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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떨어지는 환율, 과속 스캔들?

최용식 새빛인베스트먼트 리서치센터장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인 1년 전쯤, 고위 경제관료와 환율에 관해 얘기를 나눌 기회를 어렵사리 얻었다. 환율을 인상시켜 수출을 증가시켜 성장률을 끌어올리겠다는 정부 정책은 결국 실패할 것이고, 그 후유증이 심각할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기 위해서였다.
 
2001년에 같은 정책을 펼쳤다가 실패했으므로 내 지적이 쉽게 받아들여질 것으로 기대했다. 당시 환율은 12.4% 평가 절하됐으나, 수출은 늘기는커녕 오히려 12.7%나 줄었다. 그러나 그는 막무가내였다. 국제수지 적자가 심각하다는 것이 그의 변이었다. 나는 ‘석유가격이 하반기부터 하락으로 돌아선 뒤 장기적으로 50달러 아래에서 안정될 것이고, 국제수지도 당연히 개선될 것’이라고 일러줬다. 최대 소비국인 미국의 성장률이 2007년 4/4분기 -0.2%, 2008년 1/4분기 0.9%를 기록했고, 하반기부터는 경기가 더 빠르게 하강할 것이라는 것이 그 근거였다. 그는 좀처럼 내 얘기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반론했다. 골드만삭스 같은 세계적인 투자회사들은 ‘연말 석유가격이 200 달러를 넘어갈 것으로 예측’한다는 것이었다. 석유가격은 2003년 30달러를 넘어선 뒤 줄기차게 상승하여 2008년 6월에는 150달러에 육박했으므로 그럴 만도 했다.
 
그러나 국제 투자회사가 진짜로 자신의 예측을 믿었다면, 그런 정보를 공개할 리 없었다. 석유 선물을 더 많이 사두면 큰돈을 벌 수 있는데, 돈 버는 게 목적인 그들이 왜 그런 정보를 공개하겠는가? 이미 석유 선물 등에 거액을 투자한 그들은 시장에서 가격하락의 압박을 심각하게 받고 있었을 것이고, 자신들이 보유한 석유 선물을 사줄 사람이 필요했을 것이 틀림없었다. 이런 일은 석유가격이 폭등했다가 폭락으로 돌아설 때마다 반복하여 일어난 일이었다. 끝내 그는 내 얘기를 믿으려 하지 않았다. 당시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는 필요 이상으로 많은 석유를 도입한 것으로 나타난다. 석유가격이 50달러 대로 떨어진 지금도 국내 석유가격이 그때와 비슷한 수준을 보이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거야 어떻던, 환율 인상은 심각한 후유증을 남겼다. 모든 가격이 그렇듯이, 환율도 한번 오르기 시작하면 관성을 갖기 마련이다. 환율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면서 8월부터는 ‘9월 위기설’까지 등장했다. 그러자 환율은 폭발적인 상승세를 보이기 시작했고, 그 추세는 11월까지 이어졌다. 때마침 평소 친분이 있는 외환시장 관계자로부터 ‘환율이 어느 수준까지 오를 것 같으냐’라는 자문이 내게 들어왔다. 내 대답은 간단했다. ‘환율 폭등은 비정상적’이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그는 ‘세계적인 금융회사들이나 해외의 저명한 언론들은 우리나라 단기외채가 심각하다고 분석한다. 실제로 그런 것 아니냐?’ 되물어왔다. 우리의 문답은 다음과 같이 이어졌다.

‘아무리 명의라 할지도, 당신 체온이 37도이므로 생명이 위험하다고 진단하면 믿겠느냐? 단기외채도 마찬가지다. 반드시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여 판단해야 하는데, 우리나라보다 더 심각한 나라는 수없이 많다. 만약 단기외채가 문제라면 단기 해외채권을 들여와 해결하면 그만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6위의 외환보유국이다.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를 당한다면 마지막 여섯 번째에 당할 것이다. 실제로 우리 환율은 외환보유고가 고갈되어 IMF의 구제 금융을 받은 나라들에 비해서도 20~30%나 폭등했다. 이것은 정상이 아니다.’ ‘세계적인 언론들과 금융기관들이 하필이면 우리나라에 대해서만 그런 분석을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그들이 가장 쉽게 돈을 벌어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우리 외환시장에서 작전을 벌이고 있다는 얘기냐?’ ‘그렇다.’ 그는 내 답변에 반신반의할 뿐이었다.

지난해 12월 초에는 우리 연구소가 분석하여 언론에 배포했던 [2009년 국제수지 300~500억 달러 예상] 자료를 그에게 보내줬다. 석유가격이 지난해 11월 중에 50달러 대로 떨어졌으므로, 연료 수입은 최소 6백억 달러 이상 줄어들 것이고(2008년 연료 총 수입액은 약 1,400억 달러), 수출이 20% 정도 감소하더라도, 국제수지는 대규모 흑자를 기록할 것이 틀림없다는 것이었다. 이런 확실한 통계조차 외환시장에서는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오히려 안정세를 보이던 환율은 2월부터 다시 폭등세로 돌아섰다. 3월 6일에는 한때 1,597원까지 오르기도 했다. ‘3월 위기설’이 다시 위력을 발휘한 셈이다.
 
그러나 국제수지 흑자가 계속 쌓여가자 그것은 봄눈 녹듯이 사라졌다. 설 연휴가 유난히 길어서 1월에는 무역수지가 21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지만, 그 뒤로는 2월 29억 달러, 3월 43억 달러, 4월 60억 달러 등 대규모 흑자를 기록한 것이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무역수지 흑자는 최소 300억 달러, 어쩌면 500억 달러도 훌쩍 넘어설 것이 거의 틀림없다. 그렇다면 달러의 공급이 그만큼 늘어날 것이고, 환율은 지속적으로 하락할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자본수지 역시 대규모 흑자를 기록할 것이 빤한 상황이다. 환율이 하락할 때에 외국 자본을 유입하면 환차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환율이 1,300원일 때 1억 달러를 들여오면 1,300억 원을 바꿀 수 있는데, 환율이 1,000원으로 떨어질 경우에는 1천억 원만 갚으면 되므로 300억 원 이상 이익을 남길 수 있다.
 
그럼 환율은 더욱 빠르게 하락할 수밖에 없다. 물론 외환당국이 환율 방어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그 재원도 충분하다. 지난해 외환보유고가 6백억 달러나 줄어들었는데, 달러를 매각한 만큼의 재원이 쌓여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환율을 적극적으로 방어할수록 외국자본은 환차익을 노리고 더 많이 국내에 유입될 것이다.

국내 많은 경제전문가들은 환율이 1,200원을 하향 돌파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고 있지만, 어쩌면 1,000원 아니 900원도 지키기 어려울지 모르겠다. 그러면 수출업체들은 어떻게 되겠는가? ‘저 환율’에 적응할 시간이라도 벌어주기 위해서는 환율이 좀 더 천천히 떨어져야 하는데 말이다. 더 심각한 일은 환율이 지나치게 하락하면, 환차익을 충분히 누린 외국자본은 다시 유출될 것이고, 국내 금융시장은 극심한 신용경색을 겪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심히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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