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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체크] 인텔 구조조정이 보여주는 삼성전자 딜레마

인텔이 파운드리 접어도 삼성 반사이익 없는 이유
이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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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이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사업 부문을 매각할 수 있다는 소식이 외신을 통해 나왔습니다. 최근 실적 부진으로 구조조정에 나선 가운데 파운드리 매각을 검토하고 있다는 내용인데요. 실현된다면 2021년 야심차게 파운드리 사업에 나선 지 3년 만에 철수하는 겁니다.

그런데 인텔이 파운드리를 접으면 삼성전자가 반사이익을 볼 수 있다는 주장이 보입니다. 하지만 반도체 전문가들과 증권가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입니다. 삼성이 수혜 볼 게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고요. 나아가 ‘삼성이 인텔처럼 될 수도 있다’는 우려스런 지적도 나오고 있죠.


■ 인텔 구조조정 원인 된 파운드리, 4년간 30조 적자

파운드리는 건축으로 비유하면 시공사와 같습니다. 설계 전문 업체(팹리스)가 설계도를 가져오면 파운드리는 그 도면에 맞게 건물, 즉 반도체를 만들어 주는 겁니다. 파운드리는 1980년대 설계만 전문으로 하는 팹리스가 생기면서 그에 맞춰 탄생했습니다. 업계 1위인 대만 TSMC가 시초고요. 삼성전자(삼성 파운드리)와 미국 글로벌파운드리, 인텔(IFS), 중국 SMIC, 대만 UMC 등이 후발주자입니다.

인텔이 파운드리에 진출한 건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2012년에 처음 진출했는데 당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6년 뒤인 2018년 철수했었죠. 그러던 인텔은 2021년 파운드리에 다시 진출합니다. 미국 정부가 반도체의 전략적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반도체 칩과 과학법’(CHIPS Act)을 만들었고 인텔이 호응한 겁니다. 마침 인텔로서도 CPU 시장에서 점유율이 떨어지고 있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야 할 상황이었죠.



하지만 파운드리 진출 이후 인텔은 수익성이 나빠졌습니다. 2021년 3분기를 정점으로 순이익이 꾸준히 줄었고요. 인텔은 2023년 1분기 적자를 기록했는데, 이는 1990년 4분기 이후 무려 33년 만에 첫 분기 단위 적자였습니다. 미국 증권가는 오는 3분기 인텔이 EPS 기준 또 한 번 0.02달러 적자를 낼 것으로 전망합니다. ‘창사 후 56년만에 최악의 실적’이란 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인텔의 사업부문별 세부 실적을 보면, 2021년~2024년 2분기까지 다른 사업 부문이 흑자를 기록하는 동안 파운드리만 대규모 적자를 냈습니다. 이 기간 파운드리 누적 적자가 224억9500만 달러(약 30조원)에 달하고요. 영업손실률도 2021년 –36.8%였던 게 최근 분기 –65.5%까지 치솟았습니다. 결국 인텔은 지난 2분기 실적 발표에서 직원 감축과 설비투자·R&D 축소 등으로 연간 비용을 10조 달러 이상 줄이겠다고 선언했죠.

2021~2024년 2분기까지 여타 사업부문이 대체로 흑자를 내는 동안 인텔 파운드리는 꾸준히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인텔의 파운드리 구조조정에 대해 반도체 전문가들에게 의견을 물어봤는데요. 인텔이 파운드리를 팔 가능성 자체는 낮게 봤습니다. 미국 정부가 약 200억 달러(보조금 85억 달러, 대출 110억 달러)의 대규모 보조금을 지원하기도 했고요. 현재 미국 반도체 산업이 국가 안보와 직결돼 있어 함부로 팔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권석준 성균관대 화학공학과 교수는 “매각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생각한다. 설사 그렇게 가더라도 미국 반도체 업체 정도에만 인수 권한을 부여할 것”이란 분석을 내놨습니다.

매각 여부와는 별개로 인텔 파운드리는 실패 가능성이 높다는 말도 나왔습니다. 인텔은 자기 제품을 설계해 만드는 종합반도체회사(IDM)입니다. 그런데 파운드리 사업을 하면 팹리스 업체들의 제품을 받는 '을'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 TSMC 같은 순수 파운드리와는 서비스 측면에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파운드리와 IDM은 사업이 많이 다르다. 파운드리는 ‘대 고객 서비스’가 최종 목적이 돼야 하는데 인텔은 그런 쪽과 거리가 멀었던 게 잘 안된 이유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 인텔 파운드리 접어도 삼성 '반사이익' 보기 어렵다

일각에선 인텔이 파운드리를 접을 경우 삼성전자에 수혜일 수 있다는 말도 나옵니다. '인텔의 파운드리 몫이 삼성으로 옮겨갈 수 있다'거나 '삼성 파운드리가 인텔의 물량을 소화할 수 있다'는 등의 주장인데요. 전문가들은 크게 두 가지 이유로 삼성이 수혜를 보진 못할 거라 말합니다.

첫째 이유는 지금까지 인텔이 파운드리에서 삼성과 경쟁 관계조차 아니었다는 겁니다. 인텔이 남의 설계를 받아 만드는 파운드리를 운영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지난 2분기 인텔 파운드리 매출은 43억2000만 달러로 규모만 봤을 땐 TSMC에 이은 2위인데요. 그런데 시장조사업체 트랜드포스(TrendForce) 자료에는 인텔 파운드리의 실적이 올라가 있지 않습니다.




트랜드포스는 ‘인텔 파운드리의 매출 가운데 98~99%가 내부 고객, 즉 인텔 내부에서 발생해 외부 매출만으로 고려할 때 상위 파운드리로 잡지 않았다’고 밝혔죠. 그런 측면에서 현재까지의 인텔 파운드리는 위탁 생산이 아니라 자체 공장을 운영한 것에 가깝습니다.

인텔 파운드리 매출 대부분이 자체 물량인 만큼 설령 사업을 매각하더라도 삼성이 빼앗아 갈 점유율은 없을 겁니다. 이병훈 포항공대 반도체공학과 교수는 “인텔이 삼성 파운드리에 위협이 됐었다면 구조조정이 삼성에 도움이 되겠으나, 지금까지 한 번도 위협이 된 적 없다”라며 “인텔 구조조정으로 삼성이 반사이익을 본다는 건 미래에 일어나지 않는 피해에 대한 안도감 수준”이라 설명했습니다.

둘째 이유는 인텔이 과거부터 자체 공장을 통해 필요한 칩을 생산해 왔다는 겁니다. 파운드리를 포기하더라도 자체 물량은 가진 설비로 최대한 생산하려 할 것이고요. 설령 외부에 위탁생산을 맡기더라도 삼성전자보단 TSMC를 쓸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입니다. TSMC는 순수 파운드리인 반면 삼성전자는 파운드리를 겸한 IDM이라 경쟁 관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반도체 담당 증권사 연구원은 “인텔은 이미 TSMC에 GPU와 AI 반도체를 위탁생산하고 있다. 삼성은 인텔과 같은 IDM에 파운드리·AI에서 경쟁 관계에 있어 삼성의 공장을 이용할 것으로 보긴 쉽지 않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중장기적으론 삼성이 일부 팹리스를 데려올 수 있게 됐다는 시각도 있는데요. 이건 수혜라기보단 ‘점유율 지키기’ 수준이란 분석입니다. 권석준 교수는 “(현재로선) TSMC를 1옵션, 인텔을 2옵션으로 생각하던 상당수 팹리스 업체들이 다시 삼성을 택할 수밖에 없다”라며 “TSMC의 생산 캐파가 한계가 있고, 테이프 아웃(생산 시작)에 하루가 급한 팹리스 업체들에게는 다음 옵션은 삼성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라 설명했습니다.


■ 전문가들이 삼성 파운드리를 불안하게 보는 이유들

이슈체크 팀은 반도체 전문가들에게 삼성 파운드리의 현 상황을 어떻게 보는지도 물었는데요. TSMC보다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반응이 대체적이었습니다.

TSMC가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을 꾸준히 올리는 반면 삼성 파운드리는 하락했습니다. /출처=트랜드포스 자료 재가공

삼성의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꾸준히 하락했습니다. 시장조사업체 트랜드포스에 따르면 삼성 파운드리 점유율은 2023년 1분기 12.4%에서 최근 분기 11.5%로 6분기 동안 0.9%포인트 내려갔습니다. 같은 기간 TSMC는 60.1%에서 62.3%로 2.2%포인트 올랐죠. 매출 규모도 TSMC가 167억 달러에서 208억 달러로 31억 달러 오른 반면 삼성 파운드리는 10억 달러 느는 데 그쳤습니다. 팹리스 고객들이 삼성전자보단 TSMC를 더 찾는다는 겁니다.

삼성전자의 경쟁력 하락 원인으로는 IDM인 게 가장 먼저 거론됩니다. 앞서 인텔과 같은 이유입니다. 파운드리로서 고객의 설계를 받아 제품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 경우 고객과 경쟁하게 될 수 있습니다. 고객들로선 혹시나 삼성을 통해 기술이 유출되지 않을까 걱정할 수밖에 없겠죠. 이는 TSMC에 애플이나 엔비디아 같은 대기업 팹리스 고객사를 뺏기고 있는 주된 요인으로 거론됩니다.

삼성전자가 파운드리를 분사해 독립 법인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꾸준히 나오고 있죠. 별도 파운드리 법인을 세워야만 고객사들의 기술 유출 우려를 줄일 수 있다는 겁니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센터장은 “삼성이 파운드리를 제대로 하고 싶다면 떼어내야 한다고 꾸준히 리포트를 썼지만 여러 이유로 실현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점점 경쟁력을 잃는 상황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삼성이 파운드리 생태계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파운드리는 팹리스 고객 칩 제조뿐 아니라 설계도 돕는데요. 이를 위해 반도체 설계 지적 재산(IP)을 제공하고요. 또 설계를 자동화하는 EDA(전자설계자동화) 업체, 반도체 설계를 칩에 구현할 수 있도록 하는 디자인하우스, 설계 시뮬레이션 자원을 제공하는 클라우드 업체 등과 동맹을 구성합니다.

파운드리 업체들은 팹리스 설계를 돕기 위해 여러 가지 자원을 제공합니다. 이미지는 TSMC의 오픈 이노베이션 플랫폼 동맹체 구성. /출처=TSMC '2023 Sustainability Report' 갈무리


업계에서 파운드리 생태계가 강조되는 이유는 제조에 직접적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좋은 IP 자산과 EDA, 디자인하우스를 쓰면 칩 설계 시간도 단축되고 성능과 발열량도 개선할 수 있죠. 이런 측면에서 삼성전자와 TSMC는 격차가 꽤 크다는 평을 받습니다. 단적으로 두 회사의 보유 IP 자산만 봐도 TSMC가 7만3000개를 가진 반면 삼성 파운드리는 5300여개로 14배나 차이가 납니다.

권석준 교수는 “TSMC와 삼성전자의 차이점은 생태계의 다양성, 더 정확하게는 삼성 파운드리에서 팹리스 고객사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IP 혹은 삼성 파운드리와 연계된 IP 밴더들의 다양성 차이”라면서 “결국 중요한 건 첫째도 생태계, 둘째도 생태계”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일호 머니투데이방송 MTN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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