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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남수칼럼] 사업 확장은 '독배'?

최남수 보도본부장

'타살과 자해'. 기업이 몸집을 불리다 보면 겪게 되는 위기의 함정이다. 권력의 힘이 하늘을 찌르고 정부의 칼자루가 중요하던 시절에는 타살 시비가 많았다. 제세, 명성, 대우 등 간판을 하루아침에 내린 기업들이 해당된다.

닫혔던 경제의 문이 열리고, 기업 본연의 경영적 판단이 중요해지면서 위기를 자초하는 '자해'의 사례도 많아지고 있다. 대우건설을 덜컥 인수했다가 전체가 흔들린 금호그룹, 극동건설을 인수한 '승자의 저주'에 빠져 주력 기업의 법정관리 신청과 총수의 사퇴 상황까지 몰린 웅진그룹이 이 경우에 속한다.

이들 기업처럼 사업을 늘리다 문제가 생기게 되면 흔히 희생양으로 삼는 단어는 '무모' '무리' '과욕' 같은 말이다. 앞뒤를 잘 안 가리고 욕심으로 과속하다 좌초하게 됐다는 진단이다. 항상 맞는 말인가.

기업은 본질적으로 성장을 위해 욕심을 가지고 사업을 확장하는 법인체이다. 욕심이 꼭 문제는 아니라는 얘기다. 어디에서부터가 과욕인지 그 경계도 분명하지 않다. 이 보다는 사업 확장을 위한 판단과 선택의 적절성, 체계적 변화 관리 과정 등 경영의 본질에 빨간 불이 켜졌는데 이를 외면했던 게 아닌지 짚어 보는 게 더 중요할 것이다.

실제로 사업 확장과 변신을 잘 마무리 짓고 순항하는 기업들도 많다. 국내에선 술 회사에서 중화학 기업으로 성공적으로 변신한 두산그룹이 대표적 예이다. 해외에서는 일본의 도요타를 들 수 있다. 자동차를 만들기 시작한 1935년 이전에는 방직과 방적이 주업이었던 도요타는 잘 나가던 사업을 버리고 자동차에 승부를 건 것이다. 핵심사업인 나일론부터 시작해 화학 사업을 버리거나 줄이고 과학기업으로 탈바꿈한 제너럴 일렉트릭의 '사업 털갈이'도 빼놓을 없는 경우다.

사업을 늘리거나 바꾸는데 실패한 기업들을 보면 본질적으로 몇 가지 경영상의 오류가 드러난다.

먼저 '귀납법의 오류'. 하는 일마다 성공해왔기 때문에 어떤 일을 해도 실패할 리가 없는 과신의 잘못이다. '확증 편향'의 오류도 감지된다. 기존의 지식들과 모순되는 정보들을 받아들이지 않고 걸러내 버리는 현상이다. 기업이 새로운 성장 전략을 짜서 장밋빛 전망이 넘치면 실패의 징후들은 무시되고 만다. 웅진 윤석금 회장은 "그동안 잘해왔기 때문에 다른 데로 확장해도 잘 할 수 있을 거라 생각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행동 편향'도 기업인이 걸려들 수 있는 덫. 시기가 무르익지 않아 기존 사업에서 더 기다릴 시간이 필요했는데 성장의 유혹을 떨치지 못해 과속을 하는 우를 범하기 때문이다. 한 이스라엘 학자의 연구 결과를 보면 축구선수들은 승부차기를 할 때 왼쪽, 중앙, 오른쪽으로 각각 3분의 1의 확률로 찬다고 한다. 반면에 골키퍼는 반은 왼쪽, 반은 오른쪽으로 움직여 가운데로 오는 골을 놓치고 만다. 왜 그럴까? 가만히 서있어서 멍청하게 보이기보다 차라리 아무 데로든 움직이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맨 손으로 사업을 일군 CEO들이 흔히 빠질 수 있는 함정이다.

"건설과 태양광에 무리하게 투자했습니다. 진작 포기했으면 이렇게까지 안 왔을텐테..." 윤석금 회장이 회견에서 밝힌 이 말은 전형적인 매몰비용의 오류에 해당된다. 수익성이 없는 줄 알면서도 그동안 쏟아 부은 돈이 아까워 사업을 계속 밀어붙이다 더 큰 돈을 날린 영국과 프랑스의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 사업도 마찬가지. 아닌 것을 버리지 못하고 질질 끌다가 더 큰 화를 불러들였다.

이래서 사업 확장은 기업에게는 목숨을 건 승부일 수밖에 없다. 사후적으로 성공하면 영웅, 실패하면 패장이 되는 경주이다. 긍정이 걸작을 만드는 게 아니라 신중함이 위기를 피해가는 지혜가 되는 '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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