다. 한국투자증권은 상법상 주식회사인 SPC에 대출했기 때문에 법적으로도 기업대출이란 주장이다.

윤석헌 금감원장이 지난해 7월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금융감독원장과 증권회사 CEO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사진= 머니투데이

◆괘씸죄 부른 한투증권, 정무적 판단 미스= 양측의 공방과 무관하게 한국투자증권의 내부통제시스템이 이같은 법리적 다툼의 소지를 미리 걸러내지 못했는지는 의문이다.

한국투자증권의 해명 역시 일리가 있지만 발행어음 제도의 취지를 고려하고 거래 상대방인 SPC의 실체가 최 회장과의 TRS 거래 구조에 근거한다는 걸 부인할 수 없기 때문에 '정무적 판단'이 제거된 무리한 투자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발행어음 사업 인가를 검토할 때 사실상 여신과 수신을 증권사에 허용해주는 것이라는 은행권의 반발이 거셌다"며 "금융당국은 은행권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발행어음 자금이 어떤 형태로든 개인대출로 쓰일 수 없다는 걸 강조했었는데 적어도 (한국투자증권이 투자 전에) 금감원에 향후 문제 소지가 없을지 의견을 구하는 절차라도 밟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감독당국 한 관계자는 "첫 발행어음 사업자인 한국투자증권의 자금 운용 실적을 보고 받고 이를 토대로 제도가 긍정적 효과를 내고 있다고 판단했다"며 "나중에 이런 거래를 파악한 뒤 뒷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고 전했다. 정서적으로는 일종의 '괘씸죄'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금융위원회 등은 여러차례 정책 발표 등을 통해 증권업계, 특히 초대형 IB의 발행어음이 모험자본의 물꼬를 트느데 도움을 줄 것이란 기대감을 드러낸 바 있다.

이 때문에 한국투자증권 내부에서도 "꼼꼼하게 챙기지 못한 측면이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각에서는 한국투자증권이 발행어음 사업 과정에서 운용 '마진(중간이윤)'에 대한 압박을 느낀 게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가령 한국투자증권이 발행어음을 투자자에 1.5~2.3% 약정금리를 제시하고 판매할 경우, 이렇게 조달한 자금을 3% 중반대 기업대출 등에 활용하면 운용 마진은 약 1.0~1.5%포인트 수준이다. 여기에 발행어음의 만기가 1년 미만이므로 미스매칭(만기 불일치)을 줄이려면 투자처도 1년 안팎으로 구성해야 한다.

만기가 길거나 신용위험이 상대적으로 높은 곳에 투자하지 않으면 운용 마진을 많이 남기기 어려워 이번 TRS처럼 안정적이면서 고수익인 대기업 오너를 상대로 한 '개인대출'의 유혹이 강했을 것이란 게 업계의 추론이다. 한국투자증권이 TRS와 연계된 SPC에 자금을 대출해주고 받은 금리는 연 4.5% 수준으로 알려졌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운용 마진에 대한 압박감이 존재했기 때문에 다른 계정도 아닌 발행어음 계정에서 해당 SPC에 자금을 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발행어음 사업을 전담하는 종합금융투자실(현 종합금융담당)이 재무와 기획을 담당하는 경영기획총괄 직제에 속했던 게 의아했다"며 "종합금융투자실이 IB 및 운용부서 라인과 경쟁을 하면서 수익 창출에 대한 욕구가 강해졌는데 이를 적절히 제어할 제동장치가 걸리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진단했다.



[머니투데이방송 MTN 증권부 = 전병윤, 이수현 기자 (byjeon@m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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