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안펀드 첫날부터 삐끗? 여전채 금리 놓고 발행사-운용사 이견
시장서 소화 못한 물량 가산금리 당연 vs 2008년엔 시장금리로 매입김이슬 기자
코로나19로 인한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 총 20조원 규모로 마련된 채권시장안정펀드가 출범 첫날부터 잡음을 내고 있다. 여전채(카드사, 캐피탈사 등 여신전문금융회사가 발행한 회사채) 매입을 앞두고 금리와 만기, 물량 등 조건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운용사와 채권 발행사 간 의견 충돌이 발생하면서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채안펀드는 이날 본격 매입을 앞두고 카드와 캐피탈 회사 등과 여전채 매입 조건을 논의했으나 발행금리를 두고 이견이 불거지면서 자금 집행이 지연되고 있다.
당초 금융위는 지난 1일 금융사가 공동 출자한 총 20조 규모의 채안펀드 가운데 1차 조성분인 3조원 납입을 마치고, 이날부터 매입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일정이 꼬인 건 발행금리를 놓고 일부 기업들이 이의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여전채는 회사채와 다르게 수요예측을 하지 않고 채권시장에서 수시로 발행하며, 발행사와 인수자 측에서 금리를 협의해 결정한다.
당초 업계에서는 채안펀드가 여전채를 민간채권평가회사 평균금리(민평금리) 수준에서 발행할 것으로 기대했다. 과거 2008년 채안펀드가 가동됐을 당시에도 시장금리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같은 방식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중금리가 민평 수준 금리보다 높아 펀드 수익자 측의 반대에 부딪혀 매입이 지연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운용사 측에서는 매입 여전채가 시장에서 소화되지 않는 채권이기 때문에 금리가 높아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여전채 매입 방침이 정리될 때까지 당분간 실질적인 집행은 미뤄질 전망이다. 유동성 위기에 내몰린 카드사와 캐피탈 업체들로선 갑작스러운 지연 소식이 달갑지 않을 수밖에 없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여전채 순발행 규모는 910억원으로 코로나19 사태가 확산되기 전인 1월과 비교해 96% 가량 줄었다.
증권사들이 주가 급락에 따른 주가연계증권(ELS) 달러 마진콜(추가 증거금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여전채 보유분을 대거 매도했고, 신규 매수도 급감한 영향이다.
금융당국도 채안펀드가 매입하는 여전채 금리가 시장금리보다 높을 수밖에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진다.
금융위원회는 채안펀드 관련 혼선에 대해 "채안펀드가 여전채 매입을 보류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며 "현재 금리 등 매입조건을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여전채 매입 조건을 조율하는 데 통상 이틀이 걸린다"며 "금리 수준을 정하는대로 여전채 뿐 아니라 나머지 회사채, CP 매입도 시작해 시장안정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채안펀드 매입 대상에서 증권사 CP가 제외돼 시장 안정 효과가 떨어진다는 지적도 제기하고 있다. 당국은 기본적으로 기업들의 원활한 단기자금 융통을 돕기 위한 취지인 만큼 증권사 CP까지 우선 매입 대상에 올리지 않았다.
정부 지원에도 단기시장은 쉽사리 진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초단기물인 CP 금리는 지난달 18일부터 이날까지 12거래일 연속 상승했고, CP 91일물 금리는 전 거래일보다 2.0bp 오른 연 2.23%에 마감했다.
금융당국은 증권사 CP 매입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당국 관계자는 "이미 증권금융을 통한 증권사 지원과 한국은행의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을 시작한 부분이 있고, 금융사들의 자금이 투입된 만큼 증권사 CP를 매입하려면 협의를 거쳐야 하는데 금융사들이 꺼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금융위는 이날 개최된 '금융상황 점검회의'에서 대기업 지원의 전제 조건을 재차 강조했다.
대기업의 경우 정부 지원 프로그램을 이용하기에 앞서 내부 유보금과 가용자산 등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1차적으로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자구노력을 이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FRB의 기업어음매입기구(CPFF) 사례를 언급하며 "미국도 발행 기업에 지나치게 유리한 금리조건을 제시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시장조달 노력이 선행되어야 하는 만큼 정부 지원프로그램이 금리, 보증요율, 만기 등의 측면에서 시장보다 좋은 조건을 제시하기 어렵다"고 못밖았다.
금융위는 이런 조건에도 불구하고 채권매입을 희망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규모와 업종을 가리지 않고 자금을 지원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김이슬 머니투데이방송 MTN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