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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의 비극과 가난한 양용은의 축복 

[홍찬선칼럼]부자로 죽지 말고 부자로 살아야
홍찬선

 이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일은 무엇일까?
 사랑하는 사람과 마주 앉아 먹고 싶었던 맛있는 것을 먹으며 데이트 하는 것,
 삼복더위 속에서 엉덩이에 땀띠가 날 때까지 공부한 뒤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는 것,
 열정적으로 추진했던 일이 결실을 거둬 주위 사람들로부터 박수를 받는 것….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1.4후퇴’ 때 혈혈단신으로 남하해 수백억원대 재산을 모았던 A씨의 즐거움은 ‘돈 세는 것’이었다. 미아리 부근 개천에서 염색 일을 하면서 하루 두 끼 먹으면서도 저녁에 그날 번 돈을 세는 재미로 힘든 줄 몰랐다.

 하지만 그의 돈 세는 재미는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했다. 입을 것, 먹을 것 아끼고 허리띠 졸라매며 모은 수백억대 재산을 남기고 죽음을 맞이했는데, 미망인과 세 아들 사이에 상속을 둘러싼 싸움이 벌어졌다. 그 과정에서 한 아들은 정신불안 증세를 보이기까지 했다. 부자로 살지 못하고 부자로 죽었기 때문에 스스로는 물론 자녀들까지 행복이 아닌 불행으로 몰아넣었다. 아이러니다.

 며칠 전, PGA챔피언십에서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를 꺾고 역전 우승한 양용은 선수는 정반대의 역설을 썼다. 19살 때 골프연습장에서 볼 줍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지독한 가난 때문에 아버지의 매를 맞으면서 피눈물로 배운 골프실력으로, 3살부터 골프 클럽을 잡은 당대 최고의 골프천재를 납작하게 한 뒤 당당하게 우리말로 인터뷰를 하는 모습, TV와 신문과 인터넷으로 전 세계에 생중계된 그 모습은 한국을 확실히 알려준 100억달러 이상의 가치를 가졌다고 할 수 있다.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돈에서 올까, 권력에서 올까, 아니면 의지에서 올까.
 정신의학적으로 볼 때 힘은 모자람에서 온다고 한다. 배가 고파야 동물은 움직이려는 동기가 생기고, 움직여야 힘이 생긴다. ‘모자람의 미학’은 없는 사람의 자기합리화나 있는 사람의 지배 이데올로기는 아니라, 축복인 것이다.

 가을에 거둔 쌀은 떨어지고, 보리는 아직 익기 전인 오월. 징그러운 배고픔으로 초근목피(草根木皮)를 찾아 들로 산으로 헤매던 보릿고개 시절에 ‘헝그리정신’이란 것이 있었다. 냉수로 배를 채우며, 사각링에 올라 죽음을 걸고 주먹질하던 복서들. 외화를 벌기 위해 땅 설고 물 설은 독일에 광부로 간호사로 떠났고, 건설 근로자로 사막을 누볐던 형 누나 삼촌…. 비록 궤도진입에 실패했지만 발사 자체는 성공했던 나로호를 꿈꿀 수 있고, 달에 착륙하는 것에 비교될 정도로 어려웠던 양용은의 챔피언십 우승은 바로 그런 헝그리정신 덕분이었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부자로 죽은 A씨의 불행일까, 모자람의 미학을 살린 양용은의 헝그리정신일까. A씨의 불행이 되풀이된다면 배부른 돼지의 풍요는 있을지언정 아들이 아버지보다 나은 역사의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반면 모자람의 미학은 제2, 제3의 양용은을 계속 키워냄으로써 나와 사회와 나라는 지속적으로 나아갈 수 있다.

 얼마 전 서거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책을 가장 많이 읽은 대통령’으로 기억될 것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푹 빠졌던 책 읽는 즐거움이 그에게 독재에 맞서 민주화로 나아가게 하는 힘을 주었다. 세계 최고 부자인 빌 게이츠를 키워 낸 것도 ‘동네 도서관’이었다. 해리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은 “책 읽는 사람이 모두 지도자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리더는 모두 책 읽는 사람(Not all readers are leaders, but leaders are readers)”이라고 갈파했다.

 가을이다.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찌는 가을은 책읽기에 안성맞춤이지만 놀기에도 더없이 좋다.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 그동안 미뤘던 독서로 모자람의 미학을 실천해보는 것은 어떨까. 부자로 죽는 사람이 많을 때 경술국치(庚戌國恥, 한일합방)는 다시 찾아올 수 있지만, 배움에 배고파하는 사람이 많을 때 나로호 발사의 성공은 앞당겨지고 양용은 신화는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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