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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N현장+]BBK 김경준의 금융비전과 박근혜 정부의 금융비전

권순우 기자

“LKeBANK는 그냥 평범한 법인이다. 그러니 LKeBANK는 금융당국의 규제에서 자유스러운 회사이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회사였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자동차 종류 중에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있다.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엔진이 2개가 있다. 휘발유를 연료로 이용하는 엔진과 전기를 이용하는 엔진.
나는 하이브리드 금융회사를 만들기로 했다. 투자자문, 증권회사, 보험회사들이 하이브리드 회사의 엔진들이고 LKeBANK가 자동차였다.
회사 간의 고객 정보 공유로 더 효율적인 자산운용이 가능하고 비용을 낮추어 새롭고 놀랄 만큼 차별적인 하이브리드 금융상품을 고객에게 제공할 수 있다“

/BBK의 배신 - 김경준/

BBK 사건으로 징역 8년을 선고 받고 복역 중인 김경준씨가 에서 밝힌 LKeBAK 설립 취지입니다. 김씨는 한국 금융당국이 하이브리드 금융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개별 회사들을 만들어 몰래 융합하려는 계획을 세웠다고 합니다. 범법자의 글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는 없지만 하이브리드 금융사에 대한 구상은 14년이 지난 2013년에 봐도 인상적입니다.

김씨의 발상에 비해 금융위원회가 대한민국 금융의 10년지대계를 그린 박근혜 정부의 금융비전은 덜 인상적입니다. 경쟁을 촉진하고 해외 진출을 독려하며 자본시장을 발전시킨다는 큰 그림은 누구나 그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금융비전은 금융소비자와 산업 발전을 위한 '파격'을 애써 외면하고 있습니다.

금융비전의 뜨거운 감자였던 은행의 투자일임업 허용이 업권간 갈등으로 제외됐습니다. 투자일임업은 고객의 투자 판단을 위임 받아 대신 투자하는 업무로 증권사, 투자자문사의 주요 수입원입니다. 은행이 일임업을 하면 금융투자업자의 수익성을 잠식할 수 있어 증권업계가 반대하고 있습니다.

은행권 관계자는 “투자일임업을 허용하면 예적금뿐 아니라 주식에 대해서도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원스톱으로 제공할 수 있었을 텐데 무산돼서 아쉽다”고 말했습니다.

은행과 증권업의 칸막이는 기형적인 현실로 나타납니다. 통합 점포를 표방하는 신한 PWC센터에는 증권 창구와 은행 창구 사이에 미닫이 문이 있습니다. 언뜻 한 사무실로 보이지만 증권과 은행이 함께 영업할 수 없도록 하는 규제 때문에 무가치한 문을 하나 만들어 놓은 겁니다.
칸막이가 꼭 필요하다고 금융당국이 판단한 것이냐? 그것도 아닙니다. 금융위는 이번 비전에서 한 임원이 증권, 은행을 같이 담당할 수 있도록 허용했습니다. 한 임원 밑에서 같이 일하지만 같은 회사는 아니어야 한다는 이상한 형태입니다. 통합의 필요성을 알면서 업권간 갈등을 피하려고한 고육책입니다.

또 해외에서는 통합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허용했습니다. 국내에서는 업권간 갈등이 있어 정부가 결단을 내리기 어려우니 해외에서는 하라는 의미입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업의 체질을 바꾸는 비전을 만들면서 정부는 하기 쉬운 일만 했다”고 평가했습니다.
금융위는 부처간 갈등도 회피했습니다.
퇴직연금 시장 활성화를 통한 자본시장 역동성 강화 방안은 호주의 퇴직연금 ‘슈퍼애뉴에이션’을 롤모델로 하고 있습니다. 호주 퇴직연금의 핵심은 강력한 세제 혜택입니다. 호주의 퇴직연금 가입자는 연 5000여만원까지 소득세 최저 세율을 적용 받을 수 있고 60세가 넘으면 연금에 대해 전액 비과세 됩니다.
호주 퇴직연금은 세제 혜택을 바탕으로 20년 동안 연평균 6%에 달하는 엄청난 수익률을 올립니다. 적립된 연금이 자본시장으로 유입돼 주가를 상승시키고 연금이 재적립되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돼 있습니다.

하지만 금융위는 그 마중물 역할을 하는 세제에 대해 침묵하고 있습니다. 세수 부족 때문에 고민중인 기획재정부와 갈등을 일으키고 싶지 않은 거죠. 호주 퇴직연금을 롤모델로 하면서 성공 비결을 외면한 건 비겁해보입니다.
갈등을 피하기 위해 핵심을 외면한 금융비전은 그래서 허전합니다. 금융소비자의 입장에서 필요한 종합적인 서비스와 높은 수익률을 어떻게 구현할지가 금융비전에는 빠져있습니다.

금융위 고위 관계자는 “갈등을 빚을만한 파격적인 내용을 담을 경우 논란만 하다가 결국 흐지부지 된다”며 “당장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방안을 수행하고 보완 대책들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가는 유연한 구조로 만들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우리나라 은행들은 위기를 겪으면서 과점 구조를 형성하고 있고 그래서 생긴 수익으로 고임금 잔치를 벌이고 있습니다. 증권사들은 은행만큼 안정화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망하지도 않을 상태로 고착화 됐습니다. 등 따습고 배부른 금융사들은 ‘파격’을 원하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 금융당국과 금융사에 필요한 덕목은 무엇보다 ‘용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현실화해 금융회사 스스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과감한 도전이 필요합니다.

업권을 파괴한 효율적 자산관리로 차별적인 하이브리드 금융상품을 고객들에게 제공하려고 했다는 김경준씨의 발상은 언제까지 불법이어야 할까요?

머니투데이방송 권순우(progres9@naver.com)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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