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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남수칼럼] '한국판 픽사'는 가능한가?

최남수 보도본부장

오래 전 미국 캘리포니아주 에머리빌에 있는 세계 유수의 애니메이션 기업 '픽사'(Pixar)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토이 스토리', '몬스터 주식회사' 등 내놓는 작품마다 흥행돌풍을 일으킨 기업. 견학을 하고난 후 세계 최고의 창의적 기업의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체감할 수 있었다. 픽사의 문화는 자유분방함 그 자체. 사무실은 일터라기보다는 집에 가까웠다. 개인 소파를 가져다 놓은 직원도 있었고, 화려한 인테리어로 카페처럼 꾸며진 사무실도 있었다. 상당히 넓은 건물이어서 널찍한 복도에선 자전거나 인라인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이동하는 직원들도 눈에 띠었다.


스티브 잡스하면 '애플'을 떠올리지만 그가 픽사에서 거둔 성공도 기록적이다, 잡스는 픽사를 1986년에 500만 달러에 사들여 20년 후인 2006년에 무려 1500배인 74억달러에 디즈니에 매각했다. 잡스는 픽사에 대해 "새 스튜디오(픽사)가 기업의 '본사'가 아니라 직원들의 '집'이 되기를 바랬다"고 회고했다. 대성공작 '인크레더블'의 브래드 버드 감독은 "모든 성공은 픽사의 경영진이 우리가 하는 정신 나간 짓을 내버려뒀기에 가능했다"고 평가한다.

잡스가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지났다. 잡스는 무엇을 우리에게 남겼는가. 되짚어 보자.

독선적 경영이나 특허 전쟁으로 상징되는 폐쇄적 태도는 분명 잡스의 오점이다. 개방성을 토양으로 하고, 누구나 다른 기업의 성과 위에서 혁신을 일으키는 IT산업의 특성을 도외시하고 특허를 무기로 내세운 그의 공격성은 부끄러운 흔적으로 남게 될 것이다. 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점은 그가 '세상에 있던 것을 개선한 것'이 아닌, '없던 것을 만들어 낸' 뛰어난 기업가였다는 점. 콘텐츠 생태계를 탄생시키고 상생의 수익 분배 구조를 가동시킨 비즈니스 감각도 빼놓을 수 없는 성과이다.

잡스가 아이폰과 콘텐츠 생태계를 내놓았을 때 우리는 바짝 긴장했다. '다른 생각'(Think different, 애플의 슬로건)에서 나온 혁신의 강풍에 속수무책이었다. 애플과 삼성 간 공방전의 1라운드는 '세상에 없던 제품'의 출현에 당혹해하며 시장을 내주던 '수세의 기간'이었다. 2 라운드는 삼성이 안드로이드 동맹군에 합류해 반격에 어느 정도 성공한 '공세의 시기'이다.

지금까지의 경쟁 레이스에서 알게 된 점은 먼저 콘텐츠 생태계라는 것이 높은 진입장벽인데다 독자적 생태계가 없는 것은 두고두고 불안요인이지만 제휴를 통해 우회하는 게 가능했다는 사실이다. 수직적, 수평적 통합을 통해 구축한 삼성의 제조업적 기반이 애플의 취약한 부분을 공격하는 강한 경쟁력의 텃밭이 될 수 있다는 점도 부각됐다. 양사는 이제 창의력, 특허, 제조 능력이 한 데 혼합된 3라운드 전에 들어섰다.

이 시점에서 생각해 볼 중요한 점은 스마트 폰 공방의 전세(戰勢)에 관계없이 우리가 앞으로 계속 이어질 IT혁신의 '저수지'를 구축하고 있느냐 하는 것. 잡스는 갔지만 제2, 제3의 잡스는 언제든 나올 수 있다. 잡스라는 인물의 탄생은 학업과 줄 세우기를 중시하는 주류 문화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학교를 중퇴하고, 히피문화에 빠진 '이단아'가 공부가 아닌 '인문적 삶'을 통해 기존 질서를 뒤엎은 사건이다.

픽사처럼 '정신 나간 짓'을 하는 사람들이 성공할 수 있는 문화적 다양성과 포용력의 씨앗이 뿌려지지 않으면 우린 또 언제든 새로운 천재의 출현에 허둥지둥 댈 수 있다. 속도와 효율이 강조되던 '실행 위주의 동사 사회'에서 창의력과 감성이 강조되는 '느낌의 형용사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사고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이게 '죽은 잡스'가 살아있는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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