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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낙방생은 어떻게 글로벌기업 ceo가 됐나

MTN감성인터뷰 [더리더] 윤윤수 '휠라코리아' 회장
대담=최남수 보도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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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는 암흑기... 군대 갔다오니 서른에 졸업
진로바꿔 수출회사 취직 '내인생의 MBA코스'
경영인으로 역할모델은 대우 김우중회장

판공비 전혀 안써.. 투명경영 솔선수범
中, 佛등 전세계 자회사 투자받아 본사 인수
28일 한국증시 상장... 투자자와 약속지켜

브릭스매출 급성장...아웃도어웨어 신규런칭
스포츠의류시장 진출 세계 4위로 키울 것
정치권 러브콜 있지만 몸에 맞지 않는 옷

회사가 해외 본사를 인수한 이례적인 인수합병의 역사를 써온 휠라코리아의 윤윤수 회장. 기발한 역발상으로 인수자금을 마련해 세계적 기업인 휠라를 한국기업으로 만든 윤 회장은 곧 휠라코리아를 상장시키는 데 이어 스포츠 브랜드에서 4위로 오르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아름다운 리더를 만나는 머니투데이방송 MTN의 ‘더 리더’는 내년이면 창업 100년을 맞는 ‘장수기업’을 이끌고 있는 글로벌 리더 윤윤수 회장을 만나 그의 경영철학과 미래비전에 대해 들어봤다.



Q. 휠라코리아에 대해서 간략한 자기소개를 해주시면?

-휠라코리아보다 휠라를 좀 설명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1911년도에 이탈리아 비엘라에서 창업했고 시작이 언더웨어를 만드는 공장이었어요. 1973년도에 스포츠웨어에 진입했습니다. 그 해에 처음으로 스포츠 마케팅을 과감하게 도입해 테니스 선수 중에서 비외론 보그가 당시 휠라 브랜드를 전 세계에 많이 알리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 후에 오너십이 이탈리아에서 미국으로 갔다가 한국으로 바뀌는 과정을 겪었습니다.




Q. 오너십이 미국에서 한국으로 넘어왔는데 해외의 자회사가 본사를 인수한 경우잖아요. M&A 역사상 이런 일이 드문데 어떻게 그런 결정을 하시게 되셨는지?

- 처음에 휠라하고 일을 하게 된 것은 소싱 에이전트(sourcing agent)로 시작했습니다. 1984년도부터 제조를 도와주는 역할을 하다가 1971년도에 휠라 코리아를 창립하게 되죠. 소싱 업무도 하고 한국에서 내수 판매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이죠. 2003년도에는 오너십이 미국으로 바뀌면서 여러 가지 비즈니스를 제가 생각한대로 가장 좋은 방법대로 경영해보고 싶다는 의욕이 컸습니다. 많은 경우에 라이센시(licensee:브랜드 임차사업자) 입장에 있을 때는 자기 의사대로 결정해서 비즈니스를 구사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직접 제 마음대로 경영하기 위해서는 브랜드 전체를 사는 일 밖에 없지 않겠나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죠. 그것이 가능하게 된 것은 휠라를 통해서 일을 해오면서 쌓여진 제 나름대로 가진 신뢰가 작용했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Q. 아무래도 자회사를 하시다가 본사를 인수하려면 돈이 문제인데요. 조달하는 것이 보통문제가 아니었을 것 같은데, 독특한 방식을 쓰셨다고 들었습니다.

-생각을 한 번 바꿔봤어요. 보통 라이센시들이 겪는 어려움이 있어요. 이런 분들의 고통스러운 점을 풀어주면 필요한 돈을 먼저 낼 수 있는 사람도 있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했습니다.라이센시들이 가장 걱정스러워 하는 것은 계약이 5년이 지난 다음에 다시 연장이 되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 걱정을 없애 줄 테니 필요한 돈을 달라. 보통 수수료율인 7~8%의 반을 먼저 현재가로 달라. 그래서 그러한 현금을 마련했습니다.

그 아이디어가 실제로 작용을 했고 남미에서 5천만 달러, 프랑스에서 1억 천만 달러, 중국에서 5천만 달러가 들어왔습니다, 일본에는 제가 인수하기 전에 이미 라이센시가 이토츠라는 곳이 있었습니다. 원래 큰 회사 아닙니까? 휠라 비즈니스의 전망에 대한 상당히 고무되어있는 회사이고 그래서 협상을 잘 끌어가다보니까 10년간의 로열티를 현재가로 주는 협조를 받습니다. 전체 거두어들인 돈이 거의 3억 달러가 넘었습니다. 인수자금 4억5천만 달러 중 1억 5천만 달러는 재무적 투자자들이 참여했고요.

Q. 스포츠 의류, 신발 시장에서 경쟁자가 많아지는 추세인데요. 휠라만의 독특한 차별화 전략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의류 쪽에서 기능성 의류 쪽을 집중적으로 개발해서 소비자에게 제공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요. 신발 쪽에서는 최근에 모든 소비자들의 가장 큰 관심사인 건강문제에 도움이 되는 그런 기술을 집중적으로 개발하는데 역점을 두고 있어서 차별화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어요.
Q. 회사로 봐서는 큰 경사일수도 있고요. 큰일을 앞두고 계시는데요. IPO를 하시는데 어떻게 그런 결정을 하시게 되셨습니까? 배경도 있고 목적도 있으신 것 같더라고요?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글로벌 브랜드를 인수하기 위해서 필요한 펀드를 조성하는데 있어서 두 번째 축인 재무적 투자자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것이죠. 본래 약속한 날짜는 2010년도 3월 27일였어요. 그때는 금융위기가 닥쳐서 주식시장에서도 우리가 IPO를 하더라도 주가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것을 재무적 투자자들도 이해를 해서 연말까지로 연장하자는데 합의를 해준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가기로 한 것입니다.

Q. 새로 들어올 주주들 입장에서 보면 지금도 휠라 코리아가 잘하고 있지만 앞으로 어떤 것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아서 지속적으로 성장해 나갈 것인가가 제일 관심사가 될 것 같은데요.

-새로운 성장 동력이라고 하면 휠라코리아에서 이미 시작한 아웃도어 웨어 쪽에 상당히 큰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휠라스포츠라는 브랜드로 해서 2010년도 1월에 처음 런칭을 했는데 이미 시장에서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아서 한 달 전에 롯데쇼핑센터에 입점을 했습니다.

또 하나는 전 세계에서 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같은 경우는 2007년도에 계약을 해서 올해 상반기에 75% 성장을 했어요. 대단한 성장입니다. 또 한 가지는 전 세계에 라이선시를 많이 구성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중에서도 특히 신발 쪽에는 의류와 달라서 개발에 엄청난 투자가 들어갑니다. 그래서 라이센시라도 자동적으로 라이센서한테서 제품을 구매 해가는 게 일반적입니다. 이 부분도 큰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Q. 듣기로는 20대를 스스로 암흑기라고 표현하셨는데, 어떤 어려운 시기를 겪으셨고 어떻게 극복하셨는지요?

-대학교에 들어가면서 실패를 많이 했습니다. 본래 저희 아버님이 폐암으로 돌아가셨기 때문에 의사가 되어서 암을 전공해보려고 했는데 서울대 의대에 자꾸 떨어지잖아요. 2지망 치의예과가 됐는데, 치의예과가 나쁘다는 뜻이 아니고 본래 하려고 하는 목적달성이 안되잖아요. 거기를 8개월 다니다가 관뒀습니다. 그 다음에 서울의대를 또 떨어져서 외국어대학을 가서 방향을 180도 돌리죠. 외대에 가서 정외과를 공부했어요. 젊은 사람들이 그런 것이 있잖아요. 하다가 안 되면 쉽게 다른 것을 하는 것이 있었어요. 거기 가서도 별로 공부도 못했는데 고등학교 때 같이 다니던 친구 컨닝시켜주다 걸려서 그만뒀습니다.

이후 군대 가서 4년 있다가 들어오고 나니까 30에 대학교 졸업장을 받아가지고 사회를 늦게나왔습니다. 해운공사에 2년 다니다가 그 당시에 한국의 수출이 박정희대통령께서 밀어주실 때 아닙니까. 그래서 수출 쪽으로 가야겠다. 해운보다는 수출전선에 나가서 나름대로 내 뜻을 펴보자. 그래서 여기저기 갔는데 나이도 많고 그래서 한국회사는 잘 안받아주더라고요. 그래서 간 것이 JC페니 한국 구매사무소에 취직을 하게 되요. 거기서 수출 업무를 배우고 외국 바이어들을 만났습니다. JC페니 한국지사의 생활이 저의 MBA 코스였어요. 비즈니스 하는 부분들을 다 배웠어요.

Q. 지금까지 해오시면서 같은 경영인으로 역할모델로 삼으신 분이 계시다면?

-제가 존경하던 분이 지금은 좀 안되셨어요. 김우중 회장님을 참 좋아했거든요. 사실 수출업계에 뛰어든 것도 김우중 회장님이 뛰어다니는 것을 보고 저의 역할모델이었는데, 후반이 좋지가 않아서... 그러나 그분이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던진 희망은 어느 누구가 던진 것보다도 훨씬 컸다고 생각해요. 그것은 우리가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Q. 회사 슬로건이 ‘깨끗한 회사, 깨끗한 직원, 깨끗한 제품’이라고 들었습니다. 이렇게 정하신 이유는?

CEO는 솔선수범을 하는 것이 리더십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믿었어요. 그래서 스스로 제가 직원들에게 무엇을 하라고 하기 전에 스스로 하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직원들이 따라서 하게 하는 방법을 많이 썼습니다. 그런 것들이 상당히 나름대로 직원들 쪽에서 공명을 받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여태껏 회사 내의 노조나, 노사분규가 거의 없었어요. 공사를 가리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일요일에 사장이 가족하고 식사하고 회사에서 계산하게 하면 이것을 직원들은 다 압니다. 이런 것들로 인해 직원들의 CEO에 대한 믿음에 균열이 가기 시작하는 것을 많이 봤어요. 저는 판공비가 없습니다. 제 돈으로 다 처리를 합니다.

Q. 내년이면 휠라 전체로 보면 100주년인데 미래의 비전은 무엇인지요?

-올해 스포츠브랜드 업계에서는 7~8위 정도할 것입니다. 이것을 5년 안에 가능하면 4위 정도까지 끌어올려보고 싶다는 것이 제 생각이고요. 그렇게 해놓고는 저는 쉬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Q. 휠라코리아 윤 회장님 그러면 모르시는 분들이 없고 한국사회의 특성 상 유명해지시면 정치권에서 가만있지는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요. 러브콜도 있을 것 같은데?

- 여러 번 있었는데 제 하는 일이 저한테 맞는다. 이것이 우리나라를 위해서도 좋고 나를 위해서도 좋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정치에 소질도 없고 앞으로도 관심도 없고 갈 길을 바꾼다는 것은 지금 너무 늦었어요.
Q. 제2의 윤윤수를 꿈꾸는 청년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그분들에게 조언을 좀 해주시죠.

-우선은 조금 전에 말씀하셨던 김 회장님이 쓰신 책 제목이 생각이 나는데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그 말씀이 아주 정확한 말인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드리고 싶고요. 항상 도전정신과 끈기가 있어야 될 것 같다. 모든 것이 쉽게 오지는 않습니다. 한국에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지나친 부모님들의 보호 하에 자라서 우리세대 젊은이들과는 조금 차이가 있지 않나 하는 점이 걱정스럽습니다.

휠라는 세계 72국에 나가는 자랑스러운 한국브랜드입니다. 휠라코리아는 두 가지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습니다. IPO, 증시에 상장을 하게 되고요. 내년에는 역사 100주년이라는 신기록을 세우게 되는데요. 앞으로 글로벌 기업으로서 더욱더 성장해서 소비자뿐만 아니라 투자자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큰 기업으로 더욱더 성장해나가기를 기대해봅니다. 오늘 바쁘신 가운데 시간 내주셔서 좋은 말씀해주신 윤 회장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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